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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예산안이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로 통과되던 8일, 조중목씨(59, 인천시 도매유통연합회 회장)의 '희망'도 함께 날아갔다. 날치기 통과 속에 조씨가 그토록 바라던 '통합물류센터' 예산이 2011년도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 도·소매업자들이 연합해 꾸린 유통망인 통합물류센터를 통해 대형유통망에 위협받는 도매사업의 활로를 찾으려던 그의 꿈은 그렇게 부서지고 말았다.

 

20일 평소처럼 간장의 짠 냄새와 고추장의 은근한 매운 향이 가득한 가게를 지키던 조씨는 통합물류센터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28년째 된장·고추장 등 장류 도매업을 하면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그도 유통업에 눈독을 들이는 대기업들 앞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여느 때보다 절박한 모양이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상인 운동(기업형슈퍼마켓 반대 등)을 한 곳에서 여당이 많이 졌거든요. 선거는 다가오니 말로만 상인들 앞에서 물류센터 짓겠다고 하고는 쏙 빼 버린 거죠. 이 정부는 보통 사람에게서 희망을 빼앗는 거 같아요."

 

안상수 "5개 물류센터 세우겠다" 공언... 그러나 물류센터 예산은 0원

 

예산안 처리 하루 전인 7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적극 나서겠다"며 "우선 공동구매·배송을 통해 부대비용을 대폭 절감하도록 2013년까지 광역권별로 5개의 물류센터를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맞춰 당은 언론에 "내년에 우선 두 개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 200억여 원의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류센터 시범운영을 위한 200억의 예산안 마련 계획에 조씨는 '혹시나'하고 믿어봤지만 '역시나'였다. 물류센터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다.

 

"이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정권 들어서 자꾸 말로 사기를 치니까 힘없는 백성들은 좌절감이 커져만 가고 있어요."

 

하루 만에 깨진 약속에 대한 조씨의 배신감은 커 보였다.

 

도·소매업자들이 계획한 물류센터는 5단계 유통구조를 '생산자→물류센터→동네슈퍼'로 간소화 시키자는 접근이다. 지역의 도·소매업자들이 연합해 하나의 통합물류센터를 만들어 '유통회사 영업본부→영업소(대리점)→도매점'의 단계를 '물류센터' 하나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사 직전의 동네 슈퍼와 활로를 찾는 도·소매업자가 공생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안으로 부상한 대안이었다.

 

"통합물류센터를 만들면, 우선 각각의 도매업자들이 내는 임대료가 빠져서 물건 가격의 5%가 내려가요, 조그만 가게들이 연말에 세금 문제로 골치 아픈데 물류센터를 만들면 전문 회계사 한 명만 고용해도 되고…. 줄일 수 있는 비용들이 굉장히 많죠."

 

단계별 마진을 줄여 최대 3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물건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대기업들 도매유통에 눈독... "대형 유통업체 들어오면 노후 없어"

 

물류센터 건립이 절박했던 또 다른 이유는 유통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SSM이 적은 이마트는 이미 포화상태인 SSM에서 눈을 돌려 '창고형 할인매장(소품종 대량판매로 낮은 가격에 물건을 유통하는 매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대기업이 도매유통에 진출해 영역을 넓히려는 것이다.

 

조씨는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와 버리면 우리 노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우리의 존재는 싹 지워지고, 그 순간부터 먹고 사는 걸 걱정해야 한다"며 "3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량 물량공세와 낮은 가격, 편리한 서비스를 내세우며 동네 슈퍼까지 잠식한 대형마트들이 유통업에까지 영역을 넓혀 '자본력'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이라는 우려다.

 

조씨는 "전국에 도매업자가 5만 명이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까지 하면 20만 명에 가족까지 따지면 60만~70만 명"이라며 "그 사람들이 알아서 먹고 살고 있는데 대형 물류센터를 만들어서 서민들의 밥그릇을 빼앗아야겠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은 "도·소매업자들은 이중의 위기에 처해있다"며 "SSM이 골목을 잡아먹으면 슈퍼가 없어져 납품하던 존재가 없어지고, 대기업들이 유통업체까지 세우게 되면 도매업자들은 다 퇴출되게 된다, 상생이 아닌 살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에 물류센터 건립 촉구, 한나라당 낙선운동도 할 것"

 

이 실장은 "안상수 대표 나름대로는 중소·자영업자를 보호하겠다는 절박성은 있었을 테지만 결국 물류센터 건립에 대한 예산은 누락되었다"며 "4대강 때문에 다른 예산을 축소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물류센터나 SSM 문제 등을 차기 과제로만 넘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실장은 "내년도 추가경정예산에 물류센터 관련 예산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올해 센터 건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대기업들의 도매업 진출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도·소매업자들을 보호해 줄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씨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그는 "포항 쪽 형님 예산에만 몇 천억이 들어갔다는데 200억을 못해 준다는 게 말이 되냐, 화가 머리 끝까지 찬다"며 "'그런 예산만 없었다면'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군데라도 시범적으로 물류센터가 지어진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이제는 박탈감만 남는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당장 내일이라도 물류센터를 할 수 있게 모든 걸 준비해 두었다"며 "우리에게 통합 물류센터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앞으로 중소 자영업자들의 사업 영역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에 물류센터 건립 등을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한나라당 낙선운동까지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그:#예산안 , #통합물류센터, #안상수 , #SSM, #날치기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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