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럽에서 처음 문을 연 북한식당인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에는 평일인데도 손님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 문을 연 북한식당인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에는 평일인데도 손님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너 빨갱이지? 기집애가 무슨 철학을 공부한다고? 넌 딱 A급이야. 생긴 게 그래."

1987년 6월항쟁 때 단순가담자였던 나는 철학과를 다닌다는 것과 청바지에 검은 안경을 쓴 모습이 운동권 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구속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함께 시위에 가담했던 의대 친구는 훈방 조치였는데 내가 A급으로 분류된 것에 대한 이유를 한 대공 수사관이 정확히 말해준 셈이다.

'빨갱이라고…' 그때 내가 살던 하숙집을 수색하러온 경찰들이 가져간 몇 권의 책 중에는 빨간 표지의 '서양철학사'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가히 빨간색이 주는 섬뜩한 효과가 대단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때 그 시대를 휘둘렀던 집권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의 로고에 빨간색이 선명하다. 이제는 빨갱이라는 말이 없어진 걸까?

"누구나 여기 오기 전엔 두려운 생각을 갖고 있었대요"

"이 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북한 종업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음식을 맛있게 먹고 공연도 즐기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한 분도 빠짐없이 '오기 전에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북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난 1월 말 문을 연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의 주인인 렘코 반 달씨가 웃으며 말했다. 식당을 오픈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식당 주인인 반 달씨는 벌써 네덜란드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보통의 식당이라면 초기 홍보비로 적잖은 돈을 써야 했겠지만, '유럽 최초의 북한 식당'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여러 차례의 신문 보도와 라디오 방송 출연으로 이 곳은 가만히 있어도 홍보가 돼 하루가 다르게 손님들이 늘고있다고 한다.

지난 28일(화) 평일에 방문한 식당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주인인 반 달씨는 상당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물어보면 뭐든지 답해주겠다며 아주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섯 차례 북한을 오가며 북한과의 사업거리를 논의하였고 그 결과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주변에 조그마한 식당과 문화센터를 꾸려놓았다. 사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이 북한 사람이냐구요?"

주인 반 달씨
 주인 반 달씨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그는 북한을 왕래하면서 이곳에 문화센터와 식당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벌써 몇 차례 신문 보도와 방송으로 보도된 내용들이라 살짝 다른 질문을 해봤다.

- 혹시 부인이 북한 분이세요?
"에구 아시면서... 북한은 외국인과 교제도 결혼도 허락되지 않는 나라잖아요. 그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 왜 북한과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많은 아시아 나라들을 다니면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에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중국에 갔다가 북한과 연이 닿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고 사업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지요. 경제난이 심한 북한은 네덜란드의 낙농업 신지식을 얻고자하는 의욕이 컸어요. 그 쪽 정보를 전해주다 보니 사업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 이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쉬는 날 자유롭게 외출을 하나요?"
"그들의 일상에 대해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얼마 전 숙소에서 암스테르담 센트룸에 있는 쇼핑센터 포장지를 봤어요. 그때, '아 그곳에 다녀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죠.(웃음)"

문화센터의 규모에 대해 질문을 하자 2층으로 안내했다. 수백 점의 그림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벽면을 빽빽하게 채운 그림들의 아래 켠에는 그림의 가격이 스티커로 붙어져 있었다. 4500유로라고 붙어있는 그림은 볼품없이 압정으로 벽에 붙어져 있었고 작품들 하나하나를 감상하기에 시설은 턱없이 작고 볼품 없었다. 사실 규모나 시설 면에서는 실망스러웠다.

김일성의 생애를 기록한 영문 번역책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김정일의 일대기를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책도 있었다. 김정일 책은 주인 반 달씨가 직접 번역했으며 6유로 50센트라고 한다.

그는 앞으로 북한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 곳을 방문하게 함으로써 북한 문화를 유럽에 전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 난 왜 불편할까

"조선말 참 잘하시네요. 조선분이세요?" 여성 종업원이 물었다.

수년간 해외생활을 하면서, 말과 음식 두 가지의 어려움이 해결되면 타국에 살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식당에 와서 밥 한 끼 먹으면서 같은 말과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 이면에 또 다른 의미가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종업원에게 웃으며 "예"라고 대답했지만 차라리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종업원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이 참으로 기막혔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은 노래와 춤 그리고 피아노 연주 등을 선보였다. 허술하다고 말해도 좋을 식당 내부시설에 비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종업원들은 단연 돋보인다. 이것이 이 식당의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 달씨에게 물었다.

반 달씨는 식당을 꾸밀 때 자문했던 사람들이 최대한 북한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이렇게 하고있다고 말했다. 노래방 시설, 예쁜 처녀들의 가무, 그리고 친절한 미소와 맛있는 음식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있다고 했다.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의 여종업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암스테르담 평양 해당화 레스토랑의 여종업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음식과 노래와 춤... 저녁식사에 3시간 걸려

레스토랑 전문 칼럼니스트인 맥 반 딘텔은 이곳을 다녀간 후 일간 <폭스크란트> 2월 25일자에 평가점수를 공개했다.

가격 : 1인당 49유로(5가지 코스요리)
음식 : 6.5
서비스 : 8
식당 내부 시설 및 환경 : 6
가격 대비 전체 질 : 7

반 딘텔은 음식의 맛은 좋은데 그렇다고 특별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북한의 돈 세탁을 위한 창구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일부의 설에 대해서는 "24석의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게 가능하겠냐"며 "유럽 최초의 북한 식당이란 타이틀에 비해 규모나 운영 등이 아주 아마추어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식당 외부는 유리를 검은색 테이프로 가려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도록 되어있다. 입구에서 벨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예약 손님인 지를 확인한 이후 식당에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형광등의 흰 불빛 아래 아리따운 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 여종업원들에 의해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를 받는다.

그들의 친절함은 네덜란드의 식당에서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할 서비스이다. 그래서인지 반 딘텔도 서비스 점수를 8점이나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은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오후 7시경이 되어 그 날 예약한 모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주문과 동시에 함께 음식을 먹게 된다. 음식은 두 가지 코스요리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데, 1인당 48유로인 5가지 코스요리, 79유로인 9가지 코스요리가 있다. 9가지 코스요리는 5가지 코스요리에 해산물과 스시 그리고 오골계탕 등 다소 고급스러운 음식이 더 나온다.

기자는 반 딘텔이 주문했다는 5가지 코스요리를 시켰는데 음식 맛은 비교적 깔끔하고 좋았다. 각 단계 요리가 나오고 그 사이에 종업원들은 노래와 춤을 곁들인 공연을 한다. 7시경에 시작한 저녁 식사는 거의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코스요리 중 하나인 나물 요리가 정갈하다.
 코스요리 중 하나인 나물 요리가 정갈하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평일인데도 꽉찬 손님들... "너무 특이해요~"

평일인데도 손님은 꽤 많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 이곳에 오게 된 동기와 와서 음식을 먹고 공연을 본 소감을 물어보았다.

로테르담에서 왔다는 사람은 라디오를 듣고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는데, 종업원들이 너무 예쁘고 음식도 맛있고 서비스도 최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문화센터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김정일에 대한 책을 한 권 사들고 왔다고 자랑하면서 "식당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특색 있는 공연에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식당처럼 멋지게 꾸며놓지도 않았고 단지 북한의 그림들만 걸어놨는데도 매우 특별해 보인다"고 말했다.

식당 입구에 펼쳐놓은 몇 개의 광고지들에는 3월 중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필름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라고 씌여있었다.

인터뷰에 응했던 손님들은 나에게 지금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한결같이 조선노동당을 찬양하고 김일성을 칭송하는 내용들이었지만 뭐라고 통역하기가 불편해서 얼버무려 대충 얘기해주었다.

밥 한끼 먹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 때가 꾸역꾸역 내 머리 속을 채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외곽에 생긴 유럽 최초의 북한 식당과 조촐하게 꾸며져 있는 문화센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호기심을 채우고자 이곳을 찾는 고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이 식당은 어떤 변화를 하게 될까.

암스테르담 북한식당 내 문화센터에 진열돼있는 북한 그림들.
 암스테르담 북한식당 내 문화센터에 진열돼있는 북한 그림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레스토랑 내 문화센터에 전시돼있는 김일성과 주체사상 관련 책들.
 레스토랑 내 문화센터에 전시돼있는 김일성과 주체사상 관련 책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태그:#북한식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