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급격하게 요동치던 한반도 정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17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북한을 통치했던 최고 지도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6자회담과 남북관계 개선도 당분간 안개에 싸였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에 커다란 파도가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무지-무능-무기력의 3무(無)외교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대처와 현 상황은 세 가지의 무(無)를 전 세계적으로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무(無)는, 장기적인 안목이 없어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구도 변화와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無智)이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북한의 핵 포기와 관련하여 강경한 태도를 고집했다. 특히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에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 냉전식 대결구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6자회담 참가국들의 물밑 외교로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어가려고 할 때, 정부는 6자회담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연결시키면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렸다. '국내 입지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한반도 평화체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태도를 취한 것은 근시안적 행태였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두 번째 무(無)는, 급변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무능(無能)이다. 국가정보원과 군(軍)은 김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북한의 관영매체가 공식발표를 하기까지 51시간이 넘도록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포착하지 못하고,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전에 있었던 '김정은 대장 명령 1호' 하달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대북 정보망에, 그리고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는 증거다.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한 후에는 오히려 민간단체에서 김 위원장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을 뿐이었다. 이는 정부기관의 북한 관련 분석 능력이 민간기관보다도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만 키웠다. 또,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움직였는가에 대한 국가정보원과 군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은 북한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는 북한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는 사안이기도 하고, 북한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의 북한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부분이아닐 수 없다.

 

세 번째 무(無)는, 중국과 채널 가동이 되고 있지 않고, 한반도 주변 4강 국가(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적극적 대처국면에서 보여주는 이 정부의 무기력(無氣力)이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전화통화를 사흘 동안 시도했으나 중국 측이 이에 응하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정보력과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평가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력 한계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는 한-중 관계가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의 부재를 넘어 이런 위기에 대한 대처에서도 부실한 부분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상당히 발빠르게 북한과 접촉하면서 대처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렇다 할 대처방안도 마련해 놓지 않은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하루 만에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과 실무접촉을 하여 식량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중국은 북한의 공식 발표 이전에 김 위원장의 사망을 알았을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으며,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중 북한 대사관에서 조문을 하는 등, 보다 민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외교부 장관이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고, 일본은 추후에 개인적인 애도라고 발표했지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주변 4강들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북한의 안정적 권력 이양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에 걸맞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래 냉랭하게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조차 해보지 못했고, 오히려 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과 대북방어태세인 '데프콘'의 등급을 올려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는 행동을 취하는 등 한반도 위기관리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先 국민불안해소, 後 대외전략전면재고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우선 국민들에게 불안을 줄 수 있는 요인을 해소한 후, 대외 전략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불안요소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첫째,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은 내부 사정을 매우 알기 어려운 견고한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단독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고, 현재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이기에 문제에 대하여 양자대화를 통한 해결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정부는 주변 4강 국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 및 기타 논의를 위해 국제적인 공조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한반도 정세에서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서의 행위자 역할을 하여 위기상황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처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둘째, 현 상황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고, 김정은 후계자 체제가 공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은 국민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가져오기 충분하다. 따라서 정부는 국제 공조를 통해 입수한 확실한 정보를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있는 그대로, 신속하게 국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의 머릿속에 조금이나마 자리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한다.

 

셋째,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에 대한 인적, 시스템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발표 이전에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아무런 움직임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의 이동여부에 대해서 국가정보원과 군의 입장이 대립하는 등 정보 수집 측면에 있어 허술함을 보였다. 또한 분석 측면에서도 민간기관보다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보 능력이 안보의 핵심 역량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동떨어진 모습 역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큰 요인 중에 하나이다. 국가정보원은 2009년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해외보다 국내 사찰에 더 중점을 두면서 대북전략국을 해체시켰다. 때문에 오랜 시간 북한 문제를 다뤘던 200여명의 요원이 국내 파트로 전출되거나 옷을 벗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휴민트(인적정보) 체제가 붕괴되어 대북 정보 수집이 과거보다 어렵게 되었다. 이런 안보 위기를 불러온 원세훈 원장을 우선적으로 경질하고, 보다 정보에 전문적인 사람으로 인적 구성을 실행해야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는 국가정보국(DNI)을 백악관 산하에 두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정부에도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파트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미국의 국가정보국 운영은 정보 수집과 분석능력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또,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좌우되는 인사가 아닌, 정권과 무관하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필요성도 있다.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부활도 위기상황 대처에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불안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해소한 후, 대외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첫째, 대미·대중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미국에 편중된 외교전략으로 다른 국가는 소홀한 MB식 외교 기조는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불통 사태를 낳았다. 특히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동맹은 냉전 시대의 유물"이라 발언한 것과 같이 미국에 대한 외교 기조와 북한 문제라는 중요한 전략적 문제에서 대립해왔기에 예상되었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의 한-미 동맹 강화가 미국과 함께 대중 포위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데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불편하게 생각했고, 한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한다는 의혹을 떨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략적인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전략적 합의점을 찾으면서 양국 간의 신뢰를 회복하여 서로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는, 진정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 편중되어 있는 외교 기조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가진 기조로의 변경이 필요하다.

 

둘째, 강경하기만 한 대북 기조를 장기적 안목에서 수정해야 한다. 현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 기조는 남북관계의 냉각을 가져왔으며, '불바다' 발언과 같이 북한의 비난 수위를 높이는 데에 일조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정부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위로의 뜻을 전하고, 도의적 차원의 조문을 허용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북한을 적대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모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물론, 강경한 정책이 아닌 대화로 타협을 이끌어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김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대화의 창과 논의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대처국면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김 위원장의 장례식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그 안에 정부가 북한 그리고 주변 4강 국가들과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어긋나있던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시작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로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정 기자는 중국국립무한대학 객좌교수입니다. 


태그:#김정일 사망, #이명박 대북외교, #한반도 정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