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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군가' 공모 소식을 전하는 <한국일보> 기사
 '국민군가' 공모 소식을 전하는 <한국일보> 기사
ⓒ 한국일보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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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국민을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게 유행인가 보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바꾸는 데 국민들에게 당명 공모를 하더니, 국방부는 '국민군가'를 공모해서 당선작에는 상금 5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국민'에도 관심이 없고, '군가'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지만, 500만 원이란 말에 '나도 한번 도전해 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텐데…' 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사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내가 무슨 국민군가를 만들겠다고. 나는 조금 유명해지고 인기 있으면 무조건 '국민'을 들먹이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든다. 죄다 국민여동생,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가수로도 모자라 국민아이돌.

무슨 '국민'자 안 붙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냥 '국가대표 4번 타자' 정도로 하면 될 것을 꼭 '국민타자'라고 부르는 게 못내 불편했다. 그래도 백번 양보해서 그냥 '모든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호감을 느낄 정도로 인기 있는' 이라는 의미로 '국민'을 붙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가 앞에 떡하니 '국민'을 붙여 놨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군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일 거다. 모든 사람이 군가를 꼭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기분이 언짢지만 이 부분은 그냥 넘기고, 과연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대체로 좋아하는 군가가 가능할지 생각해본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군가라... 이게 될 리가 있나 

멜로디나 가사가 좋거나 노래를 부른 가수의 가창력이 좋으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많이 듣고 익숙한 노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 남성 가운데서도 병역거부자들이나 장애인들, 공중보건의나 방위산업체, 공익근무로 군입대를 대체한 사람들, 하다못해 높으신 아버지 둬서 군대 안 간 사람들까지 따지면 우리 나라에서 군대에 가서 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비율은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칠 거다. 상황이 이러니 애초에 익숙함을 무기 삼아 '국민' 군가 반열에 오르기란 참 쉽지 않다.

그렇담 방법은 노래가 '겁나' 좋거나, 노래를 부른 가수가 듣는 이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해야 할 거다. 먼저 가수를 살펴보자. 국방부는 이미 1월 중순, 김형석이 작곡하고 알앤비(R&B) 가수 박효신이 부른 댄스풍 군가 <나를 넘는다>를 국민군가로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망했다. 세상에 김형석이 작곡하고 박효신이 불러도 히트가 안 된다면 대체 누가 불러야 한단 말인가?

김광석이라면 가능할 거다. 일찍이 <이등병의 편지>로 군 입대를 앞둔 청춘들의 가슴을 후벼 파지 않았던가. 하지만 김광석이 살아 돌아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자아내지 않고선 가창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 마음을 울릴 수 없을 텐데, 그런 가수가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수 섭외가 어렵다면, 노래를 잘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다. 국방부도 아마 이렇게 생각한 거 같다. 그러니 국민군가를 공모해 상금까지 걸었을 테지. 행진곡 멜로디에 힘찬 가사를 붙이면 사람들이 쉽게 외울 순 있겠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거 같지는 않다.

과거 투쟁가들 가운데서도 선전 도구로서 역할만 극대화시킨 노래들은 그 당시에는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남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잊혀갔다. 군가도 마찬가지다. 선동하는 듯한 가사와 멜로디라면 지금 군복무 중인 군인들에게는 널리 퍼지겠지만, 군대 이미 다녀온 사람이나 군대 안 간 사람들한테까지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거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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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하지 말자는 군가로 500만 원 받을 수 있을까?

뭐, 이런 고민들이야 국방부에 맡겨 두고, 나는 잿밥에 눈이 멀어서 어떤 노래로 응모해야 5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조민정이라는 어린이가 한 말에 시인이자 작곡가인 백창우가 곡을 붙인 <싫단 말이야>라는 노래다. 노래 가사가 아주 쉽고 단순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온다.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싫단 말이야-/ 이제부턴 나한테 물어보고 국에 말아줘 꼭 그래야 돼-.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노래로 만든 건데, 억지로 꾸미지 않은 솔직한 감정이 담겨 있어서 노래가 참 좋다. 군생활이나 군대와 관련해서 겪은 일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가사를 쓰면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는 노래를 만들 수 있겠는데, 나는 병역거부를 하느라 군대에 관한 이런 종류의 경험이 없다.

누군가 군대 다녀온 사람이 자기가 겪은 일을 솔직한 감정을 담아 가사로 쓰면 좋겠다. 솔직한 이야기를 국방부가 달가워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국방부가 불편해해서 뽑히지 않는다면 나로선 경쟁자 하나 떨구는 셈이니 나쁠 거 없다.

인디뮤지션 조약골
 인디뮤지션 조약골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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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래는 어떨까?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이 쓴 시에다 가수인 내 친구 조약골이 곡을 붙인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다. 시 전문을 살펴보자.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국방부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군대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라니 말이다.

하지만 흥분하지 말고 조금만 차분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 군대가 존재하는 까닭이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은 전쟁을 대비한다 하더라도 우리 군대가 나아갈 방향으로서 항구적 평화를 노래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젊은이들이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군대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꼭 이 곡으로 국민군가 공모에 응모해서 500만 원을 받고 싶다. 내가 쓴 가사, 내가 만든 멜로디는 아니라서 상금을 내가 '꿀꺽' 할 수는 없을 거다. 나는 그냥 '국민군가' 1등 먹었다는 명예만 가져가도 충분하다. 상금은 권정생 선생님 뜻을 받아, 조약골과 잘 상의해서 북녘 어린이들과, 전쟁터에서 고통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도록 하겠다.


태그:#국방부, #국민 군가, #권정생, #애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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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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