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투비>의 한 장면

영화 <알투비>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하이 콘셉트 무비(high concept movie)'란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해, 한 줄로 정리될 만큼 명확하고 확 끌어당기는 요소를 지닌 상업영화를 일컫는 용어다. 한 영화제에서 만났었던 형사액션 시리즈 <리셀 웨폰>의 제작자는 조엘 실버 감독과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얼마나 이 '하이 콘셉트' 영화를 신봉하는지에 대해 인터뷰 시간 대부분을 할애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런 식.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플레이어>의 오프닝 장면처럼,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이나 제작자들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귀여운 여인>이 만난 영화"라며 신작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는 한다고. 우리 영화로 예를 들자면, 형사 영화에 멜로를 섞는다고 할 때 "<살인의 추억>에 <건축학 개론>을 뒤섞은 영화"라 소개하는 꼴이랄까. 

15일 개봉한 <알투비:리턴투베이스>(이하 <알투비>) 역시 그러한 하이 콘셉트 무비의 한국식 변용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서울 시내에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등장하는 항공액션영화'란 한 줄 정리, 명확하지 않은가. 하이 콘셉트 무비의 필수인 스타로는 월드스타 비와 당대 청춘스타 신세경, 대세남으로 떠오른 유준상 등이 캐스팅됐고, 조성하, 오달수 등 조연진도 탄탄하게 구축했다.  

<해운대>보다 <7광구>에 가까운 한국형 '하이 콘셉트' 영화 <알투비>

사실 1986년 톰 크루즈의 출세작 <탑건>이 확립해 놓은 이 장르를 이미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이 <빨간마후라>로, 이만희 감독이 <창공에 산다>로 도전했으니, 현재의 기술력으로 한국영화계가 만들지 못하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투비:리턴투베이스>에 노파심이 일었던 것은 하이 콘셉트 무비가 지닌 함정 때문이었다.

 <알투비>에서 전투기 조종사 역할을 맡은 정지훈.

<알투비>에서 전투기 조종사 역할을 맡은 정지훈. ⓒ CJ E&M


<알투비>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하이 콘셉트 무비'의 한국화에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좋은 예는 2010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 나쁜 예는 흥행 참패라 불렸던 <7광구> 되겠다. <해운대>는 '한국형 재난영화'를 표방하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를 동시에 캐스팅했고, <7광구> 역시 '한국형 3D 블록버스터 괴수영화'로 기대를 모으며, 하지원을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로 포장한 바 있다. 전쟁영화 <마이웨이>도 이러한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운대>와 <7광구>의 예에서 보듯, 명확하고 흥미로운 설정은 그냥 스타트일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화면만을 그럴싸하게 구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얘기다. <해운대>의 경우 쓰나미 장면과 함께 초반부의 코믹한 설정이나 캐릭터, 인물들의 갈등, 또 쓰나미가 닥친 이후의 신파멜로에 점수를 많이 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이 콘셉트라는 것이 개봉 초반 관객들을 단번에 끌어들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본연의 영화적인 구성이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빠르게 관객들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 <7광구>가 다시금 확인시켜준 교훈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알투비>는 <해운대>보다는 <7광구>에 좀 더 근접해 보인다. <알투비>는 분명 괴물의 형상을 비롯해 어색한 CG로 질타를 받았던 <7광구>와는 확연히 다른 항공액션의 쾌감을 수준 이상으로 선사한다. 할리우드 스태프들을 초빙한 항공촬영 역시 <탑건>이나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것과 완성도 면에서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질 좋은 때깔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여전히 관건은 이야기, 이야기다. <알투비>는 마치 영화 전체에서 일부를 차지하는 항공액션 장면을 위해 내러티브가 복무하는, TV드라마 미니시리즈의 2시간짜리 '스페셜 편집판' 처럼 보일 정도다.

킬링타임 할리우드 영화보다 못한 내러티브의 허술함

할리우드 영화 속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일수록 단순명쾌한 이야기 구조와 매력 있는 주인공들을 내세우기 마련이다. 문제는 <알투비>가 90분 동안 골치 아픈 생각을 잠시 놔둔 채 허허실실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매끄러움에도 한참이나 못 미친다는데 있다.

결론적으로 단순명료한 것과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끊임없는 조단역 캐릭터들의 (슬랩스틱과 말장난) 개그는 감독의 개성이라 이해하자. 의욕 넘치는 민폐 캐릭터 태훈(정지훈 분)이 정비사 세경(신세경 분)에게 한 눈에 반한다는 설정도 로맨스를 위한 감독의 배려(?)라 넘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중반부까지 정보를 위한 장면 장면만 이어 놓은 것 마냥 툭툭 끊기는 편집은 제 아무리 너그러운 관객이라도 주인공 태훈의 심리에 몰입하는데 방해만 할 뿐이다.

좌천된 태훈과 대립하는 철희(유준상 분)도 과거 후배를 잃은 상처를 지닌 기계적인 캐릭터일 뿐이다. 사실 <알투비>의 인물들은 모두 설정만 있을 뿐 피상적인 감정만 보인다는 면에서 모두 기계적인 캐릭터들이다. 안타깝게도, 천방지축 캐릭터로 스크린 안에서 뛰놀고 있는 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그런 면에서 주어진 조연 역할을 찰지게 연기하는 조성하와 오달수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알투비>의 로맨스를 담당하는 배우 신세경

<알투비>의 로맨스를 담당하는 배우 신세경 ⓒ CJ엔터테인먼트


더 심각한 문제는 중반 이후다. 서울 항공을 날아다니는 전투기를 구현하기 위해 끌어들인 악의 무리는 '또'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군이다. <쉬리>는 물론 심지어 <007 어나더데이>가 써먹은 이 악역들이 등장한지 15년, 10년 전이다. 개성 있게 창조된 악역이 긴장감을 살리고 더 나아가 영화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쉬리>의 최민식이 이미 입증해낸 바 있다.

하지만 코미디와 로맨스로 전반부의 대부분을 날려버린 <알투비>의 악역은 그저 별다른 이유 없이 서울을 침투하는 그냥 '악'이다. 도무지 '왜'가 끼어들 구석이 없다. 이를 테면, <알투비>의 북한국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중동의 이름 모를 테러리스트보다 더 박대한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미국영화 <007 어나더데이>와 비교해 봐도 그냥 '전쟁에 미친 군인'일 뿐이다. 전투 장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해야 하는 운명의 소유자들이랄까.  

<알투비>의 운명이 궁금한 진짜 이유

이렇게 급조한 갈등이 급격히 무너져버린 <알투비>의 후반부 내러티브를 구원할리 만무하다. 목숨을 잃은 동료의 복수나 휴전선 부근에 낙오된 후배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방해하는 미국과의 갈등에 감정 이입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대신 이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의 연쇄다. 로맨스도, 코미디도, 항공액션도, 전쟁영화도 모두 잡으려 했던 <알투비>의 야심을 관객들이 알아봐줄 수 있을까. 

 <알투비>의 주인공 태훈을 연기한 '비' 정지훈

<알투비>의 주인공 태훈을 연기한 '비' 정지훈 ⓒ CJ엔터테인먼트


<괴물>은 한강에 나타난 괴수를 극 초반에 배치하며 여타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길을 갔고, 익숙한 듯 독창적인 이야기에 1300만의 관객들이 지지를 보냈다. 이것이 불과 6년 전이다.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한국화에 열을 쏟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 역시 <해운대>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연출자의 예술이다. 재난영화도, 괴수영화도, 항공액션영화도 모두 그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필요하다. 할리우드가 반한 원작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이 결합된 <마이웨이>의 예에서 보듯, 준비된 듯한 영화도 대중과의 접속에 실패하는 것이 대중영화다. <투사부일체>와 <유감스러운 도시>를 만들었던 김동원 감독이 <알투비>를, <목포는 항구다>와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7광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투비>로 또다시 100억짜리 수업을 치룬 CJ는 내년엔 과연 어떤 장르영화로 여름시장을 공략할까. 또 <7광구>의 중국흥행 소식처럼 30개국에 선판매된 해외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까. 본편보다 더 궁금한 <알투비>를 둘러싼 향후 운명이다.

알투비 알투비:리턴투베이스 정지훈 7광구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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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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