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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결의안에 따라 나토는 카다피를 직접 겨냥할 수 있다."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고위급 인사가 카다피의 군 시설은 물론 직접 카다피를 겨냥해 살해하는 것도 유엔 결의안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10일 씨엔엔(CNN)이 보도했다. 씨엔엔(CNN) 군사 자문과의 대화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리비아 군사 작전에 관련돼 있는" 이 나토군 고위 인사는 카다피가 군 지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유엔 결의안은 군 시설뿐만 아니라 카다피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카다피를 직접 겨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 인사는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나토는 리비아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통과된 유엔 결의안 1973에 근거해 지난 3월 31일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시작해 카다피 군을 겨냥한 공격을 계속해 오고 있다. 두 달 이상이 지났지만 카다피는 세계 최강의 연합군 공격에도 굴복하지 않고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카다피 정권에 맞서고 있는 반군 세력은 나토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카다피 군에 압력을 가하기는커녕 자신들을 방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첨단 전투기를 이용한 공격과 압박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나토는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헬기를 동원해 군사시설이 아닌 카다피 군을 직접 공격했다. 또한 군사작전이 기대했던 것만큼 신속한 결말을 내지 못하자 나토는 최근 리비아 군사작전을 90일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군사작전을 빨리 끝내고 북아프리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카다피를 없애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나토의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카다피가 문제의 근본원인이며, 자국민들을 살해한 독재자로 지도자의 명분을 상실했으며, 카다피 퇴출이 문제해결의 해답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리비아 국내적으로도 정당성이 확보돼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토 고위 인사의 카다피 살해 암시는 국제적, 국내적으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아주 민감한 발언이다.

아무리 독재자라지만, 직접 겨냥해 살해?

지난 2월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 죽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은 리비아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지난 2월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 죽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은 리비아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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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되는 첫 번째 문제는 과연 국제사회가 독재자라 할지라도 한 국가의 원수를 직접 겨냥해 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토라는 국제기구의 정책 결정과 실행에 누가 합법성을 부여하는가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물론 나토가 지휘권을 이어받기 전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은 유엔의 결정 하에 이뤄졌다. 그러나 군사개입을 결정한 유엔 결의안에 다른 해석이 첨부되는 이런 상황에서는 애초에 유엔에 의해 부여된 합법성 또한 다른 해석을 거쳐야 한다.

나토는 일부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미국 등 28개국의 군사연합기구다. 국제정치의 실권을 쥔 나라들의 연합기구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막강하고 나토의 결정은 국제정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회원국 내부의 일이 아닌 외부 일에 나토의 일방적 결의가 적용될 수 있느냐는 국제정치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군사개입을 통한 문제해결에 반대하는 회원국 내부의 여론조차 반영하지 않고 나토에 파견된 대표들이 일방적으로 특정인 살해까지 결정하는 것과 관련해 대의정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근본적인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두 번째는 카다피가 대통령이나 국왕 등 합법적인 국가 수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리비아의 국가 원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강제로 제거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카다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외부세력이 그를 살해하는 것에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독재자 한 명의 처형이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외부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졌을 때에는 예기치 못한 후폭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로의 진전이 아닌 또 다른 독재자로 교체되는 결과만 낳아 오히려 사회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생명을 해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들은 사형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이 열렬히 지지를 보내는 국제형사재판소는 악랄한 전쟁 범죄자에게조차 법정에 서서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죄를 변명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나라들이 당장의 문제해결을 위해 한 나라 국가 수장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모순이다.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함은 물론 독재자 카다피와 그 일가를 제거함으로써 리비아의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는 야심차게 군사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건재하고, 그의 지지자들도 카다피 지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임시정부를 세운 반군 세력은 수도 트리폴리로의 진격을 멈추고 자기 영역 구축에 머물러 있다. 결국 리비아는 내전이 장기화되는 양상으로 굳어가고 있다.

카다피 제거와 민주주의 수립이라는 뚜렷한 결과를 낸 후 군사작전을 마무리하고 싶은 나토 회원국들과 나토군 지도부는 조급함과 동시에 이래도 저래도 풀리지 않는 리비아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권 때문에 쉽게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무력은 최선 아니야

지난 목요일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열린 리비아접촉그룹(Libya Contact Group) 모임에 참석한 리비아 반군 지도자 모아메드 알리 압달라는 카다피 군이 상당히 악화됐으며 카다피 정권이 이제 최후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압달라는 반군은 급료와 식량 공급을 위해 앞으로 4개월 동안 약 30억불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참석한 국가들은 반군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탈리아가 5억 8천만 달러, 프랑스가 4억 2천만 달러, 쿠웨이트가 1억 8천만 달러를 약속했고 미국이 추가로 2800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반군의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은 카다피 몰락 후 정국 안정을 위해 반군을 지원하고 있지만 언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국제사회의 군사적, 정치적,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카다피를 제거하고 리비아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묘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군사개입 직후부터 나오기 시작한 군사개입의 효과와 한계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는 시민을 보호한다는 급박한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결정이라 할지라도 무력은 평화와 민주화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교훈을 실감하고 있다.


태그:#리비아, #아랍민주화 , #나토 군사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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