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 체육 교사라고 생각했다. 나이 지긋해 보이지 않았다. 천막 안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운동장 곳곳을 분주히 오가는 시간이 많았다. 거듭 확인했지만 교장선생이고 수학을 가르치고 있단다.

 

전진성 규슈조선중고급학교(北九州市 소재) 교장. 지난 20일 운동회가 열린 학교 교정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관련기사: 일본인도 감탄... 이 학교 운동회 어떻길래)

 

 운동회 개회사는 짧았다. 1분, 아니 30~40초 만에 단상에서 내려왔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곧장 교장실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예상대로였다. 철제 책장과 책상, 손님을 맞을 소파가 놓인 교장실은 단출했다.

 

벽에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운영초기 교육 원조비를 지원한 곳은 북한이었다. 한국정부는 당시 재정지원 요구를 받고도 소극적이었다. 이후 조선학교는 북한식 한국어 교육을 가르치는 민족학교로 발전했다.

 

이 학교의 생일은 1956년 4월 10일이다. 꼭 56년 전이다.

 

"돈도 없었지만 땅을 팔려고 하는 일본인도 없었죠. 어렵게 지금의 학교 부지를 샀는데 이게 원래 산속에 있는 쓸모없는 연못 습지였다고 해요. 돈 있는 사람 돈을 내고, 힘 있는 사람 힘을 보태 학교를 자력으로 지었습니다. 판잣집이었지만요."

 

다른 조선학교의 시작도 별로 다르지 않다. 나가노현에(長野縣) 있는 나가노 조선학교는 아무도 건물을 빌려 주지 않아 폐업한 여관을 빌려 수업을 시작했다. 그 다음해에는 폐교된 학교를 임대했고 이듬해인 1962년에서야 임야를 개간해 학교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다

교사는 아직 초라하고

교실은 단 하나뿐이고

책상은

너희들이 마음 놓고 기대노라면

삑 하고 금시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문창엔 유리 한 장 넣지를 못해서

긴 겨울엔

사방에서

살을 베는 찬바람이

그 틈으로 새어들어

너희들의 앵두 같은 두 뺨을 푸르게 하고

 

<중략>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마는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 자라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학교다

아아,

우리 어린동지들아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다' 총련 중앙 허남기 부의장이 도쿄 조선중학교 개교기념 시 중에서)

 

학교폐쇄, 시위학생 사망... 조선학교 수난사

 

조선학교 수난사는 1945년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 해방이 됐지만 수십만 재일교포가 한국 땅을 밟을 기회를 놓쳤다. 일본 땅에 남은 교포들은 재일조선인연맹을 중심으로 조선어와 조선역사를 가르쳤다. 하지만 1948년 1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조선학교 폐쇄령을 내렸다.

 

학교폐쇄령에 맞서 일본전역에서 교포들이 항의시위에 나섰다. 같은 해 '4. 24 교육투쟁'을 벌이자 일경은 수 천여 명의 학생을 연행했다. 또 일본 경찰의 발포로 16살 학생이 사망했다.

 

앞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다>는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엔 비가

눈 내리는 날엔 눈이

또 1948년 춘삼월엔

때 아닌 모진 바람이

이창을 들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공부까지 못하게 하려 들고

그리고 두루 살펴보면

백이 백가지 무엇 하나 눈물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는

우리학교로구나

 

규슈지역 동포들은 지난 2004년 다시 십시일반 힘을 모아 기숙사를 갖춘 반듯한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어려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요?

"학생 수입니다, 급격한 감소는 아니지만 매년 감소하고 있어요"

 

현재 일본 전체 우리학교 학생 수는 1만 명 정도다. 이 학교의 경우 초급 64명(유치부 포함), 중급 62명, 고급 80명 등 모두 206명이다. 학생 수 감소는 갈수록 재정난에 허덕이게 하고 있다. 18명(18명, 전임 13명·강사 3명·직원 2명)의 교원들의 인건비가 밀려 있을 만큼. 전 교장은 저출산 영향도 있지만 일본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정책이 학생 수 감소의 주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운영은 동포들의 찬조금과 일본 지방정부의 교육조성금에 의존하고 있어요. 일본 학교의 경우 일본 중앙 정부 조성금과 지방정부조성금을 각각 지원 받는데 우리학교의 경우 중앙정부 조성금은 단 한 푼도 없어요. 지방정부 조성금도 다른 지역 조선학교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지방정부 조성금의 경우 사용명목을 경상비가 아닌 교육 교재 구매 등으로 용도를 제한해 액수가 형편없어요. 민간 기부금에 세제혜택조차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교원인건비도 적체돼 있어요."

 

게다가 일본정부는 조선학교 졸업자에 대한 법률적 차별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 조선고급학교 과정을 수료해도 공식학력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부터 외국인 고교무상화 방침을 밝혔지만 조선고급학교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고 있다.

 

'총련과 손떼라', '일본정부 지침대로 가르쳐라'...교육조성금 주지 않는 이유

 

-조선학교만 교육조성금조차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지원을 전제로 세 가지를 고치라고 하고 있어요. 첫째 김일성, 김정일 동지의 초상화를 걸지 말라는 겁니다. 둘째는 총련과 손을 떼라고 합니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총련과의 관계단절을 요구하며 총련이 북한과 관계단절을 해야 지방자치단체조성금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곳이 총련입니다.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요구입니다. 셋째는 교육내용입니다. 문부과학성 지침대로 조선역사와 사회를 가르치라고 합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요구하는 조선 역사와 사회 교육 지침은 무엇인지요?

"과거 식민지는 강제성이 일체 없었다는 것입니다. 창씨개명 등 황국신민화에 대한 것도 가르치지 말라고 합니다. 종군위안부도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일본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납치문제의 경우 '있어서는 안 되고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것도 있고 해서 이 이상 가르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 입장을 그대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여러 트집과 구실을 붙여 재일교포들의 정체성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천황에게 충성하는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과거 식민지시대와 같이 되기를 원하고 있어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현재 학생들의 국적분포는 어떠한지요?

"조선적이 40% 정도이고 한국과 일본 국적이 나머지입니다. 중국 국적도 1명 있습니다" 

 

조선학교는 중국 조선족 자녀를 비롯, 한반도(조선반도) 출신 자제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입학이 허용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 운영하는 민족학교는 일본 전체에서 단 4개뿐이다. 근래에는 일 정부의 여러 차별정책으로 사업상 불이익으로 일본국적 취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땅에서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관심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태그:#규슈조선중고급학교, #전진성, #우리학교, #조선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