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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지 않는 도시는 빛을 밝히고
수천만의 인구는 빛을 당기고

격자로 다져진 빌딩 창 위로
새벽이 숨 쉬고, 피곤을 삼키고

유동의 빛으로 가늘게 번져가는 헤드라이트
교차로에 숨 쉬어 신문의 헤드라인들

가로수 불빛아래 비틀대는 사람들
모텔가 골목안에 위태로운 사랑들

- 에픽하이, 도시가 잠이 들지 않는 이유-

23일 저녁 종로. 간만에 지인들과 모여 때 이른 송년회를 열었다. 얼마만의 크리스마스 시즌 술자리인지 모르겠다. 사람들과 재밌게 보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 게 내 자랑이다. 평소 인간관계가 빈곤해 밤거리를 거닐어 본 경험이 부족한 본인은 몇 년 만에 처음 목격한 화려한 서울의 번화가 풍경이 새삼 신기했다. 길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들르는 술집마다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거나 별도로 예약을 해야 했고 너무 화려한 네온사인은 간판을 넘어서 사이키 조명 같았다.

간판이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취한 내 눈에는 점점 더 취기가 올랐다. 친절하고 센스 있는 술집 사장님이 길거리에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로 클럽음악을 쏴주니 길에서 춤을 춰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다.

"자, 셋 이상 같이 오시면 맥주 피처 공짜."

길거리에선 호객꾼들이 자꾸 나를 붙잡고 말을 건다. 이걸 헌팅이라 받아들여야 내 속이 편할까. 20대 초반일 때는 썩은 표정으로 저리 가라고 쏴주기라도 할 텐데. 지금은 그렇게 추운 데서 일하는 그분들을 보면 한 겨울에 배달하시는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이 시큰하다. 술집 안도 정신이 없다. 정말 대한민국이 불황이 맞는가 싶다. 테이블을 닦을 새도 없이 바쁜 탓에 이리저리 허둥대는 주점 여종업원의 입매는 금방이라도 경련이 날 것만 같다.

이래저래 겨우 자리를 잡은 우리는 막걸리와 정종을 마시며 회포를 풀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새벽 두시 반에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일산행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부랴부랴 신촌까지 와 버린 나는 남은 시간을 어디서 보낼까 순간 망설이다 신촌역 2번 출구 앞에 한 햄버거 가게에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는 건 이미 체념한 지 오래다. 지금 택시를 탈 확률은 내가 길에서 졸다 얼어 죽을 확률보다 낮다.

사람들은 차선 하나를 거의 점령하다시피한 채 택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좀비 같다. 차도에서 역방향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정말 무섭다. 난 좀비가 되기보다 두 시간 동안 햄버거 난민이 되는 것을 택했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6900원짜리 기본메뉴 세트를 주문하고 2층에 올라오니 세상에, 나 같은 햄버거 난민이 생각보다 많다. 한 열댓 명쯤? 아마도 나처럼 좀비가 되느니 우아하게 첫차를 탑승하고 싶어 하는 이들일 터였다. 삼분의 일 정도는 술에 찌든 건지 피곤함에 찌든 건지 다들 축 늘어져 있다. 정말로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어도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윽!

짠맛이 술을 확 깨게 만드는 감자튀김과 느글느글한 햄버거로 배를 채우면서 창문으로 신촌 시내를 다시금 둘러봤다. 새벽 네 시인데 아직도 지나다니는 차가 많았다. 술집들은 지금도 문들 닫지 않고 영업 중이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꽤 많다. 경찰한테 손을 흔들며 낄낄대는 청년도 보인다.

공중전화 박스는 유리창이 홀라당 깨진 채 유리가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건물의 꼭대기에는 저마다 붉은 등이 숨을 쉬듯 껌뻑인다. 에픽하이의 가사처럼 서울은 잠들지 않는다. 모두가 한이 맺힌 것처럼 열심히 놀고 있었다. 이제 막 휴가 나온 군인처럼.

가뜩이나 잠이 부족한 사람들이 왜 연말이 되면 더 잠을 못 이루고 놀게 되는지를 생각해봤다. 순간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노동과 같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는 여행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난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다. 휴가철만 되면 그 좁은 경포대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몰린다. 가을철이 되면 단풍놀이 구경 온 사람들 때문에 관광버스와 돗자리 부대가 산책로를 점령한다.

크리스마스도 같은 개념이 아닐까. 우리는 그날 어딘가에 꼭 가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은연중에 존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처럼 말이다. 또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숨 쉴 구멍이 몇 개 안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게 우리가 추억 쌓기에 집착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추억도 하나의 성과가 아닐까.

"아...모르겠다"라고 결론짓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방금 먹은 햄버거를 육안으로 다시 확인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엄습한 나는 서둘러 연대 앞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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