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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대학생들.
 네덜란드 대학생들.
ⓒ 에바 타이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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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는 만 18세 생일이 지나면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생긴다. 그리고 그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여러 정책이 뒷받침해준다. 네덜란드에서 살다보면 이곳 사람들은 나름대로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차근차근 복지를 체계화하고, 성급하지 않게 준비하며, 국가와 국민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야무지게 건축물을 쌓아온 결과 만들어진 탄탄한 복지의 틀을 느낄 수 있다.

18세가 되면 투표권이 생기며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있고 술을 마실 수 있다. 18세 이상 성인들끼리의 성행위 역시 자유롭다. 건강보험을 위한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며, 사고로 사망할 경우 장기 기증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약서 작성 여부를 결정한다.

의무 사항도 생긴다. 건강보험을 본인 명의로 가입해야 하고,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아울러 18세 이전까지 부모에게 지원되던 자녀 양육비 국가 보조가 끝남과 동시에 18세가 된 본인이 새로운 형태의 정부 보조금을 받게 되기 때문에, 대학을 선택하는 18세 이상의 청년에겐 학비를 스스로 납부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많은 부분이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특히 다른 부분이 집에서 독립할 의사가 있으면 부모의 도움 없이도 독립할 수 있도록 정부가 거주와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에 진학할 경우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비 대출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네덜란드 학제에 관해서는 대학 갈래 말래? 그걸 12세에 결정하라니 참조).

최저금리 대출, 등록금 이외에 생활비도 지원, 과도한 아르바이트 제한

18세의 청년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할 경우 정부는 대학 생활 전반에 필요한 비용을 저리(2010년엔 연 2.39%, 2011년엔 연 1.5%, 물론 단리다)로 대출해준다. 네덜란드의 시중 금리가 연리 9% 정도인 것에 비하면 금리가 매우 저렴한 편이다. 대출받은 학생은 최대 15년 동안 갚아나갈 수 있고 월 최저 상환금은 45.41유로(약 7만3000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명분은 학업을 해야 하는 대학생 때는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시기라는 것이다. 넉넉한 수준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대학생을 위한 학비 대출 지원 프로그램(스튜디피난시어링)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문화과학기술부 산하의 이베이 그룹(IB Group)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과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정해두었다. 아르바이트로 월 1100유로 이상을 버는 학생은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학업에 집중해 빠른 시간 내에 진로를 결정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몫을 하게 하기 위해서다.

네덜란드 대학생들의 평균 아르바이트 시간.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주당 2~3일 동안 평균 13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시간은 연령에 따라 다른데, 이 자료는 19~24세까지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사한 결과다.
 네덜란드 대학생들의 평균 아르바이트 시간.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주당 2~3일 동안 평균 13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시간은 연령에 따라 다른데, 이 자료는 19~24세까지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사한 결과다.
ⓒ 네덜란드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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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지원금은 기초 생활 지원금(Basisbeurs), 추가 학비 지원금(Aanvullende beurs), 교통비 지원(Lening studentenreisproduct), 학자금 대출(Collegegeldkredit), 생활 자금 대출(gewonelening)로 나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프로그램의 모든 자금은 저리(연 1.5%, 2011년)로 대출된다.

기초 생활 지원금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만 18세가 되면 모든 이가 받을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받을 수 있으며, 졸업하지 못했더라도 만 30세가 되면 받을 수 없다. 최대 신청 가능 금액은 부모의 집에 거주하면 월 96유로(약 15만3000원), 거주지를 독립하면 월 266유로(약 42만5000원)다. 만 30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면 기초 생활 지원금을 갚을 필요가 없지만, 그때까지 졸업을 못하면 모두 상환해야 한다.

추가 학비 지원금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형제자매의 수에 따라 금액이 결정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 판단되는 사람은 신청 자격이 없다. 부모의 경제 능력이 국가에서 정한 규모 이하인 가정의 자녀들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추가 학비 지원금을 정부에서 공짜로 지원한다. 만 30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면, 입학 6개월 후에 받은 추가 학비 지원금도 갚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전에 졸업하지 못하면, 입학 6개월 후에 받은 추가 학비 지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교통비 지원은 정부가 대학생에게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초 생활 지원금과 마찬가지로, 만 30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면 상환할 필요가 없지만 그때까지 졸업을 못하면 지원받은 금액을 갚아야 한다.

학자금 대출은 등록금 납부를 위한 대출이다. 생활 자금 대출은 각자 자신의 경제 상태를 진단하여 최대 금액을 산정하고 이에 맞춰 신청할 수 있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 자금 대출은 졸업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즉, 네덜란드의 대학생 지원금 제도는 성실히 공부해 정해진 기간 안에 졸업하면 혜택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무상 지원 : 입학 후 6개월 동안의 추가 학비 지원금
▲ 만 30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하면 대출에서 무상 지원으로 변하는 것 : 기초 생활 지원금, 교통비 지원, 입학 6개월 이후의 추가 학비 지원금
▲ 무조건 갚아야 하는 것 : 학자금 대출, 생활 자금 대출

교육문화과학기술부에서 운영하는 이베이 그룹은 네덜란드의 교육 관련 정부 지원책을 실행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18세가 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지원책이 있는지 자세히 알려준다.
 교육문화과학기술부에서 운영하는 이베이 그룹은 네덜란드의 교육 관련 정부 지원책을 실행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18세가 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지원책이 있는지 자세히 알려준다.
ⓒ www.ib-group.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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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간 안에 졸업하면 대출→무상 지원... 대학생 ⅔ 이용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68%가 넘는 네덜란드 대학생이 이베이 그룹에서 운영하는 '대학생을 위한 학비 대출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평균 대출 금액은 약 1만5000유로(약 2400만 원)이다. 학생들은 대출금 상환 계획을 스스로 세워야 하고, 빚을 갚아나갈 방안을 실행하며 성실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진다.

장애인 학생과 석사를 마쳐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 지원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삭감되자, 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다.
 장애인 학생과 석사를 마쳐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 지원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삭감되자, 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다.
ⓒ <트라우 신문> 2010년 10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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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는 그동안 대학생 학비 보조와 관련한 정책을 꾸준히 만들고 실천해왔다. 올해부터 최저금리를 적용하겠다던 약속도 지켰다. 물론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던 사항 중 일부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철회되면서 가끔 시위도 일어나지만,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네덜란드의 대학생 지원 프로그램의 특징은 돈이 없더라도 공부를 계속해 학생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실질적으로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학업에 충실하면 대출 성격이 사라지고 무상 지원으로 바뀌는 조건부 대출, 최저금리 적용, 과도한 아르바이트 제한 등은 네덜란드 방식을 상징한다. 또한 대학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등록금만이 아님을 네덜란드 정부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네덜란드 방식의 요체를 필자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돈 없어도 공부할 수 있다. 그 대신 열심히 공부해 정해진 기간 안에 졸업하라. 그러면 대출금의 일부는 정부에서 제공한 무상 지원으로 바뀐다.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세금을 많이 내라. 그 돈은 그러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으로 쓰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선택했음에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졸업하지 못하면 국가는 혜택을 줄 수 없다. 대출했던 금액은 모두 갚아야 할 돈이 된다.'

"부모가 생활비·학비 대준다는 한국 친구... 놀랐다"
[인터뷰] 정부 대출 지원금 이용한 네덜란드 20대 아리연과 에바

네덜란드 청년들은 취업 전에 지는 이러한 채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는 레오바르던(Leewarden)에서 작년에 고등직업대학(HBO)을 졸업한 후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아리연 크라머(Arjen Kramer)와 대학 전공을 살려 방송국에서 카메라 기사로 일하고 있는 에바 타이스마(Eva Tijsma)를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대학 생활을 함께할 때 동거를 시작했고, 현재 함께 산 지 3년째에 접어든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동거하는 것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18세 이후 독립한 청년들 가운데 동거하는 이들이 많은데, 동거 이유 중에서 경제적인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 네덜란드의 대학 등록금은 학기당 얼마인가?
에바 "전공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내가 다니던 HBO는 학기당 130만 원 정도였다."

- 대학에 진학하면서 정부 지원 융자금을 대출받았는가?
아리연 "받았다. 부모로부터 주거 독립을 하면서 정부 자금을 대출받았다. 등록금 외에 생활 자금까지 대출을 받았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부 대출금을 이용해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리연 "60~7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모의 집에서 기거할 때에는 별도의 정부 융자금 없이 생활할 수 있지만, 거주 독립을 하게 되면 비용 부담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거주 독립을 한 친구들은 대부분 정부 대출금을 이용해야 생활이 가능하다. 학자금 융자는 그리 큰 비중이 아니다. 오히려 생활 자금 대출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 대학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가?
아리연 "생활 자금 대출을 많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아르바이트는 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3시간을 넘으면 학업에 상당한 지장이 있다.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나는 보컬이 취미라, 바에서 보컬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을 이용해 10시간 미만으로 일했다."
에바 "나는 레스토랑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했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을 아르바이트하는 데 쓸 수 없었다. 일주일에 15시간가량 아르바이트를 했다."

- 현재 갚아야 할 대출금이 얼마나 되는가?
아리연 "나는 현재 1만5000유로(약 2400만 원)의 대출금이 남아 있고 에바는 2만5000유로(약 4000만 원) 가까이 남아 있다.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그때부터 (정부로부터) 생활 자금을 대출받았다. 에바도 마찬가지다. 사실 학자금 대출만 놓고 보면 4년 모두 대출받을 경우 6400유로(약 1000만 원)지만, 생활비 대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어떤 식으로 갚아나가고 있는가?
아리연 "물론 (여러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속히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빨리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에바 "10년 동안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에바(왼쪽)와 아리연.
 에바(왼쪽)와 아리연.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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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청년 복지 정책 잘 갖춰져 있다"

- 직장을 구하기 전에 지게 되는 이러한 채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리연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시기를 4년 뒤로 미룬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학 진학 이외의 길을 선택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 친구들은 내가 공부하는 동안 자신이 직접 일해서 돈을 벌고 경제 주체로서 완전히 독립해서 생활한다. (그와 달리) 나는 4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진학 후 생기는 부채는 당연한 것이다. 4년을 공부하고도 좋은 직장을 얻지 못했을 때가 가장 큰 문제인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자기 몫이다."

- 정부가 운영하는 대학생을 위한 학비 대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바 "청년 복지 정책은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학교 친구 중에 독일에서 온 친구가 있다. 독일 내에서도 대학 생활을 위해 독립해서 살아야 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독일은 네덜란드와 달리 생활 자금 대출이 자유롭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로 유학 오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국인 친구도 있는데 부모가 상당히 부유하다고 들었다. 매달 한국에서 생활비와 학비를 부모가 보내준다는 말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네덜란드에서는 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대부분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도 부모가 많은 지원을 해준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듣고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결혼하고 난 후 부모에게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참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 정부에서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명목은 어떤 것인가?
아리연 "정부에서 대출해주는 명목은 여러 가지다. 학자금 대출은 그중 하나다. 대출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생활 자금 대출이다. 얼마나 절제하고 사느냐에 따라 대출 금액이 달라진다. 절제하지 않고 대출 최고금액까지 빌렸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생활을 제대로 할 때까지는 최대한 절약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생활을 해야 하지만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정부 대출 지원금을 이용했을 때 상환 금액에 관한 사례1(부모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
 정부 대출 지원금을 이용했을 때 상환 금액에 관한 사례1(부모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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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출 지원금을 이용했을 때 상환 금액 사례2(거주를 독립했을 경우).
 정부 대출 지원금을 이용했을 때 상환 금액 사례2(거주를 독립했을 경우).
ⓒ 장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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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출, #등록금,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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