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 이정민

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특징으로 부각된 '변방 영화인 방글라데시 작품의 폐막작 선정',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는 이란 망명 감독 영화 초청', '아프카니스탄 영화 특별전' 등에 대해 아시아영화를 책임지고 있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가 12일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개막작은 신인감독의 작품을, 폐막작은 전혀 낯선 나라의 작품을 초청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파격적"이라면서 "특히 폐막작은 커다란 모험이지만 관객들이 부산영화제가 지향하는 '새로운 영화와 작가의 발굴'이라는 명제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란 감독들의 작품에 대해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의 경우 이란 반정부투쟁의 중심인물로 테러 위협을 안고 있고, 만든 작품이 이란과 적대적인 이스라엘에서 만들어 지면서 위험성이 상당히 커졌다"고 밝혔다.

또한 아프카니스탄 국립영상자료원 특별전과 관련해 "준비하던 프로그래머가 '종군 프로그래머'가 될 뻔했다"며, 특별전 자료 수집을 위해 여행금지국인 아프카니스탄 카불로의 출장을 추진했으나 폭탄테러 사고가 계속돼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폐막작 '텔레비전'] "방글라데시 영화 모험이지만, 부산이 지향하는 진정성"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폐막작 <텔레비전>에 대해 "'방글라데쉬 영화? 거기서도 영화를 만드나?' 낯설어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사실 모스타파 파루키의 <텔레비전>은 지난 7월 일찌감치 폐막작으로 선정했고, ACF(아시아시네마펀드) 후반작업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감독에게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는 "방글라데쉬 영화는 세계영화계에서 철저한 변방의 영화였고, 부산영화제에서 조차 드물게 소개가 되었지만,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제3의 인생>을 발굴하여 2009년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소개했다"고 전했다. 서툰 부분이 있지만 재능을 높이 샀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방글라데시 영화 <텔레비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방글라데시 영화 <텔레비전> ⓒ 부산국제영화제


이어 "이듬해 신작 프로젝트 <텔레비전>이 APM에 초청됐고, 이후 촬영을 시작하며 보내온 러프컷(아직 편집되지 않은 영화 필름)에서 물건임을 확인했다"면서, 그래서 ACF 후반작업 지원 작품으로 선정했고, 한국에서 후반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프로그래머는 "<텔레비젼>은 새로운 방글라데쉬 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그리고 아시아에서 새로운 중요한 작가가 탄생하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이후 선댄스, 베를린 영화제 등 내년의 주요 영화제와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전했다.  

한편 <텔레비전>의 부산영화제 폐막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글라데시 현지에서도 큰 화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이 알려온 바에 따르면 '11일 TV 방송을 비롯한 전 언론매체가 참여해 1시간 동안 기자회견을 열었고, 영화인들과 영화단체장들까지 참석해 축하하는 등 크게 방글라데시 전체가 크게 고무된 모습이었다'고 부산영화제 측은 전했다.

[이란 감독들 작품] 이스라엘에서 영화 제작에 마흐발바프 테러 위협

최근 몇 년간 이란의 영화인 탄압은 아주 심각해 감독들의 투옥과 구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몇몇 감독들은 창작 활동 자체가 정부에 의해 금지당하기도 했는데, 이 와중에 일부 감독들은 작품 활동을 해외에서 하거나 망명을 선택하기도 했다.  

올해 초청된 이란 감독 중 모흐센 마흐발바프가 대표적이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미국과 이란 이중 국적의 연인이 이란에서 간첩혐의로 구속되자, 구명활동을 벌이다 이란 정부의 미움을 받아 지금은 반 망명상태이다. 반정부활동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란이 아닌 해외에서만 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란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의 <정원사>

이란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의 <정원사> ⓒ 부산국제영화제


김 프로그래머는 이들 세 감독이 모두 신작을 발표했고, 공교롭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고 밝혔다. 특히 모흐센 마흐발바프와 아들 메이삼이 만든 <정원사>가 이란과 적대국가인 이스라엘서 만들어지면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마흐발바프 가족을 감싸던 이란 영화인들도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정원사>는 이란에서 태동했으나 정부에 의한 탄압으로 본거지를 이스라엘로 옮긴 바하이교의 성지에서 모흐센과 메이삼이 종교와 평화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부산영화제의 ACF 후반작업을 지원받아 한국에서 후반작업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마흐발바프 감독은 테러 위협에 달관한 표정이지만 이를 우려해 <정원사>를 ACF 작품으로 선정하고, 발표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었다"며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위험에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코뿔소의 계절>에 대해 "터키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이란의 이슬람혁명 시절 투옥이 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재회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면서 "이 작품 역시 이란에서는 제작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전했다.

이어 "주연을 맡은 모니카 벨루치는 누구나가 다 아는 세계적인 배우이지만, 남편 역을 맡은 베흐루즈 보수기도 주목해야 한다"며 "미국 이주 이후 출연을 고사했던 배우에게 왜 고바디가 그에게 그토록 매달렸는지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독과 배우 모두 이번 영화제 기간 중 부산을 찾게 될 예정이다.

[아프카니스탄 특별전] 탈레반 위협에도 목숨 걸고 지킨 필름

 아프카니스탄 영화 <사랑의 서사시>

아프카니스탄 영화 <사랑의 서사시> ⓒ 부산국제영화제


"1996년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칸)정권을 장악한 뒤, 그들은 사진, TV, 영화 등 일체의 이미지를 금지했고, 아프칸 국립 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던 모든 프린트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영상자료원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일부 프린트를 몰래 숨겨뒀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탈레반정권이 몰락한 뒤 그들은 그 동안 숨겨두었던 프린트들을 공개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이처럼 목숨을 걸고 영화문화유산을 지켜낸 용감한 사람들의 실화가 아프가니스탄 국립 영상자료원 특별전' 기획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 서방 국가에서 아프칸 국립 영상자료원을 지원하고, 복원에도 도움을 줬으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이 김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특별전을 성사시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무엇보다 아프칸의 시디그 바르막 감독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열악한 아프칸 지원을 위해 AFA(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아프칸 영화 학도를 초청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탈레반정권이 무너진 직후인 2002년 외부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디그 바르막 감독의 프로젝트 <무지개>를 당시 프로젝트 마켓(APM. 당시는 PPP)에 초청한 게 부산영화제와 아프칸 인연의 시작이었다.

2004년에 완성된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 특별언급, 부산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게 됐다.  2005년에는 그의 두 번째 프로젝트 <아편전쟁> 역시 APM 에 초청됐고, 완성된 영화는 로마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아프칸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AFA가 배출한 아프칸 학생들 역시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조영정 프로그래머의 카불 출장도 추진하게 됐다. 그러나 4월과 5월에 카불에 폭탄테러가 계속되면서 결국 출장은 무산됐고, 특별전 자체도 어렵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디그 바르막 감독이 아프가니스탄 국립 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주요 작품들의 DVD를 구해서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오면서 특별전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산영화제는 지난 해 발족한 '아시아 고전영화 복원사업 추진위원회'를 통해 올해 '아프가니스탄 국립 영상자료원 특별전' 상영작 중 한 편을 복원한다.

부산국제영화제 BIFF 김지석 텔레비전 정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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