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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의 곰보배추. 일반 배추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들녘의 곰보배추. 일반 배추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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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둔치를 따라 간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응용리다. 강을 사이에 두고 광주광역
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살랑대는 바람에 봄기운이 묻어난다. 강물에도 봄기운이 넘실댄다. 두 팔을 한껏 벌려 기지개를 켜본다. 들녘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

그 사이로 푸르름이 기웃거린다. 순간, 잔디인가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잔디색깔이 누렇게 변색돼 있을 때다. 그러면 봄동 아니면 시금치…. 어떤 냄새인가 궁금해 발길을 옮겨본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알 수가 없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언뜻 배추를 닮았다. 봄동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어색하다. 잎이 옆으로 퍼져 있다. 이파리 양쪽으로 잔털도 나 있다. 가장자리는 톱니와 비슷하다. 한참을 머뭇거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온다. 면소재지에 가려고 버스를 타러 나왔단다.

"할머니! 저게 뭐예요? 논에 자라고 있는 거."
"저거 몰라, 문둥이배추여. 못난이배추제."

"문둥이요?"
"옛날에 단방약으로 많이 먹었어. 기침에 좋다고. 가래에도 좋고. 쩌 집이꺼여. 쩌-기 식당 보이제."

곰보배추 몇 포기를 뽑아든 최미경·김재규씨 부부. 곰보배추를 상업화시킨 주인공들이다.
 곰보배추 몇 포기를 뽑아든 최미경·김재규씨 부부. 곰보배추를 상업화시킨 주인공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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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배추 쌈밥. 곰보배추는 물론 돼지고기와 된장에도 곰보배추 진액이 들어가 있다.
 곰보배추 쌈밥. 곰보배추는 물론 돼지고기와 된장에도 곰보배추 진액이 들어가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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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에 집 한 채 보인다. 마을 입구다. 몇 발자국 옮기니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보자기'다. 식당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지만 예쁘고 정겹다. 이름 앞에 '농가맛집'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신발이 열댓 켤레 있다. 테이블도 4곳이 차 있다. 의외다.

'마을 할머니가 가르쳐주셔서 왔다'고 했더니 주인장(최미경·46)이 더 반긴다. 조심스레 당겨놓은 방석에 앉아 두리번거리는데 뭔가를 한 잔 내온다. 물이려니 했는데 물이 아니다. 무슨 즙 같다.

약재 성분이 들어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무엇인가 물었더니 음료란다. 곰보배추음료. 곰보배추 원액을 물과 섞었단다. 조금 전 들녘에서 봤던 게 그 곰보배추였다.

곰보배추음료. 곰보배추에서 진액을 추출해 물과 섞었다.
 곰보배추음료. 곰보배추에서 진액을 추출해 물과 섞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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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 와 닿는 느낌이 괜찮다. 일단 거부반응이 일지 않는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씁쓰레한 것 같으면서도 달보드레한 맛이 매력이다. 요즘 유행인 감기 특히 기침, 가래에 특효란다. 폐렴, 생리불순 같은 부인과 질환에도 효능이 있고. 즙을 내는 게 번거로우면 생잎을 말려 보리차처럼 끓여 마셔도 좋단다.

주인장의 곰보배추 자랑이 이어진다. 곰보배추의 효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단다. 우리 몸의 세포 노화를 억제시키고 천연항생제 역할도 한다고.

곰보배추된장.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글 때 곰보배추 진액과 분말을 넣어 만들었다.
 곰보배추된장.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글 때 곰보배추 진액과 분말을 넣어 만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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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배추를 이용해 차린 식단. 곰보배추쌈밥의 상차림이다.
 곰보배추를 이용해 차린 식단. 곰보배추쌈밥의 상차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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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이렇게 좋은 냄새로 된장을 버무려냈다. 음식의 재료로 쓰고 싶어서다. 맛을 본 이웃들의 반응이 좋았다. 내친 김에 특허를 얻었다.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글 때 곰보배추 진액이나 분말을 넣는 방식으로. 2007년에 상품화를 시켰다.

향토음식자원화 사업장을 겸한 농가맛집도 차렸다. 식단에도 곰보배추를 활용하고 싶어서다. 농촌진흥청의 도움을 받았다.

농가맛집 '보자기'의 식단은 곰보배추로 차려낸다. 쌈채소는 물론 쌈된장과 된장국, 갖가지 무침에도 모두 곰보배추가 들어간다. 돼지·오리 수육도 곰보배추 진액을 넣어 재운다. 고기가 맛깔스럽고 느끼하지 않다. 심지어 밥을 지을 때도 곰보배추 분말을 넣는다. 곰보배추밥상인 셈이다.

곰보배추. 일반 배추와는 사뭇 다르다. 잎이 옆으로 퍼져 있고 이파리 양쪽으로 잔털도 나 있다.
 곰보배추. 일반 배추와는 사뭇 다르다. 잎이 옆으로 퍼져 있고 이파리 양쪽으로 잔털도 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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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맛이 독특하지는 않다. 곰보배추의 성분과 효능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맛에서 거부감이 없도록 한 건 그녀만의 내공이다. 화학조미료도 전혀 쓰지 않는다. 겨자채, 쑥갓, 양상추, 치커리와 마늘, 고추도 그녀가 직접 가꾼다. 된장과 무침에 들어가는 우렁이도 남편(김재규)이 키운 것이다.

음식도 약이 된다고 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고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믿었다. 곰보배추밥상에서 보약이 떠오른 이유다. 그러면 주인장이 '대장금'이었을까.

최미경·김재규씨 부부가 곰보배추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풀을 뽑고 있다.
 최미경·김재규씨 부부가 곰보배추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풀을 뽑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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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곰보배추, #못난이배추, #농가맛집 보자기, #최미경, #약식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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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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