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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 낀 지난 주말에 어른들 모시고 가족들과 외식하신 분들 많으시지요? 여러 사람이 함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자주 겪는 찜찜한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 사람이 모두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면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이 무척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식당주인이나 종업원이 단체 손님에게 메뉴를 통일해 달라고 쉽게 요구하는 우리 문화에 관하여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주말 단체손님이라 할 것도 없는 가족 다섯 명이 저녁식사를 하러 신세계백화점  근처에 있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중국식당에 갔습니다.

 

마침 오랫동안 외국 출장을 다녀온 조카가 인사차 들렀길래 늘 먹던 자장면, 짬뽕만 먹을 수는 없어서 요리 두 가지와 함께 자장면, 짬뽕, 그리고 쟁반짜장 3인분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주문을 받는 사장님이 대뜸 "이렇게 시키시면 음식 늦게 나옵니다"하고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시더군요. 어쩌면 값비싼 코스요리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종류가 많아 음식이 늦게 나올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메뉴를 통일하라는 협박성 강요(?)이기도 합니다.

 

식당에 다른 손님이 많지도 않았지만, 저희는 모처럼 다니러 온 조카 때문에 "손님 많으시면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십여 분이 지난 후에 사장님이 다시 오더니, "손님 마파두부는 준비가 안 됩니다. 다른 음식은 준비하고 있으니 마파두부대신 다른 메뉴로 바꿔주세요"라고 합니다. 제가 좀 머뭇거렸더니 "메뉴판 갖다 드릴까요?" 합니다.

 

이건 뭐 미안하다는 태도가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좀 따졌습니다. "아니 준비가 안 되면 곧바로 알려주셔야지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지금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어쩝니까?"  처음 주문 할 때부터 기분이 상하였던 터라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결국 가벼운 말 다툼이 있었고 이 식당을 나와버렸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또 다른 손님도 가족과 함께 왔다가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나오고, 이를 처리하는 주인의 불친절함 때문에 밥을 먹다가 그냥 일어섰다고 하더군요. 참 황당하였습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가서 비슷한 메뉴를 주문하였지만 메뉴를 통일하라는 요구는 없었습니다. 다섯 명이 중국음식점에 가서 이 정도로 나누어 시킨 걸 가지고 메뉴를 통일시키지 않아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하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더군요.

 

만약 다섯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으로 나누어 온 다른 손님이었다면 이 정도 주문을 가지고 메뉴를 통일시켜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식당에 가면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게 되는데, 사람들이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이 푸대접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메뉴를 통일하라지 말고, 음식 가짓수를 줄이시라

 

그런데, 여럿이 가면 같은 음식을 주문하라고 하는 이런 일은 이 식당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크고 작은 모임을 하고 단체로 식당에 갈 때면 비슷한 일을 드물지 않게 겪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식당에 가면 가장 흔히 듣는 이야기가 메뉴를 알아서 한두 가지로 통일해 달라는 요청(압력)입니다.

 

손님이 좀 많이 오는 식당이라면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더라도 별로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실 식당 측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빨리 먹기 위하여 알아서 메뉴를 통일해서 주문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빨리 음식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손님의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식당주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면 식당 주인은 메뉴판에서 음식 가짓수를 줄여야 합니다. 메뉴판에는 보란 듯이 수십 가지 요리와 식사메뉴를 올려놓고, 막상 음식을 주문하면 메뉴를 통일해 달라고 눈치를 주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선진국에서도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손님들에게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우니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흔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체 손님이라고 음식 값을 깍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메뉴를 한두 가지로 통일해 달라고 요구하고, 제 값을 치르고 먹는 음식 선택에서 조차 다양성이 무시되고 통일과 획일성이 강조되는 이런 '군대' 같은 문화는 꼭 좀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식당, #메뉴통일, #자장면, #빨리빨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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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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