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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9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의 동북부 해안과 인접한 이와테현에서 12일 오전 어린 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쓰나미로 인해 잔해와 진흙이 가득찬 곳을 지나고 있다.
 진도9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의 동북부 해안과 인접한 이와테현에서 12일 오전 어린 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쓰나미로 인해 잔해와 진흙이 가득찬 곳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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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침착함, 놀라움 넘어 감동까지

14일, 지진 발생 후 3일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상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재난을 넘어 재앙에 가깝다. 절망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침착하고 담담하고 냉정하기까지 하다. 

피해 주민들이 하나 둘 피난소인 학교 체육관에 모여드는 광경이 텔레비젼을 통해 비쳤다. 그러나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사람도 없고, 우왕좌왕 헤매는 사람도 없고, 큰 소리로 하소연하거나 따지는 사람도 없다. 가까스로 목숨만 부지했을 뿐 집, 재산, 가족, 고향, 모든 것을 잃었을 사람들인데 조용하고 질서정연하다.

또 다른 곳, 도쿄 도심에 갖힌 '귀가 곤란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귀가 수단이 차단되어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할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끝없이 가지런한 행렬은 오히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약탈도 없으며, 양보, 배려, 자숙과 같은 미덕이 넘쳐난다. 각국 언론들도 일본인들의 이런 침착한 태도에 감탄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일본인들의 침착하고 냉정한 재난 대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 10여 년간 크고 작은 지진과 태풍 피해 등이 있을 때마다 줄곧 품었던 의문이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 확고... 더 심한 피해 입은 사람 먼저 배려

친한 일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일본정부가 현재 신뢰를 상당히 잃긴 했지만, 재난시 정부의 대응에 대한 신뢰가 기저에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시스템에 대한 신뢰다. 재난 시뮬레이션을 국민들이 숙지하고 있는 편이므로 어떤 식으로 지원이 될지 대충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울부짖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피난소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족과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이다. 나보다 더 심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조심한다. 울부짖고 큰 소리 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알기때문에 하지 않는다.

셋째는,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관서 출신의 지인은 관동 지방사람들의 특성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므로 더 조용하게 비칠 수 있다고도 했다. 
 
일본 언론, 언어는 절제하고 태도는 신중

11일 오후 강진이 발생한 일본 도쿄에서 할머니들이 지진을 피해 담요를 덮어쓰고 길가에 앉아 있다.
▲ 길가로 대피한 할머니들 11일 오후 강진이 발생한 일본 도쿄에서 할머니들이 지진을 피해 담요를 덮어쓰고 길가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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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의견 이외에 내가 지난 12년여간 일본에서 지내오면서 느낀 점을 덧붙이면 이렇다.

첫째, 평상시의 재난훈련, 크고 작은 지진, 태풍피해의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위급상황에서도 차분하게 행동한다. 한번도 큰 지진을 경험하지 못한 나와 우리 아이들조차 우리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은연중에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데 놀랐을 정도다. 

둘째, 보도기관의 침착하고 신속한 보도 태도를 들 수 있다. 공영방송인 NHK를 비롯해 각  민영방송들은 지진 발생 즉시 재난보도 체제로 돌입해 토요일과 일요일의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재난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언어는 절제되었고, 태도는 신중했다. 감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은 삼갔고 이틀간은 정보전달과 대처방법 등에 치중했다. 서서히 피해상황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월요일(13일)부터 감동적인 구조상황, 생존자들의 증언, 유족들의 상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셋째, 일본의 지역사회는 지금도 각종 마쯔리 (마을축제) 행사를 통해 이웃끼리 연결돼 있다. 자치회의 부인모임, 아동모임 등을 통해 역할을 분담하고, 이웃의 안부를 확인한다. 이런 평상시의 연대가 피난소의 질서정연한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초유의 재난 앞에 특유의 단합력 보여줘

15일이면 재난발생 후 4일째를 맞게된다. 피해상황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고, 피난소 생활의 피로가 쌓여 불만이 늘어갈 것이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당시 고베시 홍보과장을 맡았던 사쿠라이 세이치씨는 TV방송을 통해 이번 동일본 대지진에 대처한 정부의 초동대책이 훌륭했고, 재난대비 시스템도 잘 기동한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이제부터는 재난민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가설주택의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재난민들은 안도할 수 있으며, 국민들의 격려 메시지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주변 지인들 중에는 벌써부터 모금운동을 벌이거나 구호물품을 수집해 재해지역에 보내는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모두 자숙하는 마음으로 절전과 정전에도 적극 협력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자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들은 초유의 재난 앞에 특유의 단합력을 보여주고 있다.


태그:#동일본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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