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영화 <움>의 포스터

영화 <움>의 포스터 ⓒ 코리아스크린

낯선듯 창백한 바다는 파도소리만으로 침묵한다. 그런 바닷가에 할아버지 집에 놀러온 소녀 레베카가 우두커니 서있다. 소녀는 또래의 소년 토마스를 만나고 둘을 급격히 친해진다. 하지만 소녀는 곧 엄마를 따라 일본으로 떠나고 소년은 그런 소녀와의 만남을 아쉬워한다.

그렇게 우연한 만남과 이별을 겪은 후 소년을 기억하고 있던 소녀는 12년 만에 다시 소년을 찾는다. 훌쩍 커버린 청년이 된 토마스는 예쁜 숙녀로 자란 레베카를 반가이 맞아주고 12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어린시절 만남과 헤어짐이 갑작스러웠듯이 토마스는 다시 갑작스레 레베카 곁을 떠난다. 교통사고 때문에.

토마스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레베카는 그가 떠난 후 그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너를 기다릴거야."

레베카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헤어진 연인을 붙잡으려 한다. 바로 복제기술을 이용해서. 죽은 연인의 세포를 복제해 자신의 난자와 결합시키고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낳은 아이. 그 아이는 과연 그녀에게 있어서 자식일까? 연인일까?

쓸쓸하지만 한편으론 중독성 있게 끌어당기는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는 사랑이야기 자체가 아닌 우리의 윤리와 과학기술에 주목하게 만든다. '자궁'이라는 뜻을 가진 영화 제목 '움'. 영화는 '복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SF 장르는 아니다. 다만 쓸쓸한 풍경을 배경으로 지독한 사랑이야기를 하며 이 사랑이 얼마나 윤리에 배반적이며 사람들의 정서를 배반하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인간복제가 보편화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람들의 정서는 복제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문에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는 마을사람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레베카는 자신의 아이가 복제인간임을 숨기려하지만 이내 밝혀지게 되고 그는 사람들과 떨어져 그들만의 세상에 살게 된다.

연인의 분신이자 자신의 아이인 토미에 대해 복잡한 표정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레베카. 토미가 여자아이들과 놀 때 그리고 여자친구를 데려왔을 때,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레베카는 자신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그대로 보여준다. 토미는 과연 레베카에게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묻던 토미가 레베카에게 달려와 레베카를 힘으로 누르며 "이제 난 엄마를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레베카는 웃으며 "그래 마음대로 해봐"라고 말한다.

토미가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져 레베카를 강간할 때도 레베카는 처음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한다. 전희도 키스도 사랑한다는 속삭임조차 없는 강간이나 다름없는 섹스에 그런 기쁜 표정을 짓는 레베카의 모습. 레베카에게 과연 토미는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것을 과연 단순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복제인간에 대해 혹자는 종교에 위배되고 신의 섭리를 거부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움>은 복제인간에 대한 논란이 종교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임을 천명한다. 산 자 혹은 죽은 자의 세포를 통해 복제돼 제공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라나는 복제인간과 제공자와의 관계. 복제인간을 낳은 사람과의 관계. 결국 관계의 형태에 따라 복제인간은 그 정체성을 규정받게 된다. 그런데 세포제공자와 닮았다고 해서 과연 복제인간을 제공자와 동일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영화 <움>에서 레베카의 엄마는 레베카가 토미를 복제해 낳으려고 하자 레베카를 말리며 이렇게 말을 한다.

"나는 무신론자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대로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 제발 포기해."

그런 토미의 엄마였지만 복제된 토미가 성장해 성인이 되자 그 모습을 보기위해 찾아오고 흔들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과연 복제된 토미는 무엇인가? 토미 그 자체인가? 토미의 자식인가? 자신의 난자를 이용해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이이지만 연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는 복제 토미의 모습에 복잡한 표정을 짓는 레베카는 그녀가 복제된 토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윤리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이웃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 이 관계를 도덕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바로 윤리. 하지만 제공자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관계맺음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그리워 아버지를 복제했다고 해서 그 복제인간은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자식으로 복제된 인간은 또 어떤가? 그 자신의 인생이 아닌 죽은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닐까?

복제됐어도 인간성은 독립적이며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하지만 복제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공자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는 복제인간. 복제인간과 복제인간을 만들어낸 사람은 당사자들간의 협의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이를 지켜봐야 하는 이들과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영화에서도 이런 점 때문에 결국 레베카는 복제된 토미를 데리고 사람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복제인간의 문제는 종교를 떠나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복제인간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 듯하다.

또한 이런 지점을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내고 있는 <움>은 잔잔하고 아름답지만 역시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booyaso.blog.me/ 블로그에도 실려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복제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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