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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대서특필한 네덜란드 신문.
 이규혁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대서특필한 네덜란드 신문.
ⓒ 폴크스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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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 이규혁의 인터뷰 기사가 네덜란드 일간지 <더 폴크스크란드(de Volkskrant)> 1월 28일자 주말판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표지사진과 더불어 2, 3면을 연달아 장식한 것이다.

이규혁 선수에 대해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는 이 기사는 네덜란드가 얼마나 한국 스케이트 선수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규혁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네덜란드의 스테판 흐로트해우스에 이어 은메달에 그쳤으나, 그는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유명한 스케이트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외에도 네덜란드 언론은 최근 들어 한국 스케이트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유명세 타는 한국 선수들

2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만들어진 한 편의 드라마를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10km 경기에서 우승 후보였던 네덜란드의 스펜 크라머, 그는 네덜란드의 스포츠 영웅이다. 1등을 달리다가 엉뚱한 코스로 들어가는 바람에 어이없이 실격하고 한국의 이승훈이 금메달을 거머줬다.

대부분 이승훈의 운이 좋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 후 스펜 크라머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실수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의 이승훈과는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고 했으니 가히 이승훈의 실력은 평가받고도 남는 경기였다.

과거 쇼트트랙 경기에서만 두각을 보여왔던 한국은 장거리 경기에서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스케이트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그 이후 네덜란드 언론은 매 경기마다 크든 작든 한국의 스케이터들을 조명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왜 스피드 스케이트에 열광하는가

네덜란드는 장거리 스케이트에 많은 추억을 가진 나라다. 그들의 역사에서 스케이트를 빼면 말이 안 된다. 그들의 스케이트 역사는 동물의 뼈를 스케이트 날로 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리적인 영향도 크다. 국토의 1/3이 해수면보다 낮아 수로가 잘 발달된 네덜란드에서 겨울에 빙판이 된 수로를 이용해 스케이트를 즐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빙판이 된 수로는 그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나 같으니 말이다. 이미 네덜란드 사람들의 DNA 속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스케이트를 타는 기술이 녹여져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매년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너무나 일상적인 스포츠가 스케이트다. 요즈음 얼음이 얼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은 시큰둥해 있었다. 다행히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씨 덕분에 1월 마지막날 처음으로 야외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케이트 저변 인구가 이토록 많은 이 나라와 경기해서 1, 2등을 다투는 한국에 어떻게 네덜란드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케이트를 즐기는 네덜란드 2012년의 겨울.
 스케이트를 즐기는 네덜란드 2012년의 겨울.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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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도시 200km를 하루 종일 지치다

'엘프스테이든톡트(elfstedentocht)'이란 경기가 있다. 11개의 도시를 스케이트로 완주하는 경기인데, 네덜란드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프리슬란드 주에서 치러지는 이 경기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추운 겨울과 스케이트를 떠올리면 기억의 배경은 이 경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가 치러지기 위해서는 자연의 허락이 필요하다. 얼음 두께가 최하 14cm가 되지 않으면 이 경기는 치러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완주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이 경기에서 우승자를 포함하여 완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지 명예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완주했다는 명예를 갖고 싶어 한다. 지독한 혹한 속에서 치러졌던 1965년 경기는 1만 여명의 참가자로 시작하여 겨우 67명 만이 결승점에 도달했었다. 워낙 드라마틱했던 이 경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언론과 방송은 물론 경기가 치러지는 날이면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우승자와 완주자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

철저히 자연에 의존하여 치러지는 이 경기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1997년을 마지막으로 근래에는 치러진 적이 없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이 경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200km의 긴 스케이팅 마라톤이 열리고 그 경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더더욱 스피드 스케이트에 자존심을 걸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올 최저 기온을 나타내고 있는 이번 주는 스케이트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올 겨울 최초로 스케이트를 타다', '엘프스테이든톡트가 치러질 확률이 1%에서 25%로', '전 지역에서 스케이트의 열풍이 불다'.... 어느 지역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가장 안전한지 알려주는 태블릿 피씨 앱도 나왔다.

'엘프스케이든톡트가 열릴 확률이 25%'라는 신문기사.
 '엘프스케이든톡트가 열릴 확률이 25%'라는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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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스케이트의 영웅, 스펜 크라머

스펜 크라머는 네덜란드에서 한국의 김연아에 비견해도 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언론과 광고시장을 독점, 스케이터이면서 백만장자이기도 하다.

밴쿠버에서 프리슬란드 출신인 스케이트 영웅이 한국의 키 작고(물론 한국에서는 키가 작지 않지만) 미소년 같은 이승훈 선수에게 메달을 빼앗기는 장면은 올림픽을 치른 그 해 겨울 내내 이 곳에선 큰 이야기거리였고 덕분에 나 역시 모임에서 스케이트가 화제가 될 때마다 괜히 죄책감 같은 것을 느껴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올림픽 이후 심리적인 이유와 다리 부상이 심각해져 한 해 동안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는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올 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치러진 유럽 챔피언 경기 1만m 경기에서 우승함으로써 왕의 귀환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재기에 성공했다. 국민적인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그는 네덜란드 스케이트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앗, 드디어 얼음이 얼었다. 전국 각지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덕분에 주말에 슈퍼마켓이 비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는 어린아이.
 앗, 드디어 얼음이 얼었다. 전국 각지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덕분에 주말에 슈퍼마켓이 비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는 어린아이.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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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강한 스케이트 국가로 부상 중"

<더 폴크스크란드>는 "한국인들은 겨울스포츠에서 자주 우승하고 있으며 점점 스케이트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2010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올린 쾌거와 스펜 크라머의 악몽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음를 반영하고 있다.

"밴쿠버 올림픽 이전의 한국은 쇼트트랙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했었다. 그러나 밴쿠버에서는 피겨의 김연아를 시작으로 남녀 500m와 10km에서 모두 세 개의 금메달을 얻었다."

'스케이트의 나라' 네덜란드 사람들은 세계 무대에서 거두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태그:#스케이팅, #빙상, #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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