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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인 <스핏츠>에 실린, 이어폰을 착용한 수상과 동물들로 이루어진 동물 경찰 홍보 기사.
 무가지인 <스핏츠>에 실린, 이어폰을 착용한 수상과 동물들로 이루어진 동물 경찰 홍보 기사.
ⓒ <스핏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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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는 2010년 선거 이후 자유민주당(VVD)과 기독민주당(CDA)이 연정을 구성해 내각을 꾸렸다. 그러나 이 두 당만으로는 150석인 하원의석의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당은 고육지책으로 자유당(PVV)도 연정에 동참시켰다.

자유당은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한 극우 성향의 정당이다. 2006년 선거에서 하원 9석을 얻는 데 그치며 소수정당으로 머물렀던 자유당은 2010년 선거에서는 24석을 얻으며 제3당으로 약진했다.

자유당의 극우 성향은 종교 및 인종 차별주의를 타파해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네덜란드 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에 연정의 파트너로 삼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각 조직에 자유당 인사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연정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내각 외부의 파트너가 된 자유당의 입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는 정부의 정책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삭감되는 상황에서도 신규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동물 경찰(dierenpolitie) 제도에서 잘 드러난다. 동물 경찰 제도는 자유당의 선거 공약이었다.

자유당의 디욘 흐라우스(Dion Graus)는 "나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적은 반드시 처벌받게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동물 경찰 창설을 제안했다.

그 후 동물 보호를 위한 긴급구호전화번호(1-4-4)를 신설하고 동물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동물 경찰 500명을 네덜란드 전역에 배치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동물 경찰 제도는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반이슬람주의 극우 정당이 주도한 동물 경찰 창설

동물 경찰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네덜란드에는 동물 보호 활동을 해온 기관들이 있었다. 정부 산하 기관인 농림식품위원회(nVWA)와 민간단체인 동물보호위원회(Dierenbescherming)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동물보호위원회 산하에는 동물 학대나 밀렵, 도살 등을 감시하는 전국동물보호감시원(LID), 유기 동물 보호시설, 동물들에게 응급처치를 해주는 긴급동물앰뷸런스, 어릴 때부터 동물과 친숙해지도록 교육하는 어린이 동물 교육 기관 등의 단체가 있다.

지역마다 다른 동물 응급차, 주소, 전화번호를 소개하고 있다. 지역마다 동물 보호 관련 기구의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고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지역마다 다른 동물 응급차, 주소, 전화번호를 소개하고 있다. 지역마다 동물 보호 관련 기구의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고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 '동물들의 친구'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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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단체들의 활동으로 네덜란드의 동물 보호 환경은 유럽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그렇지만 동물보호위원회에 따르면, 동물 보호 관련 사건·사고가 연간 3000건에 이른다. 이러한 사건·사고 중 상당수는 동물보호위원회를 통해 경찰에 신고되고 있다.

동물보호위원회는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를 합한 인원이 20만 명에 달하는 큰 조직이다. 동물보호위원회가 이렇게 큰 조직으로 성장한 것은 동물에 대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물 보호 정책은 도시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도시에는 반려 동물이 많고 지방 도시들에는 축산업과 관련된 동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조직들이 지역 특성에 맞게 배치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동물 보호 조직이 워낙 다양해서, 동물에 대한 범죄 행위를 발견했을 때 어느 곳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해결 방법이 복잡하다는 불평도 있었다. 또한 동물보호위원회가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강제권이 없고, 그로 인해 사안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네덜란드 정부, 4년간 동물 경찰 500명 양성 추진

동물 경찰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아펠도른에 있는 경찰대학에서 125명을 동물 경찰로 훈련시켜 10월부터 각 지역에 배치할 계획이다. 매년 125명씩 양성해 4년간 500명의 동물 경찰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동물 경찰 조직이 정상 가동되는 올해 10월부터는 동물 보호를 위해 활동했던 기존의 조직들과 동물 경찰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각자의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동물 경찰의 역할은 네덜란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동물 보호법에 근거해 정해질 예정이다. 동물 보호법(Dieren Artikel)은 1864년에 제정된 후 꾸준히 진화해 왔다. 동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한 동물 보호법 350조는 1992년에 체계적으로 보강되었다.

현행법은 주로 사람들이 동물을 이용해 스포츠나 취미생활을 할 때 동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 동물을 이용해 음식이나 제품을 만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즉, 주로 인간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위들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물에게 가혹행위나 무자비하게 해치는 행동을 할 수 없고 법이 허용하지 않는 도살이나 밀렵을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반려 동물에 대한 무관심, 동물 유기, 동물과 성 행위를 하는 것, 동물을 이용한 성 상품 개발 등을 금지하고 있고 동물을 이동시킬 때 따라야 하는 규칙 등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동물 보호법에 동물의 삶의 질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은 없다. 이와 관련, 법률학자이며 동물 보호법 연구자인 위자니 볼데스(Eugenie Bordes)는 "현행 동물 보호법은 내용이 막연하여 위법 행위를 한 사람이 법정에 서더라도 법 적용을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또한 동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항이 없다. 따라서 현행법을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동물 학대에 대한 법을 더욱 강화하여, 지금까지 벌금형으로 그쳤던 사안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 이동에 대한 법규를 예로 들며 동물 경찰의 역할을 강조한 신문 기사. 일간지 <트라우> 4월 28일자에 실렸다.
 동물 이동에 대한 법규를 예로 들며 동물 경찰의 역할을 강조한 신문 기사. 일간지 <트라우> 4월 28일자에 실렸다.
ⓒ <트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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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단체들 "동물 경찰 창설은 예산 낭비" 비판도

한편 그간 동물 보호 활동을 펼쳐온 단체들 사이에서 동물 경찰 창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존 단체들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국가로부터 지원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활동 자금의 대부분을 충당해온 민간단체들 중엔 '동물 경찰 창설은 예산 낭비'라고 문제 삼는 곳도 있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전 정부가 약속했던 동물보호위원회 지원금 180만 유로를 새 정부가 주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 있다. 이전 정부는 동물보호위원회 산하 전국동물보호감시원의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제1당이던 기독민주당(우파)이 좌파인 노동당(PvdA)과 연정을 꾸렸던 이전 정부는 중도 성향의 정책을 많이 추진했다. 그러나 새 정부는 동물보호위원회를 지원하는 대신 자유당 공약에 따라 동물 경찰을 창설했다. 자유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 사이에서 '동물 경찰 창설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보 옵스텔튼(Ivo Opstelten) 법무부 장관은 "기존 단체들은 충분한 공신력과 강제성이 담보되지 않아 운용상의 어려움이 많았다. 동물 경찰은 법무부 소속 정식 경찰관이며 모두 무기를 소지할 것이다. (일반) 경찰들은 범죄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면 동물 경찰은 범죄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법규를 어기고 법 집행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 법의 강제성을 동물 보호를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국동물보호감시원(LID) 웹사이트.
 전국동물보호감시원(LID) 웹사이트.
ⓒ 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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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이 동물 경찰 시행안과 운용 방안을 발표했다는 기사(<트라우> 4월 29일자).
 법무부 장관이 동물 경찰 시행안과 운용 방안을 발표했다는 기사(<트라우> 4월 29일자).
ⓒ <트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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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동물 경찰의 업무와 관련하여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라는 원론적인 의문도 제기됐다. 동물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동물 범죄와 관련 없는 범죄자를 체포할 수 없는 것인가, 동물 경찰은 일반 경찰과 그 역할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한 신문은 동물 경찰에 대해 '실험용 경찰관(Caviapolitie, 실험쥐에 빗대어 희화화한 말)'이라고 비아냥대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법무부 장관은 "모든 동물 경찰은 기존의 경찰 대학에서 일반 경찰 정예 교육을 이수할 것이며, 교육 후 동물 경찰직뿐만 아니라 일반 경찰직도 수행할 수 있는 직위를 얻을 것"이라며 "앞으로 동물 경찰과 일반 경찰의 보직 이동도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물 경찰을 작고 능력 없는 귀여운 동물로 희화화한 기사. 인텔리전트를 위한 잡지 <비는란츠버스튤얼>에 실렸다.
 동물 경찰을 작고 능력 없는 귀여운 동물로 희화화한 기사. 인텔리전트를 위한 잡지 <비는란츠버스튤얼>에 실렸다.
ⓒ www.binnenlandsbestuur.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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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물 보호의 역사
1864년 동물 보호법 제정
1875년 개, 고양이 등 반려 동물 학대 금지법
1880년 포유류와 조류 보호법
1886년 모든 동물에 대한 학대 금지법
1920년 동물보호감시단 설립
1961년 동물 보호 규정 의무화(개가 끄는 수레차 금지)
1975년 동물보호위원회 재단 설립
1992년 동물 건강과 동물 복지법 제정
1998년 돼지 사육 때 체인 사용 금지법
2001년 개와 말의 꼬리, 귀 등의 특정 부위 절단 금지법
2002년 사냥 가능한 동물을 다섯 가지로 규정한 법 제정
2006년 유럽연합 : 송아지의 협소한 우사 사육 금지법
2008년 가죽과 털 판매 목적의 친칠라 및 여우 사육 금지법
         양의 꼬리를 절단하는 행위 금지법
         유럽연합 : 개과 고양이의 가죽과 털 판매 금지법
2010년 동물과 성교 금지법
2011년 유럽연합 : 미용을 위한 동물 실험 금지법
2011년 모든 개의 등록 의무화(태그와 칩 사용)
2012년 협소한 양계장 사용 금지법


태그:#동물 보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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