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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 말

평양 양각도호텔에서는 나를 아직도 <아리랑 대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2005년 9월말부터 11월 초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양각도호텔에 상주하면서 겨레하나 4000명 관광객을 비롯하여 만 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을 지원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이다.  북한경험담의 앞부분에 그 당시의 각종 사건 사고 몇 가지를 소개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아리랑> 공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만 명이 참여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100년 역사를 형상화한 서사극이다. 민족의 정서와 넋이 담겨 있는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민족의 운명사'와 세시풍속을 서사시로 표현한 대집단체조이자 예술공연으로, 100년간의 고난과 해방, 북한의 건국,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각각의 내용은 10만 명이 참가하는 카드섹션 및 집단체조로 표현되는데, 여기에 화려한 빛의 레이저 영상이 어우러지면서 시각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받쳐 입은 여성들이 한반도와 제주도, 울릉도 모양에 이어 독도까지 만들어낼 때, 한쪽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는 웅장한 카드섹션이 펼쳐진다.

<아리랑>을 보는 남한 사람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 스케일과 예술성, 집체성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으면서도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민이 생긴다. 우선 쉽게 제기하는 것은 인권 문제이다. 한창 뛰어 놀 고등중학교 학생들이 학업을 전폐하고 집단체조에 동원되어 배경대(카드섹션)나 체조대 연습에 매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런 집체의식은 과거 1970∼1980년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시절의 전국체전 카드섹션이나 안보실기대회 제식훈련에 동원된 남한의 고교생들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리랑>을 이야기하는 남쪽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
 <아리랑>을 이야기하는 남쪽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
ⓒ 서영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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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규모나 짜임새만 보면 모든 것을 전폐하고 오랫동안 혹독한 연습에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학교 수업을 받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방과 후에 학교와 지역별로 나누어서 연습하는 것이지 10만 명이 한 장소에 갇혀서 수개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영국인 대니얼 고든이 북한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에는 2003년 <아리랑>을 준비하는 2명의 여중생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열세 살 현선이와 열한 살 성연이는 김정일 장군님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때론 연습을 몰래 빼먹기도 하고, 늦잠 때문에 허둥대고 등교하기도 한다.

물론 2시간 넘게 정신없이 카드섹션을 하면 정말 팔이 많이 아플 것 같다. 공연 도중 '울림폭포'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무대배경으로 등장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뒤에 있게 되는 배경대(카드섹션) 아이들이 팔을 좀 쉴 수 있겠다며 안심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수고를 걱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북쪽 사람들 마음도 똑같다. 민화협 안내원들은 오전에 비가 와서 땅이라도 축축한 날이면 운동장에서 뒹굴며 마스게임을 해야 하는 꼬마 아이들 걱정에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고생이긴 해도 세계를 향해 그런 훌륭한 공연을 하고 있으며, 자기도 그 일원이라는 생각은 공연 참가자 누구에게나 긍지인 듯했다. 내가 묵고 있던 양각도호텔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자기 딸도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다는 것을 어깨를 으쓱해가며 자랑하신 적이 있다. 민화협 안내원들도 학생 때 카드섹션에 참여했단다. 그때 카드 뒤에서 살짝 고개를 삐죽 내밀고 다른 학교 아이들이 자신의 학교보다 더 잘하는지를 비교해 보다가 혼나기도 했다며, 힘들긴 했지만 즐거운 추억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혹독한 연습과 훈련이 반인권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단지 혹독한 훈련인가 아닌가 하는 이유보다, 그 공연을 보고 곤혹스러워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남과 북의 각기 다른 사회체제로 인한 사상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기꺼운 마음으로 이른바 '영예군인(상인군인)'들과 결혼하는 북한 여성들,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개인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남한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따라서 개인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인을 위한다고 하는 집단주의 사회의 기본 특성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아리랑> 같은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나라'라는 시각으로 담담하게 <아리랑>을 볼 수 있어야

내용면에서도 <아리랑>은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우리 민족의 100년의 역사를 형상화하며 북한이 외세와 꿋꿋이 싸워 몰아내는 과정, 해방과 건국 그리고 분단, 이후 북한 사회의 과정을 민족적 정서와 한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일심단결이 더해져 완성되는 줄거리는 우리가 학교 때부터 배웠던 역사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또 무엇에 공감하고 동의할 수 없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쌓여져 있는 인식의 틀이 있는데 한 번의 공연을 보고 논쟁의 각을 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시각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가치와 정서, 그리고 역사관이 어떤지를 살펴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옳고 그름의 가파른 예각화를 떠나 다니엘 고든처럼 '어떤 나라'라는 시각으로 담담하게 <아리랑>을 볼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왜냐하면 북한이란 우리가 좋든 싫든 화해협력하고 통일해야 할 상대방이니까! 화해하고 협력하려면 우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 어떻게 협상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최대치가 되는지 기본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아직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구동존이하려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통일의 긴 여정을 가야 하는 우리 국민들의 몫이다.

혹자는 <아리랑>이 남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부담스러운데 정치적으로 편안하게 다루어주면 안 되냐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야 보수든 진보든 많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이해해야 할 점은 애초에 <아리랑>은 남한을 의식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북한 자신을 위한 예술 공연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정신문화세계를 형상화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어려운 상황을 헤쳐 갈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얻는다. 서방세계와 남쪽 관광객들도 유치하려고 노력하지만 영리가 주목적이기보다는 북한만의 방식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공연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관광객 각자의 몫이다.

<아리랑> 공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하다. 아이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한숨을 푹푹 쉬는 분들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렵다면서 저런 데 돈을 쓰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북한 주민들의 일심단결력, 그들의 사상, 그들의 문화에 대해 그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 충격을 느끼는 것도 일반적인 사실이다. <아리랑>은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실체'를 알리는 커다란 영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다음번에는 아리랑 공연 관람과 평양 관광을 한 달 동안 지속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고비의 순간을 소개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리랑, #집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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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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