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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피해자 수 알 수 없지만 분명 범죄에 책임 있어"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가 리비아의 국가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와 그의 아들 사이프 카다피, 그리고 카다피의 처남이자 군정보국장인 압둘라 알-세누씨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6월 27일(헤이그 시간)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위의 세 명이 살인과 박해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체포 영장을 발부한 이유에 대해 이들 세 명을 국제형사재판정에 세우고, 그들이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방해하거나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며, 힘을 이용해 범죄를 계속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 2월 26일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1970 채택에 의해 사건을 넘겨받았고 3월 3일 조사를 시작했다. 체포 영장은 이들 세 명이 2월 15일-28일 사이 국가 기관과 보안군을 이용해 저지른 범죄를 근거를 삼았다. 그러나 판사들은 이들 세 명이 범죄를 은폐했기 때문에 몇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고 감옥에 가두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들은 지금까지 최소한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포 영장 발부 기자회견에서 판사들은 정확한 피해자 수는 알 수 없지만 세 명이 분명 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카다피는 의심할 여지없이 리비아의 절대 통치자이며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위자들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아들인 사이프 카다피는 공직에 있지는 않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카다피 측근 중 하나로 재정과 행정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총리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카다피의 처남인 압둘라 알-세누씨는 군정보국 수장으로 반군의 근거지인 벵가지의 시민들을 공격하도록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또한 군정보국은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억압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비아 당국 "제3세계 지도자 기소하려는 도구일 뿐" 폄하

모하마드 알-카무디 리비아 법무장관은 트리폴리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 영장 발부에 대해 "제3세계 지도자들을 기소하려는 서방 세계의 도구일 뿐"라고 폄하하고 국제사회를 비난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나토의 군사작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또한 주권 국가를 협박하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게다가 혁명 지도자(카다피)와 그의 아들은 리비아 정부의 어떤 공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주장한 범죄들과 어떤 관계도 없다."

칼리드 카임 리비아 외무부 차관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국제형사재판소나 판사들 모두 리비아 국민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결정을 집행할 법적, 도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리비아 국민들만이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다."

체포 영장은 발부됐지만 카다피 등 세 명이 당장 체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리비아는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조인한 115개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국제형사재판소는 리비아에 들어가 이들 용의자들을 체포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판사들은 체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엔 안보리가 방법을 적극 모색하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설립 취지에 명시된 내용을 넘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군이 트리폴리로 진군한 후 카다피를 체포해 헤이그로 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반군의 진격이 지지부진하고 카다피 진영과 반군 진영 사이의 대치가 정체상태에 빠진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를 하기 힘들다. 

체포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리비아 국민들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 영장 발부에 큰 의미를 두고 거리로 뛰어 나와 서로를 축하했다.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벵가지와 미스라타의 시민들은 축포를 쏘며 축하했고 기쁜 소식에 거리에서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도 있었다.

"카다피측 출구 전략 논의 와중에 체포 영장... 역효과 낼 것"

일부 전문가들은 체포 영장 발부가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리비아 출신으로 뉴잉글랜드 대학 소속의 분석가인 알리 아미다는 씨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주부터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의 출구 전략에 대한 논의가 리비아와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부 반군 지도자들은 카다피가 리비아에 머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언급을 했고 양측 모두 정치적 타협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카다피는 자신이 쫓기는 범죄자가 됐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전쟁을 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미다는 또한 체포 영장 발부가 정당한 것이긴 하지만 아랍세계에서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나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가만 두고 왜 카다피에게만 체포 영장을 발부했는지 냉소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제형사재판소가 독재자들을 선별해 항복하지도 권력을 내놓지도 않는 카다피만 기소하고 다른 독재자들의 범죄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은 비록 세 명을 곧 헤이그 법정에 세울 수는 없겠지만 체포 영장을 통해 그들을 전범 용의자로 지목한 것 자체가 그들의 입지를 제한하고 움직임을 통제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또 다른 국가 원수로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있다. 그는 대량 학살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 밖으로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으며 국제회의 참석도 제한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바시르 대통령과 가까운 국가 원수들조차 때로 그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번 주 월요일 중국을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전용기의 투르크메니스탄 영공 통과가 거부돼 중국 관리들의 만남을 연기해야 했다. 카다피도 비슷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카다피에게 실질적인 압력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이번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 발부가 카다피에게 실질적인 압력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토의 군사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여러 수단을 동원해 특별히 카다피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군과의 타협과 생존을 위한 정치적 협상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당장의 실질적인 효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체포영장 발부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카다피와 그의 최측근들을 범죄자로 인정한 것은 국제사회가 이들이 통치하는 리비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카다피 일가와 측근들의 독재와 권력 남용을 범죄로 인정한 것은 또한 국제사회가 살해와 억압으로 고통 받고 희생당한 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카다피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 것이다.


태그:#리비아 , #카다피 , #국제형사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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