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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속리산 법주사 연화대에서 봉행된 혜정 큰스님 다비식
 2월 26일 속리산 법주사 연화대에서 봉행된 혜정 큰스님 다비식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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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살아간 79년 중 58년을 청정한 출가수행자로 사시다 지난 22일, 필자의 고향마을인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각연사에서 입적하신 혜정 큰스님의 영결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영결식장을 찾아가는 길은 달빛이 비추는 새벽길을 달리는 이속의 길, 속세를 떠나 법이 머문다는 법주사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반달을 지나 초승달로 가고 있는 달이 차갑도록 캄캄한 하늘에 맑게 떠있습니다. 

속세를 벗어나는 이속의 길을 따라 간 다비식장

1시간쯤을 달리고 나서야 구불구불한 말티재로 접어듭니다. 양손에 힘을 줘 핸들을 움켜잡고, 엉덩이에 힘을 주며 버텨보려 하지만 구비 진 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몸뚱이가 한쪽으로 쏠리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옆구리가 팽팽해질 만큼 몸뚱이가 한쪽으로 휘청거릴 때마다 이런저런 잡념이 찔끔거리며 쏟아집니다.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휘감아 돌듯이 핸들을 돌려야 하는 비탈진 산모퉁이를 길을 돌 때마다 고꾸라지려는 몸뚱이를 가다듬으며 말티재를 넘어서니 속리의 영역입니다.

지난 2004년 9월, 정일스님을 다비하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계시던 혜정큰스님.
 지난 2004년 9월, 정일스님을 다비하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계시던 혜정큰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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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만 할 뿐 보이지는 않지만 정2품송을 지나고 오리숲을 지나니 새벽 5시쯤에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수십 번은 다녀간 곳이지만 이렇듯 한적한 길을 통째로 독차지해 보는 건 처음입니다.

수정교를 건너고 금강문을 지나서 들어선 법주사 초입은 단 몇 시간 후면 치러질 야단법석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적막할 뿐입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차분한 발걸음으로 대웅전까지 다녀왔지만 사람들의 무리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산사의 하루를 시작하는 도량석과 아침예불이 이미 끝난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발걸음 없는 걸음으로 도량석을 돌고 있는 새벽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처마 끝에 매달려 '뎅그렁' 거리는 풍경소리가 독경소리로 들릴 뿐 별다른 인기척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의 힘을 빌려 나뭇가지들도 108배를 올리는 아침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해 홀딱 벗은 몸뚱이 휘휘 흔들어가며 하는 나뭇가지들의 108배야말로 무위자연의 조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대웅전을 나와 종무소 앞, 영결식이 거행될 식장자리로 가니 단 한사람만이 조명에 의지해 뭔가를 준비하느라 땅바닥에서 앉은뱅이걸음으로 바등거리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제단만 시설하고 앞쪽은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가 없었으나 밤늦은 시간에 제단 앞 쪽이 너무 울퉁불퉁하니 시설을 해달라는 연락이 와 널빤지를 이용해 야트막한 단을 시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업의 특성상 여럿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혼자서 꼼꼼하게 송판조각으로 수평을 맞춰가는 중이었습니다. 

아직은 캄캄한 시간,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엔 별들이 총총합니다. 미륵대불 뒤쪽, 수정봉 하늘엔 은빛물감을 붓에 묻혀 콕콕 찍어놓은 듯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합니다.

가부좌 튼 20분, 무념무상의 시간들

6시가 조금 넘으니 아침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고요한 아침 경내에 울립니다. 몇 겹을 껴입었지만 커다란 움직임 없이 서성이다보니 어느새 한기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느껴집니다.

영결식장을 찾아가는 길은 달빛이 비추는 새벽길을 달리는 이속의 길, 속세를 떠나 법이 머문다는 법주사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영결식장을 찾아가는 길은 달빛이 비추는 새벽길을 달리는 이속의 길, 속세를 떠나 법이 머문다는 법주사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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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경내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법주사 경내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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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봉 하늘엔 은빛물감을 붓에 묻혀 콕콕 찍어놓은 듯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합니다.
 수정봉 하늘엔 은빛물감을 붓에 묻혀 콕콕 찍어놓은 듯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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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도 달래고, 아침식사도 해결할 겸 주차해 놓았던 차로 돌아왔습니다. 준비해 간 빵과 우유를 먹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몇 십 분간의 쪽잠을 자는 것으로 체온과 체력을 재충전하였습니다. 

날은 훤하게 밝았지만 아직도 인기척은 듬성듬성한 아침 8시, 휘몰아치는 바람에 진열되어 있던 조화가 넘어지고, 정렬해 놓았던 의자들이 땅바닥으로 나뒹굽니다.

제단을 보강하느라 못질을 하고, 제단을 포장한 흰색천이 날아가지 않도록 꼭꼭 여미느라 스님들의 손길마저 바쁩니다.

영결식장이 준비되는 막간을 이용해 법주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 바위를 향해 등산을 시작합니다.

비탈이 가파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운동을 게을리 한 탓에 종아리는 찢어질듯이 당기고, 토해내는 숨소리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릴 정도입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법주사는 아직도 조용합니다. 잠시 후면 야단법석이 치러질 곳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용합니다.

가지런하게 정렬해 놓은 의자는 텅 비어있고, 그렇다고 경내 어딘가에서 북적대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법주사를 내려다보며 가부좌를 튼 20여분 동안은 무념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1,200여 명의 애도 속에 혜정큰스님 영결식 봉행

10시가 되니 범종을 울리는 명종으로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식순에 따라 영결식이 진행되는 순간순간 애도인파를 어림해 보니 1200명쯤 됩니다. 불과 한두 시간 전만해도 영결식장이 텅 비는 것은 아닐까를 걱정하게 했던 조문객들이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버스 등을 이용해 시간에 맞춰 단체로 참석을 하다 보니 그렇게 단시간에 몰려든 듯합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법주사는 물론 멀리 정2품송까지 보인다.
 그 자리에 앉으면 법주사는 물론 멀리 정2품송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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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고 내려다 본 법주사 전경
 가부좌를 틀고 내려다 본 법주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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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여명의 애도속에 봉행 되고 있는 혜정큰스님 영결식
 1,200여명의 애도속에 봉행 되고 있는 혜정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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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에 참석하신 원로스님들
 영결식장에 참석하신 원로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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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을 마치니 영결식을 하는 동안 식단 뒤쪽에 모셔져있던 스님의 법구를 이운합니다. 스님이 살아생전 사용하시던 황토색 가사만으로 여민 채 각목으로 짠 상여 틀에 모셔져있던 스님의 법구를 10분 스님이 둘러메니 운구행렬이 시작됩니다.

바람이 만장을 앞장섭니다. 알록달록한 만장, 이런저런 깨우침의 글들이 써진 만장을 바람이 앞뒤로 흔들어 대며 운구행렬에 앞서갑니다. 

영결식장을 떠나 미륵대불 앞을 지나고 수정교를 건넌 스님의 법구는 문장대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올라 가면 있는 다비장을 향해 운수행각의 발걸음을 하고 있는 스님들의 어깨를 타고 애별이고를 토하며 이운되었습니다.

생전에 스님께서 입던 황토색 가사만으로 여민 스님의 법구
 생전에 스님께서 입던 황토색 가사만으로 여민 스님의 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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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를 위해 10분 스님의 둘러멘 혜정큰스님 법구
 운구를 위해 10분 스님의 둘러멘 혜정큰스님 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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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을 떠나는 운구행렬
 영결식장을 떠나는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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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운구행렬을 앞장선다.
 바람이 운구행렬을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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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를 건너고 있는 만장
 수정교를 건너고 있는 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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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를 건너고 있는 스님의 운구행렬
 수정교를 건너고 있는 스님의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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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다비장에 마련되어 있는 연화대, 숯을 많이 사용하였다.
 법주사 다비장에 마련되어 있는 연화대, 숯을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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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구를 연화대에 모시고 있다.
 스님의 법구를 연화대에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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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구를 다비할 법주사 연화대는 2004년 9월에 보광사 정일스님을 다비하였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펄럭이는 만장을 앞서고,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하는 마음이 뒤따르는 스님의 법구가 다비장 연화대에 모셔졌습니다.

속리산 자락을 넘어 시방세계를 울린 '스님, 불 들어갑니다'

12시가 채 되기 전, 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불을 붙이는 거화가 되니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치는 사부대중의 외침이 속리산 자락을 넘어 시방세계로 퍼지는 또 한 번의 울림이 됩니다.

같은 다비장에 같은 스님이 꾸린 연화대지만 혜정스님을 다비하기 위한 연화대는 6년 전, 정일스님을 다비한 연화대와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외형이 연꽃모양이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연화대를 형성한 재료가 많이 달랐습니다. 정일스님을 다비한 연화대가 주로 나무를 열원으로 하는 방식이었다면 혜정큰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통나무 숯이 주 열원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화대에 불을 봍이는 거화가 되었다.
 연화대에 불을 봍이는 거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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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 갑니다.
 스님! 불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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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를 포장하고 있던 흰색천이 삽시간에 타버렸다.
 연화대를 포장하고 있던 흰색천이 삽시간에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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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쯤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있는 조문객들.
 연화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쯤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있는 조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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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를 더해가는 연화대
 열기를 더해가는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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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의 제자 스님들
 큰스님의 제자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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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하게 젖은 스님의 눈가에 애별이고가 주렁주렁하다.
 촉촉하게 젖은 스님의 눈가에 애별이고가 주렁주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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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나무가 타면서 재로 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연화대가 사그라지듯이 가라앉아 자칫 유골의 일부가 노출되는 경우가 있지만 숯은 그렇지 않습니다.

숯은 엄청난 화력을 발휘하면서도 숯 자체의 형상을 상당시간 유지하기 때문에 무더기를 형성해야 할 연화대 자체가 사그라지듯이 가라앉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방차가 출동하여 대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별도로 살수차까지 동원해 호스를 늘이고 있을 만큼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초기의 연화대는 정말 깔끔하게 제 본분인 다비를 잘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휘몰아 부는 북서풍으로 연화대가 한쪽으로 쏠리긴 했지만 그 정도의 열, 그 정도의 더미라면 스님의 법구를 고스란히 지수화풍으로 환원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조급함과 서두름 때문에 엉망 된 다비

하지만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서두름으로 헤정큰스님의 다비는 그동안 필자가 봐왔던 20번의 다비 중에서 가장 무례하고 엉망인 다비가 되었습니다. 늦은 시간부터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그 일기예보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비 후 유골을 거두는 습골까지를 다 마치려는지 오후 2시가 채 되기 전부터 연화대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쪽에서 부는 바람에 한쪽으로 쏠린 연화대
 한쪽에서 부는 바람에 한쪽으로 쏠린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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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속의 혜정큰스님과 눈빛으로 조우하고 있는 스님께서는 무얼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영정속의 혜정큰스님과 눈빛으로 조우하고 있는 스님께서는 무얼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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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법구가 다비되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의 마음은 필자의 마음과는 다를겁니다.
 스님의 법구가 다비되고 있는 연화대를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의 마음은 필자의 마음과는 다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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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서 많은 밥을 하며 뜸을 들이기 위해 아궁이 속에서 타고 있는 불덩이를 꺼내 불을 조절하는 것은 봤지만 다비만이 오롯한 목표가 되어야 할 연화대에서 불덩어리를 덜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열이 모자라 나무 등을 더 넣는 경우는 종종 봐왔지만 열이 아주 중요한 다비현장에서 훨훨 불타고 있는 나무, 열기를 훅훅 내뿜고 있는 숯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끄집어내는 건 설명도 이해도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제대로 타지 않은 굵은 나무들을 끄집어 낼 때는 연화대를 깔끔하게 정리하려는가 보다하고 생각했지만 서너 시간 후면 다비를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도는 것을 보고 의도적인 불 조절이라는 걸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달리 숯은 상당기간 동안 사그라들지 않는다.
 나무와 달리 숯은 상당기간 동안 사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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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멓게 드러난 스님의 육신
 시커멓게 드러난 스님의 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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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법구를 삽으로 숯덩이 등을 퍼올려 덮은 장면
 드러난 법구를 삽으로 숯덩이 등을 퍼올려 덮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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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으로 숯덩이 등을 퍼올리고 있는 장면
 삽으로 숯덩이 등을 퍼올리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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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서 타오르는 불꽃
 육신에서 타오르는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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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연화대의 일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계신다.
 스님들이 연화대의 일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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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있는 나무를 걷어내고, 통째로 남아있는 주변의 숯덩이들을 조금씩 걷어내다 보니 법구를 올려놓았던 철상(鐵床) 다리가 드러나며 법구 위쪽에 있던 숯덩이들이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재화되면서 스님의 법구 일부가 시커멓게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시커멓게 드러나며 연기를 뿜어대니 삽으로 반대쪽 바닥에 있는 숯덩이들을 퍼다 덮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궂을 거라는 일기예보와 조급해진 마음에 서둘렀을지라도 이런 상황이면 더 이상 서두르지 말아야 함에도 다비를 주관하고 있는 스님의 무례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속계로 향하는 발걸음, 도리어 가뿐

반복해서 철상 주변과 아래쪽에 있는 불덩이들을 밖으로 끌어내다 보니 스님의 유골까지도 끌어내는 불덩이에 섞여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방열복은 입고 스님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하고 있던 법주사처사가 스님의 유골을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볼새라 스님의 유골을 얼른 삽으로 퍼 철상 위로 올려놓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 처사의 눈에 띈 유골에 한정된 수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너 시간이면 습골까지 끝날 거라고 하던 다비는 갈비뼈가 가지런하게 드러나고, 흉부쯤으로 생각되는 큰스님의 법구 일부가 시커멓게 드러나며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 삽으로 불덩이를 퍼덮기를 반복하였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주변이 컴컴해지고, 철상 아래로 떨어진 불덩이가 아직도 열기를 뿜어내는 오후 7시쯤에서야 혜정큰스님의 문도들이 모여 하룻밤을 지나고 습골하기로 결정합니다. 큰스님의 문도들이 하룻밤을 지내고 밝은 아침에 습골을 하기로 결정하였음에도 다비를 주관하고 있는 스님께서는 서너 시간 후면 습골까지 완전하게 끝낼 수 있다는 말로 실패한 서두름을 아쉬워하였습니다.   

법구를 모신 철상을 건드릴 때 마다 위로 아래로 치솟던 불곷
 법구를 모신 철상을 건드릴 때 마다 위로 아래로 치솟던 불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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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커먼 부분도 법구의 일부다.
 흰색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커먼 부분도 법구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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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내 물을 뿌려서 쌓은 불덩이와 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끌어내 물을 뿌려서 쌓은 불덩이와 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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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기가 식으면 유골을 수습하는 습골이 이루어 진다.
 이 불기가 식으면 유골을 수습하는 습골이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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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앉는 어둠만큼이나 다비장을 서성거리던 마음이 까맣게 타오릅니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욕이라도 얻어먹은 기분입니다. 가장 엄숙하고 숭고해야 할 혜정큰스님의 다비식이 도리어 큰스님을 욕되게 한 것은 아닌가 줄곧 반문되는 시간입니다.

포항에서 올라와 줄곧 다비과정을 지켜보던 처사조차 '제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일단 돌아가시니 아무렇게 해도 어쩔 수 없네요'하며 한탄 아닌 한탄을 합니다.  

불덩이를 끌어내 물까지 뿌려 쌓은 숯덩이와 재가 이룬 산더미만큼이나 있어서는 안 될 일들로 점철된 무례한 다비라고 생각되어서인지 속계를 향하는 발걸음이 도리어 가뿐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입적에 드신 17분 스님의 다비식 이야기를 엮은 '스님, 불 들어 갑니다'의 저자입니다.



태그:#혜정큰스님, #법주사, #연화대, #다비식,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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