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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합치면 둥그런 오카리나가됩니다.
▲ 둥근 오카리나 둘을 합치면 둥그런 오카리나가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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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721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라는 바이올린이 한화 172억 원에 팔렸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습니다. 제겐 이름도 생소합니다만 바이올린 연주하는 이들에겐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 악기가 평생 갖고자 하는 꿈의 악기겠지요.

단지 골동품으로서 소장가치 때문은 아닐 겁니다. 악기가 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자신의 솜씨가 더해지면 훌륭한 연주가 되리란 확신 때문이겠죠. 그 간절한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몇 달 전부터 아내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됐는데 요즘 제가 부는 오카리나에 아내 불만이 심합니다. 잘 불고 있는 악기를 자꾸 바꾸랍니다. 제 호흡량이 악기와 맞지 않답니다.

좀 더 호흡량을 받아주는 새 오카리나로 바꾸랍니다. 실력이 나아진 걸까요? 아내 잔소리에 '일 못하는 목수가 망치 탓한다'며 멀쩡한 악기에 웬 타박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아내 말에 조금씩 욕심이 납니다.

손에 착 붙는 물건 만나면 일도 기쁨도 두 배

떼낸 진흙을 둥글게 만듭니다.
▲ 모양만들기 떼낸 진흙을 둥글게 만듭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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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을 냅니다. 좋은 소리 내려면 적당한 위치에 뚫어야 합니다.
▲ 구멍 내기 구멍을 냅니다. 좋은 소리 내려면 적당한 위치에 뚫어야 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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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조금 비싼 악기로 연주하면 더 좋은 소리가 날 듯합니다. 간사한 마음이 고개를 쳐듭니다. 한 가지 고민은 좋은 소리를 내는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뜻 아내의 말에 동의 못하고 황토색 오카리나를 열심히 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악기 연주를 평생 삶으로 택하신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 이해가 됩니다.

살다보면 손과 몸에 착 달라붙는 물건이 있습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란 착각이 들 정도니까요. 그런 물건을 손에 넣으면 기쁨이 말로 표현 안 됩니다. 손에 잘 맞으니 하는 일도 두 배나 즐겁습니다.

그러나 뻔 한 주머니 사정에 무턱대고 지름신을 불러 비싼 물건을 살 수도 없습니다. 결국, 궁리 끝에 필요한 도구를 내 손으로 만들 보리란 터무니없는 욕심이 생깁니다.

기대 이하지만 직접 만들어 보니 애착이란 게 생겼다.

연필처럼 생겼습니다. 종류별로 크기가 다릅니다.
▲ 구멍 내는 도구 연필처럼 생겼습니다. 종류별로 크기가 다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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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욕심만으로 기대를 채울 수 없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친 내 분신 같은 물건을 보며 허탈해 합니다. 그래도 직접 만든 모든 것에는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무슨 애착이란 게 생기게 마련입니다.

지난 25일, 여수 돌산에 있는 모 펜션에서 오카리나를 직접 만들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고맙게도 오카리나 동호회에서 악기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을 준비한 겁니다. 아내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곳에 갈 이유가 충분하답니다.

아내와 저는 열일을 제치고 돌산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는 직접 만든 악기에 자신의 숨소리를 넣어 아름다운 소리 낼 일을 벌써부터 상상해선지 날씨와 반대로 표정이 여간 밝지 않습니다.

평소엔 가랑비만 내려도 위험하다며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입에 올리는데 그날은 퍼붓는 비와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아내는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를 야속하게 쳐다봅니다.

폴란드서 달려온 남편, 보고픈 아내 때문에?

폴란드 출장갔다 귀국 후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아내를 보러 왔겠죠?
▲ 아내와 함께 폴란드 출장갔다 귀국 후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아내를 보러 왔겠죠?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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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메아리'가 제주를 지나 남해안으로 달려옵니다. 여수도 점점 비바람이 거세집니다. 퍼붓는 비를 뚫고 돌산에 도착했습니다. 그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멀리 순천에서도 외진 곳을 찾았습니다.

더 놀라운 건, 폴란드로 장기 출장 갔던 동호회 분도 오셨습니다. 마침 귀국일이 그날이라 돌산으로 달려왔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아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겠지만 열정 하나는 인정됩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 진흙놀이 아이들이 열심히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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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저녁을 먹은 후, 스무 명 남짓의 어른과 꼬맹이들이 오카리나 제작 체험실에 모였습니다. 창밖은 소란한데 낮은 책상 뒤로 머리와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전문 제작자 한 분이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일순간 모두들 긴장합니다. 책상위엔 악기 만들 고운 흙이 올라서있습니다. 이윽고 도사처럼 생긴 분이 말문을 엽니다. 오늘은 자신도 처음 만들어 보는 오카리나를 함께 만들잡니다.

전문가도 처음 도전하는 악기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다니...

일련번호르 찍습니다. 아내의 작품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네요.
▲ 일련번호 부여 일련번호르 찍습니다. 아내의 작품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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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뉜 오카리나를 합치기 전 반쪽에 소리를 넣어 봅니다.
▲ 중간점검 둘로 나뉜 오카리나를 합치기 전 반쪽에 소리를 넣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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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황당한 일입니까? 작은 거위 같은 평범한 오카리나를 만들 거라며 잔뜩 기대를 품었는데 전문가도 처음 도전하는 악기를 만들겠다니요. 아쉽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저 내 손으로 악기 한번 만들어 본다는 감사한 생각을 하며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후, 도인 같은 분이 흙을 나눠줍니다. 탁구공보다 조금 큰 흙이 손안에 들어옵니다.

세 아들과 함께 모인 아이들은 진작부터 진흙 장난 할일에 흥분했습니다. 차분하게 앉아 있는 것도 잠시 손안에 고은 흙이 들어오자마자 각자 창의적인(?) 모양을 정성껏 만들어 갑니다.

옆에 있는 아내는 애들이 그 일에 집중하길 바라는 눈칩니다. 나름대로 정교한 작업을 하는데 애들 손이 지나가면 한순간 공든 탑이 무너질게 뻔 하니까요. 오늘만은 진흙장난에 여념 없는 아이들이 기특합니다.

태풍 '메아리' 뚫고 찾아가 들은 말, "참 가슴이 아프네요."

그렇게 도사님 같은 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나만의 오카리나를 만들었습니다. 반으로 잘린 오카리나에 손을 얹고 소리 나는지 확인도 했습니다. 소리 구멍을 내고 다시 불었더니 그럴듯한 음이 흘러나옵니다.

쿠키처럼 생겼나요? 흙으로 빚은 오카리나랍니다.
▲ 쿠키 아니에요. 쿠키처럼 생겼나요? 흙으로 빚은 오카리나랍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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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감탄사를 터트립니다. 정성껏 만들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느덧 둥근 오카리나가 모양을 갖춰갑니다. 마지막 손질을 마친 아내가 완성된 오카리나를 선생님에게 내 보입니다.

아내가 만든 오카리나를 한손에 들고 일련번호를 찍던 선생님이 넌지시 한마디 던집니다.

"이놈 보니 참 가슴이 아프네요." 그 말 듣고서 아내가 뱉은 말...

"선생님 이렇게 만든 저도 속상해요." 그 소리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내가 만든 게 그렇게 못생겼어?" 아차! 실수...

흙피리입니다. 입에 흙 들어갑니다.
▲ 흙피리 흙피리입니다. 입에 흙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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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처럼 생긴 오카리나입니다.
▲ 오카리나 항아리처럼 생긴 오카리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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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내는 못생긴 오카리나에 정이 듬뿍 가나봅니다. 애지중지 만지며 탁자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못생겼으면 어때, 소리만 예쁘면 되지."

그러자 아내가 대뜸 한마디 합니다.

"내가 만든 게 그렇게 못생겼어?" 아차! 실수...

확 토라진 아내의 옆모습을 보며 속으로만 한마디 했습니다. 남들은 반질반질 예쁘게 잘도 만들었던데 아내 오카리나는 왜 그렇게 못났을까요?

못난이 오카리나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다음 번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제가 만들어 보리란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아내가 만든 오카리나가 잘 구워져 소리는 예뻐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태그:#오카리나, #여수 돌산, #태풍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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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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