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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날씨, 깨끗한 공기 덕에 알프스의 눈 덮인 산맥이 눈 앞으로 다가와 보인다.
 맑은 날씨, 깨끗한 공기 덕에 알프스의 눈 덮인 산맥이 눈 앞으로 다가와 보인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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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Bled)는 류블랴나에서 북서쪽으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예약까지 해서 도착한 호스텔은 4개 침대를 나 혼자 사용한다. 요즘은 비수기란다. 호스텔의 주인아주머니는 얼마 동안이나 호스텔을 경영하셨냐는 말에 "40년!" 이라고 하시곤 뒤에 "우리 어머니가 운영한 것 까지 합치면"하고 덧붙이신다. 블레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주머니의 남편과 자녀들은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른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는 이곳에 모여 함께 보낼 예정이란다.

전날 히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오들오들 떨고 밤새 호스텔 카펫의 먼지를 마셨더니, 다음날 건장한 남자 둘이 양쪽으로 머리를 누르는 것 마냥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났다. 그래도 슬로베니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기까지 왔는데 안 나갈 수 없어서 준비를 해 밖에 나갔다. 류블랴나에서 겪은 짓궂은 날씨에 보답이라도 해주듯이 날씨가 환하게 갰다.

그늘진 곳에 서리가 남아있다. 아마 밤사이에 서리가 내렸나보다. 날씨는 춥지만 개운한 공기에 마음이 탁 트인다. 게다가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까 두통이 좋아졌다.

탁 트인 블레드 호수는 정말 환상이다. 오리와 백조들이 호수 수면을 미끄러지는 풍경을 보니 '평화'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난 것 같다. 여기에서는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다. 호수 가운데에는 섬이 하나있다. 이 섬은 슬로베니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섬이라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 조그만 섬에는 교회가 있다. 날씨가 맑은 덕에 뒤에 눈 쌓인 알프스 산맥까지 보인다. 그림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이 모습을 그려낼 수가 없다.

평화롭다는 형용사가 이 곳에서 왔을까?

 블레드의 명물, 브레드 성에서 내려다 본 시내와 호수 그리고 알프스 산맥
 블레드의 명물, 브레드 성에서 내려다 본 시내와 호수 그리고 알프스 산맥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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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의 명물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블레드 성이다. 호수에 비친 성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이 성에서 블레드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역사박물관과 인쇄박물관도 있다. 슬로베니아에 가장 오래된 성들 중 하나로 1011년의 기록에 이 성이 언급되어 있다. 성 안에 있는 역사박물관은 청동기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블레드 역사를 소장한 박물관이다.

인쇄박물관에서 일하는 분이 나를 반긴다. 털조끼를 입은 모습이 요즘의 복장은 아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니세요?"

나의 짓궂은 질문에 그 분은 유머로 답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신병원이 있어요. 아마 내가 이 복장으로 거리를 오간다면 필시 사람들이 나를 그곳에 입원시킬 것입니다."

내 질문 하나하나에 신명을 내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이 아저씨는 찾아오는 이가 없어 무료했었나 보다.

-직접 인쇄를 하시나요?
"물론이지요. 구텐베르크가 종교개혁 당시에 사용했던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인쇄합니다."

-성경을 인쇄하시나요?
"아니오.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카드나 웨딩카드를 주로 인쇄해요."

 블레드 성에서는 블레드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역사박물관과 인쇄박물관도 방문할 수 있다.
 블레드 성에서는 블레드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역사박물관과 인쇄박물관도 방문할 수 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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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없으니...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 여름이면 제가 화장실 갈 틈도 없답니다."

-저는 지금의 블레드가 정말 아름다워요. 고요하고 평화로운... 다른 계절은 어때요?
"계절마다 개성이 있어요. 겨울엔 눈이 오면 더욱 선경이에요."

 노을이 호수에 비치는 블레드에서의 해지는 모습.
 노을이 호수에 비치는 블레드에서의 해지는 모습.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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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내려오니 날씨가 좋아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사람들 덕분에 호수의 오리와 백조들이 배부른 돼지로 살아갈 수 있다. 호수 속에서 먹이를 구하기보다 부둣가에서 사람들이 주는 빵가루를 즐긴다.

여행객들 중에는 외국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슬로베니아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류블랴나 공항에서 만났던 커플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마음의 휴식을 위해 블레드에 꼭 온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나도 그동안 파리의 대학 강의실에서 사투를 벌이던 강의와 리포트의 스트레스를 이곳에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가로운 이곳 블레드의 깨끗한 공기를 가슴에 가득 담고 가면 복잡한 파리를 더 잘 견딜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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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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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