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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관위는 북조선 선관위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냐?"

 

8월 21일 예배 광고 시간, 청교도영성훈련원 전광훈 목사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전광훈 목사가 불만을 터트린 이유는 선관위의 경고 때문입니다.

 

선관위는 지난 18일 각 구 선관위에 일부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설교 시간 등을 이용하여 주민 투표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주민 투표법 위반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라고 했습니다. 이 감시 대상에 전 목사의 청교도영성훈련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소망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금란교회 등의 대형 교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광훈 목사 "대한민국 선관위가 북조선 선관위냐?"

 

전 목사는 선관위의 경고에 대해 "대한민국 선관위는 북조선 선관위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 투표 참여하라는 게 선거법 위반이면 선거하지 말라고 길거리에서 떠드는 놈은 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민주주의 원리는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가서 자기가 싫든지 좋든지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선관위에서 그런 경고문을 나한테 보내냐. 대한민국이 인민공화국이 됐나.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냐. (선관위가) 헌법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전 목사는 실컷 불만을 이야기한 뒤, "(이런 이유로) 내가 선거 가라는 이야기를 못 해요. 뭐 말 안 해도 (투표해야 하는지) 다 아시니까…"라며 광고를 끝냈습니다. 

 

선관위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전 목사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목사들이 고작 사람의 경고 따위를 들을 리 없었습니다.

 

<뉴스앤조이> 21일자 기사(무상 급식 투표, 교회도 양극화)에 따르면,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도 주일 설교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투표할 권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국민이 의사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용기이자 권리다. 지금이야말로 용기 있는 국민이 필요하다"며 투표 참여를 종용했습니다. 이외에도 왕성교회(길자연 목사), 오륜교회(김은호 목사)가 주민 투표에 참여하라고 예배 시간에 광고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도 22일 논평을 내고 선관위의 경고가 해괴한 논리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치러지는 '정책 투표'를 원천적으로 무산시키려는 것은 적법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불법성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가 되고 정당한 주권 행사를 선전 선동으로 적극 방해하는 행위를 돕는 것이 되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며, "투표의 문제는 서울 시민들의 자의적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투표 거부 운동은 '합법'입니다

 

정말로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 말처럼 투표 거부 운동은 불법인 걸까요. 이러한 질문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는 "주민투표법상 투표 운동 방법으로 투표 거부 운동을 하는 것은 제한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말 그대로 투표 거부 운동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들은 투표 거부 운동이 민주주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목사들에게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대의제의 선거와 직접민주제의 주민투표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식이 통통 튄다"고 합니다.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께 조 교수가 <뉴스페이스>에 기고한 칼럼(주민투표 불참운동은 합법, 주민투표 참여운동은 불법)을 일독해 보기를 권합니다.

 

조 교수가 밝힌, 주민투표 거부 운동이 불법이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지방자치단체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입니다. 가능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고 최선이 없으면 차선의 후보라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유권자가 찍을 사람이 없어 투표에 불참한다 해도 유권자를 나무랄 근거는 없습니다. 유권자는 불참을 통해 최선의 후보를 내놓지 않은 정당을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선거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캠페인을 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관위의 투표 참여 운동은 물론 합법입니다.

 

그러나 주민 투표는 대의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접민주주의 제도입니다. 즉, 대의제에서 다수파에 속하지 못해 영원히 소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직접 정책안을 발의하고, 법안을 개폐하거나 단체장을 소환하도록 길을 터놓은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됩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직접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 제도를 확실하게 도입한 이유는 한 번 당선되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시장이나 시의원들의 전횡을 시민들이 견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대의제는 과반 출석·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이루어지는데, 주민 투표에서는 1/3만 참여하면 투표가 성립되고 그중 과반 찬성으로 의결이 되는 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주민투표는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 대의제보다 훨씬 작은 표로 정책을 만드는 게 가능합니다. 따라서 주민 투표안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불참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합법이고 민주주의 정신입니다.

 

투표율이 1/3이 안 되어 개표도 못 하는 게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언론인의 주장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주민 투표에서는 불참으로 의사 표시를 하라고 애초부터 투표율이 1/3만 넘으면 투표가 성립되도록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공무원, 언론인, 심지어는 선관위도 투표 참여 운동을 일체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오세훈 시장의 일인시위 등의 투표 참여 운동이야말로 명백한 불법이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목사님, 한나라당도 투표 거부운동 했어요

 

<뉴스앤조이>는 최근 무작위로 투표 참여 독려 문자를 날리는 한국미래포럼도 개신교 단체라고 보도했습니다. 게다가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투표참가운동본부) 임원단에는​ 조용기·김홍도·김삼환·길자연·김진홍 목사 등이 있다고 하니 개신교가 이번 주민 투표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잘 보입니다. 

 

하지만 큰 교회 목사들이 지지하는 한나라당도 과거에 주민 투표 거부 운동을 한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뷰스앤뉴스> 22일자 기사(속속 드러나는 한나라의 '주민투표 보이콧 과거')에 따르면, 2007년 9월 광역화장장을 유치하려는 김황식 하남시 시장의 정책에 반대해 김 시장의 거취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진행됐습니다. 김 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한나라당은 그의 낙마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투표 불참 운동'을 펼쳤습니다.

 

또 2009년 8월에는 김태환 제주지사 소환 투표가 진행됐는데, 당시 김 지사는 "명분 없는 주민 소환, 투표장에 가지 말아 주십시오"라며 대대적 투표 불참 운동을 폈다고 합니다. 김 지사는 한나라당 소속이었으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때 다른 후보에게 공천을 주자 무소속 출마해 당선된 후, 한나라당과 공조 체제를 펴 온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투표 거부 운동은 이미 전부터 진행되어 온 합법적 운동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 종교 단체 중 유독 우리 개신교 목사들만 유난인 걸까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태그:#주민 투표, #전광훈 목사, #청교도영성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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