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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표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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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딸이 둘이라, 어머니까지 포함해 여자가 셋이지만 부엌에 특별한 온기가 있지는 않다. 어머니께서 요리를 잘 하시기는 하지만, 자주 하지 않고, 나 같은 경우에는 바깥 음식 사 먹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아직 수험생이라 요리는 일절 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여성성이 가장 발휘 될 수 있는 공간인 부엌에 온기가 없다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여성성을 넘어 인간 사이의 따스함을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작품으로 데뷔했고, <카이센 신인문학상>과 <이즈미 쿄카상>을 수상하였다. 후에도 여러 소설들을 출간했고, 국내에도 번역 소개되었지만 인기는 <키친>이 제일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엌에는 어떤 온기가 스며들어 있을까.

천애고아가 된 사쿠라이 미카게라는 여대생이 있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돌아가셨고, 그나마 하나 남은 핏줄인 할머니마저 돌아가신다. 그런 미카게에게 찾아온 다나베 유이치. 할머니가 생전 많이 가던 꽃집의 청년이자, 같은 대학 학생인 다나베 군은 뜬금없이 미카게에게 자신의 집에서 살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유이치의 집과 부엌은 미카게에게 열리고, 미카게는 그 공간을 너무 사랑하게 된다. 물론, 유이치의 특이한 가족사도 더불어 알게 된다. 유이치의 아빠였지만, 부인이 죽자 스스로 여성이 되어 유이치의 엄마가 된 에리코씨. 각자 죽음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사는 세 사람은 미카게의 사랑스러운 음식 솜씨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럼 미카게와 유이치와의 관계는? 학교에서 동거하는 사이라는 둥 말은 많지만, 사실은 에리코씨와도 함께 살기 때문에 타인이 생각하는 남녀 간의 그렇고 그런 동거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에리코씨가 정성껏 키운 그 아들은, 이런 때면 순간에 왕자님이 된다'라는 문장으로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렇게 타인이 서로에게 아주 천천히 물들어가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 소설이 <키친>이다.

하지만, 미카게와 유이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으레 소설가들이 인기 있는 작품의 속편을 쓰듯이 요시모토 바나나도 그러 하였다. 1999년 민음사에서 발간된 단행본 <키친>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세 가지 단편소설 <키친>,<만월>,<달빛 그림자>가 엮어져 나온 책인데, <만월>이 바로 <키친>의 속편이고, <달빛 그림자>는 다른 두 단편 소설과 전혀 상관없는 또 하나의 단편소설이다.

<만월>에서는 속편답게 <키친>의 두 주인공 미카게와 유이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에리코 씨는 본인의 스토커가 자신을 살해하자, 죽어가는 순간에 스토커를 같이 죽인다. 이제 유이치도 미카게와 마찬가지로 혈혈단신 신세가 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때가 미카게가 유이치의 집을 나와 혼자 살 때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유이치는 전화로 미카게에게 사실을 말하게 된다.

잠시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가 다시 어색하게 만나게 된 두 사람.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카게는 대학을 그만 두고 유명 요리 선생의 어시스턴트가 되었고, 유이치는 엄마에 아빠였던 에리코 씨의 후사를 정리했다. 아무튼 다시 얹혀살게 된 미카게지만, 이제 젊은 남녀 단 둘이서 살기 때문에 썩 반갑지 않다. 게다가 애인도 뭣도 아닌 사이였으니 말이다.

복잡하고 풍전등화와 같은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가 버거운 나머지 미카게는 요리 선생을 따라 출장을 가고, 유이치는 홀로 지인이 소개해 준 곳으로 여행을 간다. 그렇게 서로를 피하고 싶어 했으면서도, 또 그리워하는 사이이기에 미카게는 유이치가 묵고 있는 여관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통해 이유야 어찌 되었든 둘 다 배를 곯고 있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카게는 어떤 기분에 사로잡힌다.

둘의 마음은 죽음으로 에워싸인 어둠 속에서,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브가 지금 거의 맞닿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지나면 서로 다른 회로를 따라 떨어지고 만다. 지금 여기를 지나면, 두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영원한 친구로 남는다.

미카게는 자신의 촉을 믿고, 야식으로 맛있게 먹은 돈까스 덮밥을 포장해서 바로 유이치의 여관으로 달려간다.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제 더 이상 헤어지는 일 없이 함께 할 것임을.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과 <만월>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다. 읽는 내내 나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대부분의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을 때 군침이 도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아마도 매우 고통스럽게 굶주리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을 가져다준다면 느낄 만한 그런 감동과 비슷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겪더라도 그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카게와 유이치의 경우는 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단 한 사람의 죽음이었으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거다.

둘러싸고 있는 죽음이 자신마저도 갉아 먹을 것만 같은 두려움.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는 진심 어린 소통과 교감을 통해 유대감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부엌을 통해, 혹은 음식을 통해 유대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을 가져다주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굳이 죽음이 아니어도 좋다. 현대인들에게 트라우마는 너무 가까이 있어 접하기 쉽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를 치유하는 데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관계가 필수적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소중한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로써 분명해 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엌은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공간이다. 또 남녀 주인공을 연결시켜주기도 하며, 잃어버리기 쉬운 감각을 되찾게 하기도 한다. 물론 감각은 미각이다.

미각은 단지 먹기 위해 있는 감각이 아니다. 우리는 대개 힘든 일이 생기면 '입맛이 없다'라고 한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지속된다면, 살이 빠지거나 건강을 잃게 된다. 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어찌 보면 오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일지 모른다. 반대로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장 잃기 쉽고, 또 되찾기도 쉬운, 그러면서도 생명과 연관 깊은 미각은 음식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영혼마저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힘이 깃들여진 감각이다. 심지어 어떤 누군가는 미각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인생의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태고 적부터 함께한 공간, 키친은 미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1999)


태그:#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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