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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사태는 마무리됐다. 언론에 의해서. 줄곧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노사간 합의를 봤다'는 말만 믿고 '사태 종결'을 선언했다. 합의 내용?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극적 타결이었다. 이후 언론 지면과 화면에서 한진중공업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28일 배우이자 탤런트 김여진씨는 CBS <시사자키 신율입니다>에 출연해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했다. '노사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현재 85호 크레인에 남아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노동자들의 극한 상황을 우려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김여진의 눈물과 언론의 침묵

 

같은 날 방송3사 메인뉴스는 '협상이 타결된 그래서 언론에 의해 종결된' 한진중공업 사태를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들의 잘못은 없지만, 종종 화사하게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며 왠지 화가 났다. 언론의 한진중공업 사태 침묵과 앵커들의 웃음 사이에 김여진씨의 눈물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나. 장마가 다시 시작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의 안전이 걱정됐다.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장마까지 겹치면… ? 무엇보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상태가 걱정됐다.

 

한진중공업 노조집행부의 이번 선택은 법적인 문제 등을 포함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측을 상대로 장기간 파업을 벌이면서 지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17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위원의 안전여부를 도외시 한 채 '협상 타결'을 시도한 점은 '인간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크레인에서 내려가지 않겠다는 김진숙 위원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별 상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노조집행부는 이 부분을 가장 먼저 숙고했어야 했다.

 

한진중공업보다 더 '한진중공업스러운' 한국 언론

 

아니다. 비판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언론을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6개월이 넘는 파업 기간 동안 대다수 언론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다.

 

한나라당이 한진중공업 청문회 개최를 검토했을 때 짧은 관심을 표명한 것을 제외하곤 한국 언론 상당수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이 지금까지 노조와의 대화를 사실상 거부하고 집권 여당마저 무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언론의 침묵 때문이다.

 

KBS가 수신료 문제를 다루듯 한진중공업 문제를 다뤘다면, 아니 수신료 보도를 위해 동원된 카메라와 기자 절반 정도만이라도 한진중공업에 할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정은 어리석지만 사측의 태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언론이 좀 더 이 문제에 적극 나섰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언론은 한진중공업보다 더 '한진중공업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 한진중공업을 사태를 '강제로' 종결시켰다. 국회의 한진중공업 청문회 무산을 겨냥한 듯한 '노사타결' 이후 한나라당은 사태가 일단락됐음을 언급하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언론의 무관심과 집권여당의 이런 태도를 전제했을 때 오늘(29일) 개최되는 청문회가 실효성이 있을까. 없다.

 

스스로 '언론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한 언론

 

한국 언론은 더 이상 언론플레이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언론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파문이 그렇고 KBS 수신료 문제가 그렇다. 스스로 '언론플레이어'가 되어 사안의 비중을 조절하고, 정치권과 노동계를 압박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KBS와 MBC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단순히(?) 'MB에 우호적인 경영진'의 행태라고 치부하기엔 묵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논쟁 못지 않게 '언론개혁'을 다시 화두로 끄집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을 뛰어넘는 '언론개혁'의 구체적 청사진을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모색할 시점이란 얘기다. 2011년 한국 언론은, 적어도 나의 눈으로 봤을 땐 자정 능력을 상실한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곰도리의 수다닷컴'(http://pressgom.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한진중공업, #크레인농성, #수신료, #KBS기자,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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