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무기>포스터

<야만의 무기>포스터 ⓒ <야만의 무기> 공동체 상영 카페 http:/


'Sweet nuke'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을 담은 영화 <야만의 무기>의 영문 제목이다.

일본 원전 대참극이 벌어지기 전, 한국에서도 '핵발전소'는 달콤한 꿀단지였다. 핵에너지 산업의 후발 주자 한국에서 '달콤한 핵'을 핥으려 달려드는 꿀벌의 군무는 요란했다.

그 요란스런 군무를 주춤하게 만든 것이 일본의 원전 참사였다. 일본의 대지진과 원전 참사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했다. 황색 저널리즘의 쇼케이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이후 웬만한 자극에도 꼼짝 않는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한국의 언론들은 위기감과 슬픔, 공포를 유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보여주었다. 일본 원전 사고의 현실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론, 알고 있다. '달콤한 핵'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사실을. 또한 '야만의 무기'가 도처에 널려 있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는 것을. '투쟁'이며 '운동'마저도 '구태의연한' 행위로 전락한 지금, '새로운 세상'은 구태의연함과 구질구질한 현실 너머의 스마트폰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이 영화는 얼굴을 내밀었다. 이강길 감독의 <야만의 무기>는 무려 7, 8년 전 부안에서 있었던 '작은 투쟁'과 '작은 승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민주주의를 짓밟힌 데서 일어난 투쟁

2003년 7월 11일, 김종규 부안군수가 독단적으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부안투쟁은 본격화한다. 군 의회에서도 부결된 핵폐기장 유치 안건을 군수가 강행하자 이에 부안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면서) 부안군은 설명도, 토론 제안도 하나 없었다" "주민 동의 절차도 없이, 군수가 신청하지 않겠다 하고는 신청했다" "민초들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 우리를 폭도로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짓밟힌 데서 일어난 투쟁은 '젊은 애기 엄마 아빠들'의 삭발과 촛불 집회, 삼보일배로 이어졌다. 등교 거부로 인해 부안군 내의 18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휴교하지 않은 학교마저 등교한 학생 수는 절반에 불과했다.

당시 부안 투쟁에 동참했던 청소년은 "어린 시절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모두가 멋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경찰계엄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부안투쟁은 2004년 2월, 부안주민투표에서 반대 92%의 압도적인 득표로 핵폐기장 반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2005년 초 부안대책위의 해산으로 투쟁은 마무리된다.   

 핵페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투쟁 모습. <야만의 무기> 스틸컷.

핵페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투쟁 모습. <야만의 무기> 스틸컷. ⓒ <야만의 무기> 공동체 카페 http://sw


그러나 부안의 '작은 승리'는 뒤이어 전국을 뒤흔든 '핵폐기장 유치 열풍'으로 곧 빛을 잃는다. 핵폐기장 유치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 측이 제시한 수천억 원의 지원금, 이 거대한 꿀단지를 두고 한반도의 양쪽 도시, 경주와 군산에서 유치전이 벌어졌다. 꿀단지의 주인은 주민투표 결과에서 더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경주시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경주의 핵폐기물 처리장의 공사기간은 예정보다 3배 이상 연장되었다. 부실한 지질 조사로 인해 연약지반의 문제로 발목이 잡혀 공사 진행이 느려진 탓이다.

정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였다.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부안 투쟁이 있던 때에 대통령이 누구였냐고 물었다. 주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고 발길질하는 경찰들에게 욕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과연 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살아본 적이 있을까.

1980년생인 나는, 길고도 암울했던 군사독재가 끝나고 마침내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를 무수히 들으며 자랐지만, 무엇이 민주국가의 모습인가를 여전히 알지 못한다.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처음 군의원 선거가 열리던 무렵,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반상회를 중심으로 은밀하고 화기애애한 술판이 연일 벌어졌다. 군의원 후보들이 번갈아가며 술자리를 열었던 것이다.

그보다 어릴 적, 1987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각 당의 선거 운동원들이 갖다 준 세숫비누며 타월 따위가 집안 서랍장마다 가득가득 쌓였다.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부강해진 경제력을 과시하던 무렵, 이 땅의 민주주의는 간신히 진흙탕에서 푸른 잎 한 장을 내민 정도였다.

의혹투성이의 주민투표를 거쳐 핵폐기장 유치에 '성공'한 경주 지역의 한 시민은 "방폐장이 와도 특별한 효과를 못 봤다"고 말한다. 달콤함을 맛보기도 전에 꿀단지의 꿀은 벌써 사라졌다. 일본의 원전 사태가 나날이 악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장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도 바로 핵시설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국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만 강조할 뿐, 현재의 원전 시설의 안전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방사능의 공포에, 사실 은폐와 무관심의 벽에 이중으로 고립되어 있다. 각국에서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 소식이 날아들지만, '원전 르네상스'를 외쳤던 한국은 비교적 잠잠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핵에너지 산업에 대한 공포마저 수그러들 것이다. 이렇게 망각에 익숙한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는 우리가, 꿀단지의 가장 밑바닥에 수만 년이 지나도 독성이 사라지지 않는 방사성 물질이 있음을 알면서도 기어이 거기에 손을 뻗었던 사람들을 과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지난겨울은 너무도 춥고 길었지만, 내 주위엔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50여 만 원이 채 안 되는 활동비를 받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 포장마차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언니, 작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해결하는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기름값이 너무 비싸 보일러를 틀지 못한다고 했다. 그들이 전기장판의 온기에 기대어 겨울을 나는 동안 지역 일간지에서는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에 대한 기사가 연재되고 있었다. 연탄 난방을 하는 저소득층 가정에 무료로 연탄을 나눠주는 캠페인에 동참한 지역 단체장과 관공서 직원들, 기업의 임직원들이 얼굴에 연탄가루를 묻힌 채 웃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해맑은 웃음에서 '순박함'과 '야만성'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과연 2020년대에 이르러 한국이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국가'가 되면, 나의 이웃들이 기름 값 걱정이나 연탄가스 중독 걱정 없이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아무도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핵발전소' 건설에 치중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알지 못한다. 핵에너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학교와 공공시설 및 저소득계층부터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며, 좀 더 근본적으로 전기 소비를 줄여나가려는 적극적인 활동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폐기한 원전 사업을 녹색성장 운운하면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도, 국내의 원전 현황과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설명하고 그 대비책을 만들어가지 않는 것도, 저소득층에 대한 난방지원 정책이 여전히 '연탄쿠폰' 지급이나 '연탄가스 누설 경보기' 설치 정도에 머무는 것도 어쩌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탐욕과 야만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가린 채 핵무기나 다름없는 '핵에너지 산업'을 서슴없이 확장시키고, UAE 원전 수출에 특전사 파병까지 덤으로 얹어 보내며, '핵 폐기장' 반대 주민들을 폭도로 낙인찍거나 돈다발로 국민을 현혹하는 추한 정부가 있는 것이다. "사람 생명이 있어야 나라도, 국가도, 법도 있고, 모든 것이 있다"는 부안 촌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정부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저것 안 끄고 뭐 하나. 저것 때문에 싸우는데"

 핵폐기장 유치 주민투표를 앞두고, 군산 지역에 걸린 현수막. <야만의 무기> 스틸컷.

핵폐기장 유치 주민투표를 앞두고, 군산 지역에 걸린 현수막. <야만의 무기> 스틸컷. ⓒ <야만의 무기> 공동체 상영 카페 http:/


도쿄에서 살고 있는 내 친구는 일본의 원전 사고로 도쿄의 상당수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일반 주택에서도 불을 거의 켜지 않고 어둡게 지낸다며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상점에서 식료품이 떨어지더니 이젠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들단다. 도쿄 시가 방사성 물질 검출로 수돗물 사용을 중단하라고 했을 때에도, 친구는 그 수돗물로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달콤한 핵'은 한순간 '야만의 무기'가 되어 일상을 모든 곳을 점령해 들어왔다.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몸으로 매순간 감내해야만 하는 비극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구태의연한' 투쟁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부안 투쟁 당시, 아침에도 밝혀져 있는 가로등 불빛을 두고 어느 할머니가 "저것 안 끄고 뭐 하나. 저것 때문에 싸우는데"라고 말하더란다. 고백하자면, 한 번도 부안 투쟁의 현장에 가본 적 없는 나 역시 '달콤한 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심야 전기'로 난방을 한다. '핵발전소' 덕분에 지난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심야전기'라서 비교적 난방비가 적게 든다고 무턱대고 좋아하다가, 값싼 전기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달콤한 핵'의 단맛에 길드는 동안, 이 땅은,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는 '핵에너지'에 잠재한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야크 똥으로 난방을 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지금 내가 사용하는 전기의 생산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야만의 무기>에는 이제는 익숙해진 장면들이 많이 있다. 촛불 집회도, 삭발도, 혈서도, 삼보일배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산 사람이 불에 타서 죽는 처절한 투쟁들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국가는 한 치의 관용도 없이 '야만의 무기'를 국민들에게 휘둘렀다. 너무도 구태의연하게만 보이는 이 영화 속에는 그러나 반짝이는 진실이 담겨 있다.

추한 현실 속에서 전개된 격렬한 투쟁의 소용돌이를 함께 지나왔던 한 아이는 말했다. "어린 시절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모두가 멋졌다"고. 국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튼실한 민주주의의 싹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수많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는 아이의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보다 조금 더 멋진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래서 '달콤한 핵'의 꿀단지를 뒤엎고 '야만의 무기'를 잠재우기 위해, 지구에게 덜 미안한 겨울밤을 위해, 거짓과 공포와 무기력감을 떨치고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작은 터전을 지켜나가야겠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기억하면서.

덧붙이는 글 영화 <야만의 무기>는 공동체 상영으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http://cafe.naver.com/sweetnuke.cafe
야만의 무기 이강길 핵폐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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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알리기 위해 가입했습니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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