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의 시대다. 아직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까지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지역별로 전면 확대 실시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제 저소득층 자녀가 무상급식을 지원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많은 서류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급식이 일반화 되면서 지금의 아이들에게 도시락은 익숙지 않다. 1년에 단 두 번, 현장체험 학습이 있는 날에만 도시락을 가져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를 둔 부모, 즉 중년층은 매일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도시락세대다. 그들이 도시락과 함께 한 시절은 즐거운 학창시절의 한 때로 추억될 것이다.

겨울철 난로 위에 올려 논 도시락에서 밥 타는 냄새가 나면 두꺼운 장갑을 끼고 난로 위의 도시락 순서를 바꿔준다거나, 의자를 붙이고 빙 둘러 앉아 반찬을 나눠먹는 풍경은 아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추억의 도시락이 빈부의 격차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포스터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포스터 ⓒ 인도

도시락 반찬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나마 도시락을 준비한 경우다. 만약 도시락을 쌀 수 없는 형편의 아이라면 그 아이에게 점심시간은 여간 곤혹일 수 없을 것이다. 인도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에서도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가 등장한다.

얼굴에 알 수 없는 멍 자국이 있지만 언제나 밝은 모습의 재치 꾼인 스탠리. 작문과 춤은 물론 손재주도 좋아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탠리에게 약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 착한 친구들은 스탠리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지만 베르만 선생님은 친구의 도시락을 먹지 못하게 하고, 부잣집 아이가 싸온 맛있는 도시락을 뺏어 먹기까지 한다. 그런 선생님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수돗물로 배를 채우거나 집에 가서 따뜻한 밥을 먹겠다며 학교 밖을 배회하는 스탠리. 그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시간을 내 데려와 짜장면이라도 사주고 싶어진다.

점심시간 학교 밖을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는 스탠리를 보게 된 친구들은 기발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식탐왕 베르만 선생님에게 도시락을 뺏기지 않고 친구와 함께 나눠 먹기 위해 교실 밖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한 것이다.

식탐왕 선생님을 따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이들

식탐왕 베르만 선생님은 부잣집 아이의 빛나는 스테인리스의 4단 도시락을 약탈하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미친 듯이 아이들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계단 아래로, 운동장으로, 원형극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스탠리와 점심을 먹는 아이들은 베르만 선생님을 따돌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로 이동하며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과 도시락을 뺏어 먹으려는 선생님과의 좌충우돌 추격씬은 이 영화에서 순수한 웃음을 유발하는 재밌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의 시야에 아이들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점심시간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이 끝나지만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선생님으로 인해 일은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스탠리 때문에 아이들의 도시락을 뺏어먹지 못한다고 생각한 베르만 선생님은 급기야 스탠리에게 '도시락을 싸오지 않으려면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엄포를 놓은 것이다. 착한 친구들 덕분에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즐거운 생활을 했던 스탠리는 풀이 죽고 만다. 스탠리는 과연 도시락을 싸지 못한 채 영영 다시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될까.

빈부격차로 인한 아이들의 '아동노동문제' 조명하기도

 친구가 싸온 도시락에 감탄하는 아이들의 모습

친구가 싸온 도시락에 감탄하는 아이들의 모습 ⓒ 인도


도시락 세대에겐 추억을 선사할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사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물로 배를 채우거나 운동장을 배회하거나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성인이 돼 그 시절 자신의 나이인 아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어른이 된 세대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영화의 후반부 스탠리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이유가 밝혀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스탠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아이들의 도시락을 뺏어 먹는 이기적인 뚱보 선생역을 유심히 보노라면 진짜 꼴사납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그가 이 영화를 만든 아몰 굽테가 감독이라고 한다. 또 늘 밝은 모습이지만 한 번씩, 큰 눈에 우울이 드리워진 연기를 잘 소화해 낸 스탠리 역의 파토르 A굽테는 감독의 친아들이라고 한다.

감독은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를 순수한 동심으로 풀어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이면에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의 '아동 노동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연간 약 1200만 명의 아이들이 노동현장에 있다고 한다.

 부잣집 아이의 스테인레스 4단 도시락에 흐믓해 하는 베르만 선생님

부잣집 아이의 스테인레스 4단 도시락에 흐믓해 하는 베르만 선생님 ⓒ 인도


선생님에게 도시락을 뺏기지 않고 친구와 나누려는 아이들과 도시락을 뺏어 먹으려는 선생님과의 좀 엉뚱한 대결 구도인 <스탠리의 도시락>. 이 영화는 요즘 몰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호평을 받는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의 뒤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로 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탠리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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