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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이순재의 '쓴소리'에는 거침이 없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선 아이돌 가수의 섣부른 연기 도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히고, TV 토크쇼에선 후배 연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연예계에 만연해 있는 스타의 '권위의식'을 꼬집기도 한다. 그의 쓴소리는 경계가 없고 제한이 없어서, 연예인 개개인의 문제를 꼬집는가 하면 드라마 제작환경 전반의 잘못된 풍토를 질타하기도 한다.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감히 그 어느 누구도 이순재의 말에 반박하거나 토를 다는 일은 없다. 그것은 그가 언제나 맞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며, 자신의 말을 늘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에선 그가 지금까지 드라마계에 던진 쓴소리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작금의 드라마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쓴소리 1.
"아이돌 가수들은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연기에 도전한다." (KBS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 제작발표회 中)


 KBS 새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는 이순재.
 KBS 새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는 이순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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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의 연기 도전은 이젠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과거엔 가수로 활동하다 팀이 해체되거나 하는 과정을 거쳐 솔로로 나선 후, 본격적인 전업 연기자로 드라마나 영화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가수로 활동하는 도중에 연기를 겸업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오히려 본업인 가수보다 연기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고 인기를 얻은 케이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소녀시대'의 윤아는 시청률 40%를 넘긴 KBS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하면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고, 'SS501'의 멤버였던 김현중은 KBS 월화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이후 차세대 한류스타로 급부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돌 그룹 내에서 연기에 도전하는 멤버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이돌 가수의 연기 도전은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영화 제작진의 이해관계 역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돌 가수는 이미 어느 정도는 얼굴이 알려진 인기 연예인이고, 기성 배우들에게는 없는 충성스러운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아이돌 가수 아무개가 드라마,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은 어마어마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팬들은 가상 포스터를 만들고, 예고편을 인터넷 이곳저곳에 퍼 나르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제작발표회장엔 개성 있고 튀는 선물공세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요즘같이 인터넷에서의 피드백이 중요한 시기에, 팬덤이 알아서 홍보해주는 아이돌 가수의 캐스팅을 마다할 제작진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문제는 그들의 부족한 연기력이다. 아이돌 가수의 상당수는 이순재의 말마따나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에 도전한다. 요즘 연예기획사에선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에게 연기지도도 한다고 하지만 단역, 조연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한 연기자에 비해 연기력이 뛰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이처럼 턱없이 부족한 연기력으로 대뜸 작품의 주연 자리를 꿰차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은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주연이란 작품을 이끌어가는 자리. 그런 자리에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아이돌 가수를 데려다 놓으니 아무리 좋은 연출과 극본이 뒷받침된다고 한들 작품의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운이 좋아 흥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주연배우의 연기력 논란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게다가 아이돌 가수는 작품 하나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본업인 가수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연기를 띄엄띄엄하게 되고, 따라서 연기력이 늘 가능성이 낮다. 죽자고 연기 하나만 파고들어도 모자를 판에 다른 일까지 겸업하니 그 다음, 다다음 작품에서도 연기력은 늘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다.

쓴소리 2. "쪽대본이 우리 드라마를 망치고 있다." (SBS <기적의 오디션> 현장공개 및 기자간담회 中)

우리 드라마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쪽대본. 이 문제에 대해 이순재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문제를 언급했는데, 올초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 종방연에서도 비슷한 시기 겹치기 출연한 MBC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쪽대본 문제를 꼬집은 적이 있다.

이순재는 쪽대본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드라마 하나의 완성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밝혔다. 쪽대본이 나오면서 드라마는 날림으로 만들어진다. PD는 연출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 어떻게든 방송시간에 맞춰 찍고 편집하는 데 급급하고, 배우들은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자연히 지닌 연기력의 50~60% 밖에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드라마의 완성도는 낮아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 제작환경에 질려버린, 연기력을 갖춘 많은 배우들이 제작기간이 드라마보다 여유가 있는 영화로 몰려들어 드라마 쪽에는 역량이 안 되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고 고액의 출연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가뜩이나 연기력도 부족한데, 시간마저 넉넉하지 않으니 더 형편없는 연기를 펼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쪽대본, 생방송 촬영에 언제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사전제작이다. 그러나 최근만 하더라도 100% 사전제작된 SBS 월화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이 한 자리대 시청률로 종영하고, '애프터스쿨' 유이 주연의 <버디버디>가 일찌감치 촬영을 마치고도 편성에 난항을 겪다 결국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에 편성되는 등,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내놓는 성과가 좋지 못해 관계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순재는 이 문제에 대해 "결국 방송국의 책임"이라며 방송국이 난무하는 드라마 외주제작사들 사이에서 대본이 꼬박꼬박 제때 나올 수 있는 곳과 계약하고, 또 계약 당시 그러한 점을 약속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 연기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질타하는 이순재.
 후배 연기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질타하는 이순재.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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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3.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을 맞추는 것인데, 후배 연기자 중에는 촬영장에 바삐 와서 대사 한 번 맞춰보지 않고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中)

"드라마라는 건 호흡이 맞아야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할 때도 나문희씨와 나는 촬영이 끝나고도 남아서 대사를 맞췄었다. 대사를 못 외워서가 아니라, 톤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런데, 각자 밴 타고 우르르 와서 분장하고, 서로 얘기도 안 하고 촬영장 들어가서 연기를 맞추면 이게 앙상블이 맞겠냐 이거다."

이순재의 쓴소리는 후배연기자들의 잘못된 태도, 이른바 '스타의식'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2009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몇몇 후배 연기자들의 잘못된 태도에 그야말로 '거침없이' 지적했다.

얼마 전 QTV <수미옥>에 출연한 그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후배 연기자 장근석에 대해 "재간은 있는데 스탠바이가 조금 늦는다"며 "장근석의 매니저들이 마치 촬영장에 늦게 내보내면 그만큼 권위가 선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방송이 나간 후 장근석의 매니저는 물론 일본에 체류 중이던 장근석 본인도 직접 이순재에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알려졌다.

<무릎팍도사>에서 MC 강호동이 이순재에게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나는 촬영장에서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현역 최고령 연기자지만 그는 밤샘 촬영도 마다 않는다. 새벽 2시가 됐건, 3시가 됐건, 그는 자신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렸다가 촬영을 마친다.

MBC <지붕 뚫고 하이킥>에 그와 같이 출연했던 배우 황정음은 <MBC 스페셜> '순재 날다'에서 "새벽 두시가 돼도, 여섯시가 되도, 아침이 돼도 스케줄을 변경해달란 말씀을 전혀 안 하신다"며 다른 배우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촬영에 임하려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후배들을 향한 그의 충고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건 이처럼 그가 지금까지 권위의식을 버린 채 방송에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순재의 쓴소리, 더 듣고 싶다

드라마, 영화 한 편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연예인이 부지기수인 연예계에서 이순재는 50여 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후배들을 향한 쓴소리도,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한 쓴소리도 결국 모든 것은 더 나은 연기,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애정 어린 직언이다.

드라마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여기저기서 한류를 전파하는데, 자격미달 연기자들이 판을 치고, 낙후된 제작환경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직 그가 필요하다. 거침없는 쓴소리, 더 팍팍! 들려주세요, 순재 옹. 당신의 쓴소리가 병든 대한민국 드라마에 약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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