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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화천 가는 길가에 핀 개나리와 진달래.
 춘천에서 화천 가는 길가에 핀 개나리와 진달래.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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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이다. 이제 봄꽃이란 봄꽃은 모두 다 개화를 한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노랗고 빨간 꽃물이 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물가에 서 있는 나무들조차 가지 끝마다 하늘하늘 꽃잎을 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버들강아지는 연노란 꽃잎에 가깝고, 갓 피어난 나뭇잎들은 연두색 꽃잎에 가깝다. 햇살이 맑아 그 모든 꽃잎들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는 걸 보자니, 눈이 부실 정도다. 찬란한 봄이다.

꽤 오래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지난 겨울에는 자전거 타기 적당한 날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혹한에 폭설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그처럼 난감한 겨울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 차례 영하 10도의 날씨를 무릅쓰고 자전거여행을 떠났다가, 길 위에서 몸이 꽝꽝 얼어붙는 경험을 했다. 이러다 자칫 얼어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동상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맘먹고 나들이를 떠나는 게 사실상 모험에 가까웠다.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화천강 너머 화천읍. '물의 나라'다운 풍경이다.
 화천강 너머 화천읍. '물의 나라'다운 풍경이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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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더디게 온다 해도 '숨기기 힘든 봄'

화천에는 그 어느 지역과 비교한다고 해도 남부럽지 않을 자전거도로가 있다. 화천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의 자전거도로다. 지금까지 꽤 많은 지역에서, 여러 가지 유형의 자전거 여행 코스를 돌아다녀 봤지만 화천처럼 흥미를 끄는 곳도 드물었다.

지난 겨울에 화천에 갔다가 화천강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자전거도로를 눈여겨보고 돌아왔다. 그때는 그 길 위로 눈이 수북이 쌓여 걸어 다닐 수조차 없었다. 그 길이 그때만 해도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낼 것 같지 않더니, 역시 세월이 변하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화천강 자전거도로 입구. 여기에서부터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화천강 자전거도로 입구. 여기에서부터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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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 그대로 자전거도로 안내판이 서 있다. 자전거도로 입구에 이처럼 거창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안내판에서부터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느낌이 단순한 허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곧 알게 된다.

아직 제 철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자전거도로 위에서 바라다보는 강변 풍경은 다소 황량해 보인다. 아직 봄이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어딘가 휑해 보이는 걸 피할 수 없는데, 그 풍경이 산줄기 아래로 푸른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흘러가는 북한강이 아니었으면 더욱 더 황량해 보였을 것이다.

화천의 봄은 조금 더디게 오는 편이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 비해 위도가 좀 더 높은 탓이다. 춘천에서 화천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도중에 38도선 표지판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래도 봄빛을 숨기기는 어렵다. 개나리는 만개했고, 곳곳에서 노란색 꽃잎을 무더기로 매달고 서 있는 산수유도 볼 수 있다.

화천강 옆을 지나는 자전거도로.
 화천강 옆을 지나는 자전거도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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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축제 대신, '새 봄 새 축제'를 준비하는 강

화천은 해마다 겨울이 오면, 국내 최대 겨울 축제인 '산천어축제'가 열린다. 한겨울에 얼음이 얼 때면, 북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천인 하천천이 1m 이상의 두께로 얼어붙는다. 그 얼음 위로 한꺼번에 수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올라가도 끄떡이 없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는 구제역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강원도 지역에까지 번지는 탓에, 축제를 열지 못했다. 축제를 개최해온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는 행사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축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혹한의 시련만 가득했다.

그때에도 화천천은 어김없이 1m 두께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봄이 오면서 그 두꺼운 얼음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탱크가 지나가도 금 하나 가지 않을 것 같았던 빙판이 녹으면서, 화천천에도 마침내 봄이 오고야 말았다. 구제역은 사라지고 강은 봄을 맞이하는 또 다른 축제로 분주하다.

화천강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
 화천강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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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들이 기세 좋게 봄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연둣빛 새 옷을 갈아입기 바쁘다. 이런 기세라면, 머지않아 산비탈을 기어오르는 나무들마저 한 순간 녹색으로 물들 게 분명하다.

날씨마저 급변하고 있다. 밤새 0도 가까이 내려갔던 기온이, 한낮에는 20도 가까이 끓어오르고 있다. 한밤과 한낮의 기온 차가 극심하다. 아침나절엔 조금 춥다 싶더니, 해가 머리 위로 올라서면서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화천강가 자전거도로.
 화천강가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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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피로 물들었던 흔적 사라진, 화천 꺼먹다리

자전거도로는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높낮이에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산악자전거 코스'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딴산유원지까지는 길도 꽤 잘 닦여 있다. 중간에 한 차례 길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지만, 그 길이 채 50m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전거여행길치고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화천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상적인 풍경 중에 하나가 부교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드럼통 위에 나무편자를 얹어 긴 다리를 만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이 이는 대로 출렁이는 다리다. 하지만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주민들이 강을 건너다니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부교 한가운데가 불룩하게 올라온 것은 그 아래로 카누 같은 작은 배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다리의 정식 명칭은 '폰툰다리'다.

살랑골 물 위에 떠 있는 다리. 폰툰다리라고 부른다.
 살랑골 물 위에 떠 있는 다리. 폰툰다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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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뜬 다리를 지나 좀 더 올라가면, 강 건너로 화천화력발전소가 절벽의 일부가 되어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이 발전소는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 발전소를 빼앗기 위해 적군과 아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발전소만은 반드시 탈환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적군과 아군을 막론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은 병사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화천수력발전소에서 얼마 안 가 '꺼먹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른다. 멀리서 봐서는 강 위에 대충 올려 세운 다리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꽤 견고하게 지어졌다. 콘크리트 교각에 검은 빛이 감도는 나무로 상판을 얹었다. 나무에 검은 콜타르를 먹인 까닭에 꺼먹다리라고 부른다.

꺼먹다리
 꺼먹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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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다리 앞에 '1945년경 화천댐과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세운 폭 4.8m, 길이 204m의 철골과 콘크리트로 축조된 국내 최고의 교량'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다리가 건설된 지 66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튼튼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다리로는 오로지 '사람'과 '자전거'만이 지나다닐 수 있다.

이 다리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사용됐다. 주변이 주요 전투가 발생했던 지역인 만큼, 이 다리가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피로 물든 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이 다리 역시 전쟁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꺼먹다리 위에서 바라다 본 화천강.
 꺼먹다리 위에서 바라다 본 화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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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 화천댐

강변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어룡동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입구에 딴산유원지가 있고, 그곳에서 화천댐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강 둔치 위로 난 자갈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갈길 위 언덕 위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자전거 조건에 맞춰 길을 선택하면 되는데, 굳이 자갈길로 내려가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화천댐은 일종의 반환점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천댐은 기대 이하다.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대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소양강댐처럼 무언가 특별한 풍경을 기대하고 왔다면 실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근처에 공원(어룡동 산천어 월드파크)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탓인지, 지금은 공원을 돌보는 사람이 따로 없다 싶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화천댐
 화천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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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에 우리나라 최초의 송어양식장이 있다. 시멘트로 만든 수조가 하나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수조 역시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데다 그 자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곳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간간히 자동차들이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차에서 내려서 보지도 않고 되돌아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화천댐을 되돌아 나와서는 화천수력발전소가 있는 길로 올라탄다. 그 길 입구에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판이 서 있지만, 그대로 진입한다. 그러다 꺼먹다리 앞에서, 앞서 본 것보다 좀 더 정중한 경고판이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사람'과 '자전거'는 발전소를 통과할 수 없으니 꺼먹다리를 건너서 나가달라고 적혀 있다.

그곳에서 꺼먹다리를 건너 발전소를 우회한다. 그리고는 발전소를 벗어난 지점에서 구만교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구만교를 넘어 왼쪽으로 약 2km를 거슬러 올라가면, 파로호 국민관광지가 나온다. 하지만 그 길은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오른쪽 강변길을 따라간다. 이 구간은 잠시 일반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갓길이 없는 2차선 도로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별로 많지 않아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물 위에 뜬 다리, 폰툰다리. 길이가 1km가 넘는다.
 물 위에 뜬 다리, 폰툰다리. 길이가 1km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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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자전거여행의 백미, 물 위에 뜬 자전거도로

강변길을 따라가다 보면, 살랑골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가다 물 위에 뜬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강가로 내려서는데, 그곳에서 이번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자전거 길을 만나게 된다. 강 언저리에 부교 형식의 다리를 띄워 자전거와 사람이 지나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형태의 자전거도로는 아마 모르긴 해도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다리 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마치 물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다. 다른 길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색다른 재미다. 이 다리의 길이가 1km가 넘는다. 역시 '물의 나라' 화천답다.

다리 끝에 좁은 오솔길이 나온다. 나무와 나무 사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열려 있다. 길바닥이 돌투성이인 데다 머리 위로 이리저리 나뭇가지가 지나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른쪽으로 바로 강물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조금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다.

화천강가 숲 속 오솔길. 머리 위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충돌 주의 경고 문구.
 화천강가 숲 속 오솔길. 머리 위 나뭇가지에 달아놓은 충돌 주의 경고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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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곳에서 비로소 산악자전거를 타고 온 보람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게 최고다. 이 길은 사실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불가능한 지점이 생각 밖으로 많다. 그래도 운치가 있는 길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산길을 벗어나면 다시 강변 자전거도로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 길은 용암교가 있는 곳에서 끝나고 이후로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일반도로가 나타난다. 안내판에 그려진 자전거여행 코스대로라면 도로를 얼마간 달린 뒤에 북한강에서 '칠석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다리는 4대강 공사로 완전히 철거가 된 상태다. 이 다리 역시 물 위에 떠 있는 다리, 폰툰다리였다. 그곳에 다리를 없앴다는 안내문 같은 것은 없다.

붕어섬 입구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
 붕어섬 입구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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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을 하는 데도 알맞은 자전거여행 코스

북한강 역시 곳곳에서 4대강 공사가 벌어지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의 강을 보게 된다. 벌써 지난해 보았던 풍경과 올 봄에 마주하는 풍경이 다르다. 안내판 하나 새로 내걸 여유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사를 서두르다 보니, 환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고사하고, 현장에서 뒤늦게 발견되는 유물들로 인해 공사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어찌 됐든 지금은 안내판에 그려진 코스대로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아쉽지만 이 여행은 이즈음에서 끝마쳐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강을 건너가려면 화천대교나 대교 가까이에 있는 하류 쪽 폰툰다리를 건너는 수밖에 없다. 강 건너편 하류 쪽으로도 자전거도로가 이어진다. 현재 이 자전거도로는 붕어섬을 지나, 장거리의 장거교 직전까지 이어진다.

자전거여행 안내판.
 자전거여행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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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강의 자전거여행 코스는 전체적으로 도보여행을 즐기는 데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자전거여행 전체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화천읍에서 상류 쪽 부교가 있는 곳이나 꺼먹다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루 걸이 도보여행 코스로 알맞춤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길의 일부 구간은 자전거여행이 아닌 도보여행 코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요즘은 어느 지역에 가든, 흔히 보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전거도로다. 화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화천의 자전거도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자전거도로가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는데 급할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다. 그저 맘 편히 페달을 밟거나 천천히 걸음을 옮겨 딛기만 하면 된다. 화천은 강물이 흐르듯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내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태그:#자전거여행, #화천, #꺼먹다리, #화천댐,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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