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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토요일, 텔레비전 광고에서나 보았던 온 동네 브런치(brunch)를 네덜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취재했다.

 

옴만(Ommen)은 네덜란드 중북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약 2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이 마을을 끼고 있는 펙트(vecht)강을 통해 오랜 세월 무역의 통로였던 이 도시는 네덜란드 내에서 꽤 경치 좋기로 정평이 나 있기에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스무 개가 넘는 캠프장이 있고, 사람들이 캠핑카를 이용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을 주변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을 중심부 가게들은 늘 관광객으로 붐벼, 지역 주민으로서는 다소 복잡하고 성가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방문한 여행객에게 많은 장소를 내주어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래서 마을 상점들과 시청은 매년 한 번씩 지역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행사를 한다. 관광객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마을을 잘 가꾸어 해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벌써 다섯 차례 치러진 이 행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많은 관광객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해 지역 상권과 시 당국이 나서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마을, 참 매력적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상점과 시청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준비한 브런치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행사를 위해 준비된 식탁들이 마을 중심가를 뒤덮었다. 변덕스런 네덜란드의 날씨 때문에 새벽부터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텐트를 준비해야 했고, 브런치가 시작되는 오전 11시 30분 이전에 음식이 모든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한 달 전부터 마을 신문과 각 상점을 통해 브런치 예약을 접수했고, 행사 전에 500명을 위한 식탁이 준비되었다.

 

20명의 자원봉사자와 센트룸에 자리 잡은 모든 상점, 그리고 시청의 지원으로 마련된 옴만 시민을 위한 브런치는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되어 오후 2시에 끝났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시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옴만에 대한 시를 낭송하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500명의 식사를 마련했던 자원봉사자 중 하나였던 아유(Ayu)는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이 무척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아유는 덴하그(헤이그)에서 태어났는데, 남편이 이곳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이주하였다고 했다. 대도시에서 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아유는 지역 주민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옴만시의 행정에 대해서도 칭찬을 많이 했다.

 

아유의 칭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펙트흐노튼(vechtgenoten, 함께 병마와 싸우는 친구)이라 불리는 암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 단체의 활동이었다.

 

브런치 행사에서도 펙트흐노튼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아유는 펙트흐노튼에 가면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서로 위해주며 노력하고 사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었다.

 

암 환자와 그 가족 돕는 펙트흐노튼

 

다음날 펙트흐노튼을 찾았다. 그날은 펙트흐노튼의 '타운 오픈(사유지의 정원을 공개하는 행사)' 날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잘 가꾼 정원을 초여름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덕분에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이곳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코디네이터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2008년 11월 5일 암 환자 가족 중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암환자의 치료를 돕고 환자와 함께하면서 환자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게 되는지를 체험했고, 암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현재 2명의 코디네이터와 35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으며, 이곳에서 함께 마음을 치유한 암환자와 그 가족은 2010년 한 해 동안 3500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은 근처의 종합병원에서 소개를 받고 찾아오는 환자 및 그 가족인데, 지역을 불문하고 누구든 신청할 수 있다. 처음에는 회원의 대부분이 이 지역 주민이었으나, 요즈음은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찾아오고 있다. 대부분의 재원은 후원자들의 기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에서 지원받는 것은 거의 없다.

 

환자와 그 가족이 잠시라도 고통의 짐을 덜고 함께 즐기고 웃고 떠들 수 있는 곳이 바로 펙트흐노튼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메이크업 배우기, 뜨개질, 그림 그리기, 요가, 모자이크 배우기, 자전거 함께 타기, 꽃꽂이, 요리 배우기, 악기 배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환자 가족끼리 고통을 이야기하고 나누며 서로 위로할 수 있게 하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코디네이터인 안키 반 델 훌스트는 환자가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가족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늘 행복한 생각과 건강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라고 펙트흐노튼을 소개하였다. 안키 반 델 훌스트는 옴만 및 그 근교에 살고 있는 화가, 작가, 음악가, 요리사 등이 이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재능을 기부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환자와 그 가족은 행복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안키 반 델 훌스트는 서로 도움이 되고 함께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기자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옴만에서 세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던 귀한 취재 시간이었다.

 


태그:#자원봉사, #암, #브런치,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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