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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재단 기획홍보과에서 일하는 김아란(35)씨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름다운 재단 기획홍보과에서 일하는 김아란(35)씨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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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절었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대는 아마도 30대일 것이다. 20대가 생(生)을 배우는 시기였다면, 30대는 배움을 토대로 가치를 생산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30대는 직장에서 자리잡고, 가정도 꾸리며 새로운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매일 계속되는 야근, 회식으로 피곤에 찌들어 살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한 30대 중 상사 면전에 사표를 '쿨하게' 던지고 직장을 그만두는 상상을 안 해본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젖도 못 뗀 자식생각, 아내 생각에 사표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수 년간 잠자고 있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와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위해 살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 땅의 30대를 위해 지난 18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아름다운재단 활동가 김아란(34)씨를 만나 '30대 NGO 활동가의 일과 사랑'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학 4학년, 남의 배 불리지 않기로 결심"... 사회복지학도의 NGO 진출기

'30대, 미혼,
11년차 NGO 활동가, 여행, 사진, 나눔'


김아란씨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녀가 대학에 입학한 1997년은 대학이 변화하던 시기였다. 이전까지 사회 민주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대학 내 사회운동이 잦아들었고, 대학은 학부제로 전환돼 학생들의 유대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학내 동아리를 통해 사회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회복지란 개념이 아직 생소하던 1990년대 후반 사회복지를 전공한 1세대로서 그녀는 전공과 대학에 대한 갈증을 동아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4학년 졸업반이 되던 해, 그녀는 직업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의 원칙을 정했다.

"'남(기업)의 배를 불리는 일은 하지 말자'는 원칙을 정했어요. 원칙을 정하고, 복지관에 실습을 나갔지만, 복지관은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우연하게 총선시민연대에서 일을 했는데,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일들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무작정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간 곳이 문화연대였어요."

그녀는 첫 직장인 '문화연대'에서 4년 동안 현장 활동가로 일했다. 이어 현장에서 느꼈던 갈증들을 해소하기 위해, '아름다운 재단'에 들어갔다. 아름다운 재단은 모금과 배분을 중심으로 한 나눔문화의 확산을 목적으로
2000년 설립된 비영리기구이다. 그녀는 현재 아름다운 재단 기획국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현장 NGO에서 일을 할 때 보니까, 주옥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단체가 사업하는데 급급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현장 경험을 토대로 시민단체의 좋은 프로그램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어요."

ⓒ 아름다운 재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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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아름다운 재단에서 일하면서, 그녀는 신문을 통해 재단이 지원한 프로그램들이 단체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될 때 보람을 느꼈단다.  하지만 김아란씨에게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체에서 일하면서 겨울만 되면 떠오르는 일화를 얘기해줬다. 2008년 GS홈쇼핑과 아름다운 재단은 무지개상자 캠페인 사업을 진행했다. 블록 모양의 저금통 10만 개를 시민들에게 배포해, 2008년 12월 6일 청계광장에서 개봉하는 사업이었다. 행사 취지에 걸맞게 시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2008년 12월 6일, 체감온도 영하 20인 한파가 닥쳤고 많은 시민들이 행사장에 참여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게 뭐가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NGO 활동가인 그녀에게 '실패'란 30대 직장인들이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실패와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거래처와의 관계, 분기별 영업 매출 하락 등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 참여가 저조할 때 그녀는 '실패'라는 단어를 느낀다.

"나눔은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것이에요. 재단에서 한 나눔 사업이 잘 안 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거죠. 그럴 때 안타까워요."

그녀는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변화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부자들이 재단에 기부를 하면서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재단에 기부하면서, 기부자 모임에도 참여하고, 주변 분들에게 기부도 권하고,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보람있죠. 개인의 삶을 통해서 가족의 삶이 바뀌고, 결국 사회가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기부가 만능이 될 수는 없지만, 시민사회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좋은 도구인 것 같아요."

"엄친아·엄친딸이 문제... 연봉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요"

김아란씨는 3시간이 넘는 긴 인터뷰 동안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아란씨는 3시간이 넘는 긴 인터뷰 동안 웃음을 잃지 않았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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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살, 활동가 경력 10년인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급여를 물어봤다. 그녀는 웃으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라고 말했다.

"(재단에서)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월급을) 만 원씩 더 받아요.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아요. NGO 활동가의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급여를 적게 받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요. 멀리 봐서는 활동가들도 경제적 부담없이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가 와야 돼요. NGO 활동가들이 열심히 하면,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풍성해지고 결국엔 나한테 혜택이 돌아오죠"

그녀는 아름다운 재단 창립 때부터 일한 선배가 아직까지 명절날 식구들끼리 모이면 "직장 언제 잡을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직 NGO 활동가가 직업으로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연봉으로 네다섯 군데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나머지 돈은 어머니의 건강보험료, 배낭 여행비, 문화 생활비 등에 쓴다.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셔서 보험에 들었어요. 부자들이야 병원비 걱정없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의 불안을 대비해야 되잖아요. 명품가방 안 사고, 백화점에서 비싼 옷 안 사면 제가 받는 연봉도 괜찮은 편이에요. 소비와 관련된 과장된 욕망만 덜어내고, 담백해지면 충분히 지낼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NGO에서 일하는 게 천성인가 봐요."

주변에 연봉 4000 이상을 받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친구들이 만날 모이면, '아란아 너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말하며 사회에 도움되는 일하면서, 돈도 번다고 부러워해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 친구들은 자기가 회사에서 마흔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하죠."

더불어 소통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NGO 시스템은 그녀가 다른 직장에 비해 좋은 점으로 꼽는 부분이다.

"누구 누구 과장이 어떻다. 욕 하는 일은 NGO에선 잘 없어요. 소통이 조금 늦더라도 합의하고, 함께 공유하고, 민주적으로 일을 해요. 결정이 느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팀워크가 좋아요."

NGO 활동가로서 10년 동안 직업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냐고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후회한 적은 없어요. 늘 엄친아, 엄친딸들이 문제예요. 어머니께서 모임에 다녀오셔서, 누구네 딸이 연말 보너스로 유럽 보내줬다더라고 말하시면 '효도를 못하는구나' 생각을 해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산다면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도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맘으론) 아무리 자신이 행복해도, 자식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든요."

마흔 전까지 할 일이 많은 '행복한 NGO 활동가'

김아란씨가 '희망은 지지 않습니다' 거리 캠페인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아란씨가 '희망은 지지 않습니다' 거리 캠페인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아름다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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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모습이 건강한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아직 미혼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녀는 "독신은 아니지만 아직 제 삶에서 결혼은 계획에 없다"며 "파트너로서 세상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취미생활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녀는 결혼 대신 마흔 전까지 다른 일들을 계획 중이다.

"저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이 일을 아직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가능성과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흔 전까지 지금 하는 활동들의 범위를 좀 세분화해서, 제가 10년 동안 했던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을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남미를 다녀오고 싶습니다."

금전적 욕심보다 '가치'에 대한 욕심이 많은 그녀는 이외에도 마흔 전까지 함께 장기여행했던 사람들과의 여행사진과 기록들을 엮은 책을 내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녀가 다른 이들보다 유난히 향기 나는 30대를 보내는 것은 '가치'있는 활동들에 대한 도전과 지금하는 활동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시간이 넘는 긴 인터뷰 동안 그녀는 재단의 활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그녀에게 '나눔'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참여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나눔'이 꽃 필 수 있다"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나눔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나눔이 곧 '당신'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아름다운 재단의 '1% 나눔' 사업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그녀는 매일 오전 7시 30분, 5호선 방화행 지하철을 타고 가회동으로 간다. 그녀가 뿌린 '나눔의 씨앗'이 어떤 이들의 행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태그:#아름다운 재단, #김아란,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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