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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박물관 벽의 사진들.
 밥 말리 박물관 벽의 사진들.
ⓒ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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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를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밥 말리다. 그의 음악은 고달픈 현실을 온 몸을 흔들게 만드는 레게음악에 녹아내 즐겁지만 묘하게 슬프고,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힘든 현실과 노동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밥 말리, 그리고 레게음악과 함께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또 다른 것은 블루마운틴 커피다. 카리브 지역에서 제일 높은 블루마운틴 산맥에서 재배되는 이 커피는 세계 최고 커피 중 하나로 꼽힌다. 카리브 지역에 위치한 인구 280만 명의 작은 나라 자메이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커피 애호가들의 블루마운틴 커피 사랑과도 관련이 있다.

비록 작은 나라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음악가, 그리고 최상의 커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자메이카는 연간 약 1백만 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레게음악에 몸을 맡기고 이국적인 정취를 즐기기 위해 자메이카를 찾는다. 이 때문에 관광산업은 자메이카 제1의 산업이 됐다.

자메이카의 킹스턴에 간 이유는 회의 때문이었지만 회의를 끝내고 시간을 내 킹스턴 시내와 주변을 둘러봤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블루마운틴 커피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궁금해 커피 공장을 가보기로 했다. 승합버스에 울려 퍼지는 밥 말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블루마운틴 커피 브랜드 중 하나인 자블럼(Jablum) 사의 마비스 뱅크 공장을 향했다.

이 공장은 마비스 뱅크(Mavis Bank)라는 작은 마을에 있으며 영국인 커피 재배자이자 제조업자로 처음 자블럼 커피를 생산한 빅터 C. 문(Victor C. Munn)이 1923년 세웠다. 자블럼 사는 다른 자메이카 커피 회사들처럼 원두커피와 인스턴스 블루마운틴 커피를 생산한다.

킹스턴 시내에서 꼬불꼬불 올라가는 산길은 아주 오래 전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때를 생각나게 했다. 30여 분 동안 산길을 돌아서 도착한 공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커피 브랜드 공장치고는 아주 작은 규모였다. 도착한 관광객들에게는 제일 먼저 한잔의 블루마운틴 커피가 제공됐다. 아주 진한 커피였지만 쓴맛이 적고 가벼운 특유의 맛 때문에 블랙으로 마셔도 전혀 무겁지 않고 오히려 뒤끝이 깔끔했다.

공장에서 갓 볶아서 간 커피의 진한 향기와 풍미는 공장 방문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블루마운틴 커피를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공장을 방문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제공된 한 잔의 커피는 블루마운틴 커피를 사야 하는 이유를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커피 공장 노동자들, 하루 8시간 일하고 월급은 약 22만원

커피콩을 고르고 있는 마비스 뱅크 공장 노동자들.
 커피콩을 고르고 있는 마비스 뱅크 공장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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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있지만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은 볼 수 없어 가이드에게 어떻게 커피를 재배하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회사가 농사를 직접 짓지는 않고 주변의 수백 명 소농들에게서 커피 열매를 구입해 가공한다고 했다. 빨갛게 익어 수확한 커피 열매를 소농들이 가져오면 공장에서는 열매를 말리고, 껍질을 벗기고, 콩을 고르고, 그 후 적절히 볶아서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블루마운틴 커피를 만든다. 커피콩을 볶는 이외의 모든 작업이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된다. 이 작은 공장에서는 약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전혀 기계의 도움 없이 커피콩을 나르고 고르고, 그리고 포장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커피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200달러(한화 22만 원)라고 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재차 확인하자 가이드가 그렇다고 했다. 대부분이 여성들인 이들 노동자들이 그 월급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공장에서는 2온스(56.69g)의 원두커피를 3달러에, 그리고 8온스(227g)의 원두커피를 8달러에 팔고 있었다. 킹스턴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격보다도 훨씬 쌌다.

싼 가격에 블루마운틴 커피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썩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이 싸게 블루마운틴 커피를 구입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많은 노동자들이 겨우 2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마시는 한 잔의 블루마운틴 커피 속에 누군가의 힘든 노동과 저임금의 부당한 현실이 녹아져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커피를 산 이유는 블루마운틴 커피에 대한 유혹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한 봉지의 커피를 사는 것이 당장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유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구차하고 소극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현지인에 의하면 자메이카의 교사나 경찰의 월급은 1800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전문직이라도 월급이 적은 직종은 1000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1000~1800달러의 월급과 200달러는 너무나 큰 차이였다.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격차가 그렇게 크다는 것은 결국 빈부격차도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빈부격차는 현지인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시내를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름한 좌판에 과일과 음료수를 늘어놓고 하루 종일 뙤약볕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과 킹스턴 중심가의 화려한 가게와 음식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극심한 소비 행태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이 자메이카의 물가는 결코 싸지 않다. 킹스턴 중심가에 위치한 한 푸드 코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식사용 메뉴는 6~7달러(한화 6600~7700원) 정도로 우리나라 가격과 거의 비슷했다.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 조각 케이크의 가격은 약 5.6달러(한화 6200원) 정도로 제1세계 여행객조차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작은 컵케이크의 가격도 2달러(한화 2200) 정도로 물가 비싼 한국의 가격에 뒤지지 않았다. 그것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킹스턴에서는 부의 상징일 것 같았다.

킹스턴의 유명한 고택인 데본 하우스 내 아이스크림 가게의 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2스쿠프짜리 아이스크림 가격은 약 8달러(한화 8800원) 정도였다.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한 번쯤 먹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최고의 아이스크림이었지만 이것을 먹을 수 있는 자메이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니 씁쓸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저녁 식사 후 이 귀족스런 후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블루마운틴 커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상을 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과 빈부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사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갈 수 있는 곳은 너무나 분명하게 구분됐다. 이런 격차는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자메이카에서는 그것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너무나 높은 담처럼 보였다.

실업과 저소득으로 힘든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파머스 마켓.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파머스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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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의 물가는 물론 수입품으로 넘치는 슈퍼마켓의 물가보다 훨씬 싸다. 지나는 길에 운이 좋게 방문한 킹스턴 시내의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서는 여느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지역 농산물과 과일을 팔고 있었다. 밭과 농장에서 바로 가져온 까닭에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이 시장의 상품은 싱싱하고 한국 재래시장의 가격보다도 더 쌌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겨우 200달러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맘 놓고 충분한 양을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싸지는 않았다. 세계 식품 가격과 원유가의 상승으로 자메이카의 물가도 최근 상당히 올랐다고 했다.

자메이카의 제1산업은 관광산업이다. 그 다음은 농업과 광업 순으로 자메이카는 특별히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 광산이 발달돼 있다. 그런데 세계 경제난 이후 보크사이트 광산을 소유한 대부분의 외국 회사들이 떠나버려 약 1만 명의 실업자가 생겼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자메이카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해외 송금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보내는 돈이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국내 소비를 뒷받침하고 있다. 

관광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에 서민 경제의 토대는 불안해 보였다. 시내 중심가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자메이카 상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농업 가공품이나 생필품은 거의가 수입품이고 때문에 가격이 세계 다른 곳과 거의 비슷했다. 평범한 자메이카 사람들의 임금과 소비 수준에서 보면 너무나 비싼 가격이었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 주변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은 넘쳐나고 세계화의 영향으로 소비 욕구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소비는 실업과 저소득으로 힘든 삶을 꾸려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자메이카의 사회 상황에 대해 특별히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은 폭력 문제다. 높은 실업률, 낮은 임금, 극심한 빈부 격차 등은 젊은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갱단에 합류하게 한다. 이 때문에 자메이카는 세계에서 폭력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저녁에 거의 시내를 돌아다닐 수가 없고 직접 폭력의 목표가 되지 않아도 운이 좋지 않으면 갱단의 싸움에 말려들어 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한다.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조차 갱들과 합세해 이권 싸움을 벌이고 살인과 폭력을 저지른다.

자메이카 방문자들이 상상하는 밥 말리, 레게음악, 블루마운틴 커피 등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단어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자메이카 사람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들의 삶이고 이방인이 짧은 시간의 방문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밝고 활기차며 음악이 나오면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너무나 느려서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그런 느긋함이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나온 이방인들의 마음을 오히려 가볍게 해주기도 했다. 또한 무엇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열린 마음과 친절함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메이카를 특별한 곳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 이 글은 필자가 5월 17-25일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회의(International Ecumenical Peace Convocation)에 참석해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킹스턴 시내를 둘러본 후 쓴 글이다.


태그:#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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