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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온다. 어쩌다 한 번 양가 가족들과 친지들의 얼굴을 보게 되는 명절은 그나마 가족 간의 유대와 연계성을 이어주는 최소한의 행사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위만 같아라'는 어릴 때만 해당되는 좋은 추억인 듯하다. 실제로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룬 많은 사람들에게 명절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명절이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 돈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명절에 실제로 얼마 정도의 비용이 들까?

강지현(35세, 가명, 기혼)씨는 이번 추석 만큼은 돈 걱정이 덜하다. 작년 추석부터 얼마의 돈이 드는지 세세하게 정리해보고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뒀기 때문이다. 매년 추석이나 설날 전에 임박하여 선물 준비하랴 양가 부모님 용돈 준비하랴 정신이 없었고, 남편과 의견차로 다투기도 여러 번이었다. 다음 달 과다 청구되는 신용카드 결제액은 통장에 '마이너스'를 선명하게 찍히도록 했고, 명절이 지나 다시 다음 명절이 올 때까지 마이너스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서천에 있는 시댁과 철원에 있는 친정을 오가며 명절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 정도인지 실제로 조사해서 정리해 보았다.
▲ 명절에 쓰는 비용 서천에 있는 시댁과 철원에 있는 친정을 오가며 명절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 정도인지 실제로 조사해서 정리해 보았다.
ⓒ 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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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고 처음 알았어요. 명절 보내는 비용이 이 정도 드는지를 말이죠. 오가며 대충 50만원 정도 들겠거니 하고 알고 있었거든요. 세세하게 정리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더라구요."

월환산을 해보면 설날을 위해서는 매월 약 7만 8000원 정도를, 추석을 위해서는 매월 5만7300원 정도를 모아두면 된다. 합쳐서 매월 13만5300원을 따로 모아두면 명절 때마다 돈이 급하고 쪼들려서 다음 달에 마이너스를 만드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명절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양가 가족 친지들을 만나는 과정이 생각보다 스트레스인데 다음 달 마이너스마저 생기면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형국이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만 하는 돈인데 괜한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만들지 말자 싶어서 올해부터는 돈을 모아두고 쓰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연내에 쓸 돈이니 금리 따져가며 금융상품 고를 필요도 없다. 그냥 주거래 통장이 아닌 다른 자유입출금 통장에 모아두었다가 명절 관련된 지출에만 찾아서 쓰면 된다.

"명절 관련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며 선물 비용과 휴게소에서 간식 사먹는 비용 등을 줄이기로 얘기했어요. 양가에 3만원 선에서 명절 먹거리를 사들고 가는 것으로 말씀드렸고, 집에서 먹던 과자나 음료, 과일 등을 준비해서 휴게소에서 간식 먹는 것을 줄이기로 합의를 보았어요. 애들 세배돈이나 용돈 주는 것도 너무 과한 액수를 주고 있었더라구요. 어차피 애들 크면 돈이 더 들텐데 지금은 그냥 만원 정도씩만 주면 될 것을..."

이런 합의를 도출하는데 남편과도 큰 언쟁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내역서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를 줄인 탓이다. 예산을 정해두지 않고 선물을 사러 가면 일단 좋은 선물부터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어쩌다 한 번 오는 명절인데 웬만하면 그래도 좋은 것을 사서 드리는 것이 낫지 않나 싶어 계속 선물세트 비용이 높아지기만 한다. 선물을 보러 가서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전체 명절 비용 속에서 적정한 선물 비용이 책정되는 것이지, 개별 선물의 싸고 비싸고 때문에 언쟁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휴게소에 들를 때도 괜히 매점이나 식당을 어슬렁거리지 말고, 다같이 귀퉁이 공원 같은데서 맨손 체조 하고 화장실만 들르고 재빨리 빠져 나오면 되더라구요.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뭐가 대단히 먹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가기 섭섭하니까 사먹게 되는 습관인데 비용이 제법 들어가는 거니까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요."

괜히 새어 나가는 아까운 비용은 줄이고 명절에 인간 구실 하는 비용이 일상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일은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가족회비로 명절을 보내니 괜한 감정 소모가 없어 좋아요

권희정(42세, 가명, 기혼)씨가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잘 사는 형님과 잘 나가는 동서 틈바구니에서 굴욕감을 느낄 때가 많아서다. 사업이 제법 잘 되셔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신 형님네는 명절 때마다 시댁에 제법 큰 돈을 내놓으신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은데, 문제는 항상 명절 음식 준비로 바쁜 희정 씨와는 달리 형님은 절대로 명절 음식 준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명절 당일이 되어서야 좋은 옷 쫘악 빼입고 나타나셔서 손 끝에 물 한방울 안 묻히시고 사뿐히 떠나 가신다. 돈을 많이 냈으니 일은 안 해도 되는거 아니냐는 암묵적인 행태에 가족 모두 수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동서는 전문직 맞벌이다보니 늘상 바쁘고 시간에 쫓긴다. 똑똑하고 활동적인 동서는 명절 준비에 참여는 하려고 하지만 바쁘다보니 아주 늦게 와서 몇 가지 돕지도 못한다. 그래도 미안해하며 갈비세트나 한우세트 같은 비싼 선물을 사오는데, 시어머니는 일하러 오면서 사과 한 박스 사오는 희정 씨보다 값비싼 선물 사오는 동서에게 더욱 애틋하시다.

"아니 자기들은 여왕이고 공주고 난 뭐 무수리인가요? 매번 명절 준비하느라 저와 시어머니만 분주한데도 시어머니는 그런 제게 수고했단 말 한 마디 없으세요. 돈 많이 주고 좋은 선물 사들고 오는 형님이나 동서만 반가워하시고 친구들한테 자랑하시고... 저희가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보란 듯이 선물을 안길 수는 없지만 지금 이대로는 너무 속상해요."

때로는 건강식품이, 때로는 과일박스가 겹쳐 들어와서 쌓여 있는 것을 볼 땐 곤혹스럽기도 하고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기도 하던 차에 희정 씨 시댁 3형제는 가족 회비로 명절을 치루기로 합의하였다. 큰 형님댁에서 조금 많이 내고 둘째 셋째 아들들은 조금 덜 내면서 명절 음식 준비, 부모님 선물 등을 그 예산 내에서 공동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추석에는 동서가 시간 되는 날 함께 명절 준비에 필요한 장을 봤고, 선물은 정해진 예산 내에서 큰 형님이 사오시기로 해서 이 모든 비용을 회비로 처리하였다. 각자 역할도 분담하고 기여하는 정도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리를 하니 명절에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희정 씨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고 한다.

어차피 지내야 할 명절이라면

"명절을 대신 준비해드리고 부모님께 대신 절해드리겠습니다"라는 서비스라도 나올 참인가?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그나마 서로 얼굴 보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하는 흔치 않은 가족 만남의 기회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만남이 단지 힘들고 감정 상하고 귀찮은 일이 되어간다면, 가족은 각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나면 서로 얼굴 볼 일 없이 지내면 그만인걸까?

평상시엔 잘 못 느끼는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족'이라는 느슨해 보이는 울타리가 꽤나 견고한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게 인생인데,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이웃사촌일까, 친한 친구일까, 가족일까?

'만약 정신은 멀쩡한데 몸을 맘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런 내 자신을 부탁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이 '배우자'라고 한다. 2순위가 '자녀', 3순위가 나의 '형제 자매', 4순위가 '이웃이나 친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서 사회 복지 시설이나 복지사 등 사회적 안전망이다. 가족 친지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다면 미래가 덜 불안할 수 있을 것이기에 사회적 안전망도 중요하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면 민폐를 끼치지 말고 콱 죽어버리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게 어디 사람 뜻대로 되겠는가. 지금 현재 누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우선 순위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다.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큰 딜레마를 안겨준다. 이렇듯 어려울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 가장 나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저 각자 자기 삶을 건강하게 잘 살아주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명절은 그런 우선 순위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하고, 추후에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온기를 확인하는 '리츄얼 ritual'이기도 하다. 피차 부족한 인간임을 이해하고 누구나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자각하면서 조금씩만 평소에 저축하듯 나누고 살 수 있다면 명절은 조상님께서 내려주신 더없이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명절, 힘든 명절,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현재 (사)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경제교육 및 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명절증후군, #명절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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