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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2시, 공주대 산학연구관 200여 석의 강당이 꽉 찼다.

 

백발노인에서부터 장년층, 청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있다. 나이 지긋한 쪽은 한국전쟁 당시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고, 장년들은 시민사회단체 회원, 청년들은 공주대 학생들이다.

 

무대에는 수백여 명 희생자 신위(신위)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들의 것이다. 이와 관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 9일경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 317구의 희생자 유해도 수습됐다.

 

"한 맺힌 얘기 어찌 말로 다하나"

 

추모제에 앞서 유가족 몇몇이 나서 가족들이 희생된 과정을 들려준다.

 

"전쟁이 나던 해 내 나이 17살 때 소장수를 하던 아버지가 면지서 창고에 감금됐다.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 나갔는데 이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공주 왕촌에서 군경에 의해 총살됐다고 한다. 그해 8월, 어머니도 애기를 낳다 돌아가셨다. 이후 11살 여동생, 5살 남동생과 살아온 한 맺힌 얘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도 아버지가 살아오실 것만 같다."(박옥희, 75세)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독립운동가 심부름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후 해방 후 공주지역 건준위 인민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인민위원회 활동을 이유로 1949년 경찰에 의해 체포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고, 전쟁직후 대전 산내에서 총살됐다. 어머니는 공주에서 살고 계셨는데 전쟁 때 부역혐의로 체포됐다 1951년 1.4후퇴 당시 끌려가 사망했다." (정혜열, 85세)

 

"아버지가 내 나이 8살 때 여순사건에 연루돼 공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어머니와 여수에서 기차를 타고 공주형무소로 면회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형님과 나는 빨갱이새끼라며 매 맞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여순사건희생자 유가족)

 

지수걸 교수 "억울한 희생자 추모하는 '보훈의 달', 언제쯤..."

 

대담 사회를 보던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사회 대부분이 보훈행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공로자 위주"라며 "억울한 희생자를 기리는 성숙한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도청을 비롯 공주시청 공무원 등 공직자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유해발굴을 하다 중단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현재 한국전쟁 당시 공주 상왕동 살구쟁이 희생자 유해 중 100여 구가 수습되지 않은 상태다.  

 

유족들의 추도사의 톤은 지난해 위령제 때보다 높았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은 "정부는 살구쟁이에서 317구의 유해를 발굴하고도 예산이 없다며 남아 있는 100여 구 가까운 유해수습을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주시장과 충남도지사에게 간절한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중앙정부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곽 회장은 "불과 30평 미만의 땅에 묻혀 있는 유골마저 외면하는 것을 보면 인권이나 민주화는 요원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30평 땅 속 유해 외면하면서 '인권' '민주주의' 말하지 말라"

 

김종현 전국유족회 상임대표는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충남도와 공주시라도 나서서 남아있는 유해를 책임지고 발굴해야 한다"며 "남의 일인 양 팔짱끼고 있겠다면 원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문행 공무원노조 공주시지부장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고통을 치유하기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원 공주시장은 이날 공주시청 시민국장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구천을 헤매는 원혼을 위로한다"고 하면서도 유해수습문제는 피해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날 보내온 추도사를 통해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의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면서도 유해수습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공주민주단체협의회 정선원 회장은 "이웃이 슬프고 아플 때 같이 울어주는 미풍양속이 살아 있는 고을이 살맛나는 공동체"라며 "늦었지만 지역사회와 지방자치단체가 원혼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유해수습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충남도, #왕촌 살구쟁이, #위령제, #민간인희생자,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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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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