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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말지역에 있는 공동변소. 300여 주민이 7개의 변소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 철거위기의 공동변소 골말지역에 있는 공동변소. 300여 주민이 7개의 변소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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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다음 날 펜과 메모지, 카메라를 둘러메고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2004년 폐광)를 찾았습니다. 뭔가 커다란 이슈가 등장을 하게 되면 작지만 일상에선 중요한 사건들이 묻히게 마련입니다. 혹여 옛 광업시설이 철거되지는 않을까, 6칸짜리 공동 재래식 변소가 철거되지는 않을까라는 조바심 등이 그것입니다. 지난 겨울에도 이곳 사북 골말지역에 있는 여러 집들이 철거됐습니다. 40년의 역사가 단 30분만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미 철거예정지로 고지가 됐기에 막는 사람도 막을 사람도 없었지만 한 시대의 역사가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폐허(廢墟)관광을 들어보셨나요? "인간이 만들어 놓고 장기간 방치해 놓은 건축물 또는 흔적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수도원 여행, 미국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 투어, 유럽의 산업유산 루트 여행, 일본 나가사키의 유령섬 군칸지마(군함도:軍艦島) 투어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곳의 특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기둥만 몇 개 남은 폐허의 흔적, 습한 곰팡이 냄새, 녹슨 구조물,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더럽고 버려진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한편 왠지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고, 언젠가 한번 와본 것 같은 익숙함, 현재 나의 삶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러한 곳이기도 합니다. 

약 50m 높이의 수직갱. 이곳이 해발 650m. 지하 850m를 내려갔다고 하니 해저로 파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 본관건물과 수직갱 약 50m 높이의 수직갱. 이곳이 해발 650m. 지하 850m를 내려갔다고 하니 해저로 파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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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곳이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갖가지 테마파크와 첨단 엔터테인먼트가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남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이러한 곳을 찾으려 할까요? 아마도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속도의 시대, 쫓아가는 자와 쫓기는 자만 존재하지 그 속에 '나'란 없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돈의 인문학 저자)를 만났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국 사람은 절대 이기(利己)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타(利他)적이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돈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돈이 많은 사람들조차 만나면 돈 얘기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삶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의 삶이 목적이 되는 이기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역설을 얘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목표를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물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폐석더미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오른쪽 끝이 사북시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다.
▲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전경 폐석더미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오른쪽 끝이 사북시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다.
ⓒ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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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의 여행으로 삶의 문제가 치유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속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단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삶의 공간 또한 변화시켜야 합니다. 시공간이 모두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30~40년 동안 익혀왔던 삶의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나 혼자가 아닌 다양한 페르조나(persona)를 갖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삶의 방향을 전환하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잠시나마 삶의 원형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강원남부 4개 시군(영월, 정선, 태백, 삼척)에는 여전히 폐광의 흔적, 원형이 남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혁명의 요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유럽의 산업혁명은 기억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한 때 360여 개의 광업소, 7만여 명의 광부가 땅속에서 이른바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던 곳이었습니다. "지나다니는 개가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닌다"느니 "광업소 직원이라면 셋째 첩으로라도 딸을 준다"느니 하는 말이 모두 이곳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사북에 위치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산업시설로써 그 원형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장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유산과 생활사 유산을 있는 그대로 보존, 유지하고 있어 그 장소성과 진정성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지키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모두 전직광부들이며 이들의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가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광산의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조작도 전시계획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곳에는 마네킹도 없고, 그 흔한 LED도 없습니다. 디오라마도 없고, 터치 스크린도 없습니다. 시공테크적(?)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당시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광부들과 그들의 삶터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날 것이 그 어떤 화려한 치장 보다도 가슴에 더 와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올 여름 시간을 되돌리는 여행,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심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정선군 사북읍에서는 올 여름 7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제17회 사북석탄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삶의 애환, 희망의 빛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사북석탄문화제에 많은 참여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태그:#사북, #여행, #나, #폐허관광, #치유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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