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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의 맨얼굴 보여준 만화책 두 권

 

<먼지없는 방>과 <사람냄새>, 최근 10년간 만화책을 잘 보지 않던 내가 덜컥 두 권이나 주문한 것은 트위터에서 이 책들에 관한 사람들의 글을 보고 난 뒤였다.

 

"몇몇 소수 언론을 제외하곤 모두 광고를 거부한 책이에요. 읽어보세요."

"언론들마저도 삼성이 두려워 광고를 꺼리는 책, 트위터로 홍보해줍시다."

 

트위터 글을 읽고 나서는 의아했다. 삼성이라면 국내에서 가장 크면서 유명한 기업이고, 그런 기업에 관한 책이라면 언론사도 홍보가 될 터인데, 왜 언론들이 되려 책의 홍보를 꺼려한다는걸까. 이 책에는 무슨 사연이, 어떤 이야기가 담긴걸까. 누군가가 마치 사람들로부터 숨기려고 하는 듯한 이 이야기를, 나는 직접 사서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문한 책은 두 권의 세트로 되어 있었다. <먼지 없는 방>과 <사람 냄새>. 각각 만화가 김성희씨와 김수박씨가 그렸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민웅씨와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이다.

 

 

만화로 된 책의 특성답게 나는 책을 손에 쥔 채로 짧은 시간에 금새 읽어내려갈 수 있었고,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그들은, '먼지 없는 방', 먼지나 다른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클린룸'에서 일했다. 주로 반도체와 관련된 부품들을 세척하며 화학약품들을 만지곤 했었다는게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수 많은 약품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아무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당시 작업 환경의 청결함은, 반도체 제품을 위해서는 철저했지만,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철저했는지는 의문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다른 공통점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라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를 찾아 부푼 기대를 안고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 들어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으며, 가족과 배우자를 사랑하며 그 소박한 기쁨으로 살아갔다. 그들에게서 힘을 얻으며 고된 공장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살았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날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 찾아온다. 오랫동안 일하며 언젠가부터 몸이 약해진걸 느끼며 자주 아팠고, 그래서 병원을 찾게된 주인공들에게 의사는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자칭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기업, 병든 노동자는 가족이 아닌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노후라인에서만 백혈병 등 희귀병 희생자가 5명이 나왔다. 그 외 삼성의 다른 작업장에서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백혈병 등의 질병으로 사망했고, 현재까지 그 사망자 수는 알려진 것만 60여명에 이른다.  

 

평범한 서민이자 노동자들이었던 그들은 작은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회사는 임금을 지급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그들이 병에 걸린 뒤이다. 회사는 그들에게 찾아와, 이유를 묻지 말고 사표를 쓸 것을 강요했다. 치료비 명목으로 어느 정도의 돈을 줄테니, 산업 재해(이하 산재) 신청도 하지 말고 언론이나 시민단체와도 접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절대 산재가 아니라 개인 질병이니 다른 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비슷한 환경의 작업장에서 일한 수 많은 노동자들이 희귀병 발병으로 수십명이 사망했다. 충분히 산재로 유추해볼 수 있음에도, 기업은 이들의 물음을 외면하고 은폐하려는 듯 하다. 도대체 왜? 이들은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산재 신청 한가지만을 원했을 뿐인데.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공 보험인 산재 보험에서 보험료를 받겠다는 것인데. 삼성은 왜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해가며 이를 막으려 했던걸까. 

 

이 책의 핵심은, <사람 냄새>에서 나온 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이 큰 회사를, 이길 수 있으세요?"

 

그렇다. 이 기업은 국내 최대의 기업이고,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인력으로 무장한, 실로 거대한 기업이다. 한 개인이, 혹은 몇몇 일반인들이 모여서 이 커다란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긍정의 대답을 뱉어내는 것이 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게 아니라,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한마디 내뱉고 싶었다.

 

"그러면, 힘없는 개인은 당하고만 살아야 됩니까?"

 

'또 하나의 가족'을 광고문구로 내걸었지만, 이 책에서 나왔듯이 그들이 병든 노동자에게 한 대우는 전혀 가족애를 찾아보기 힘든 행동들이었다. 정당한 산재 신청 요구를 묵인하고, 그저 돈을 줄테니 입을 닫으라 한다. 이게 가족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할만한 일인가. 이길 수 없는 강자에게 부당하더라도 순종해야만 한다면, 그게 진정 우리가 꿈꾸는 가족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세계 최고 성능의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기업, 가전 제품에서는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것을 떠올릴 때, 우리는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 기업이 그들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에게 따스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치부를 사람들로부터 숨기기만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 '또 하나의 부끄러움'만을 느낄 뿐이다. 언제쯤이면 그들로부터 진정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사람 냄새 (김수박 만화)  / 먼지 없는 방 (김성희 만화) - 보리 출판사, 각 1만2천원


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김성희 글.그림, 보리(2012)


태그:#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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