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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네>(유동훈 사진·글, 낮은산 펴냄, 2010.11.30./13000원)

 

인천 동구 만석동에는 '기차길 옆 공부방'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유동훈님이 사진으로 동네 이야기를 담은 책 <어떤 동네>를 내놓았습니다.

 

유동훈님은 인천 동구 만석동 가난한 아이들 삶을 바라보면서 "어떤 아이는 노동자로 성장해 조선소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용접을 한다. 또 어떤 친구는 특수교사의 꿈을 꾸고, 어떤 친구는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하며 성실히 자신의 장래를 설계한다(24쪽)"고 이야기합니다. "이곳(만석동)은 볼품없고 가난한 동네. 빼앗기고 힘없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더욱 약하고 여리다(20쪽)"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아이와 어른이 있으니 가난한 동네라 할 만하고, 이 아이들은 계약직 노동자도 되고 대학생도 되며 군인도 됩니다. 그런데 이곳 아이들과 어른들은 다른 동네하고 견주면 돈이 좀 적고 집이 좀 비좁다뿐, 한 사람이 살아가며 누릴 모든 것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한테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기차길 옆 공부방'이 태어날 수 있지, 사랑 한 줌 없는 데에 공부방이든 예배당이든 절집이든 구멍가게이든 태어나지 않습니다.

 

가난하기에 도와주어야 하거나, 도와주어야 하기에 여는 공부방이 아닙니다.

 

가난하다면, 돈이 적어 가난한 사람이 있다 할 테고, 마음이 텅 비어 가난한 사람이 있다 할 테지요.

 

흔히들 '공부방'이라 하면 가난하다고 일컫는, 아니, 돈없고 힘없으며 이름없는 사람들 동네라 하는 곳 아이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엽니다. 아무래도 돈이고 힘이고 힘이고 없으니까 우리 사회 따순 손길이 적게 뻗친다 할 만하고, 의료 혜택이나 교육 혜택을 덜 받는데다가, 아이들 어버이는 돈벌러 집을 오래 비울 테니 아이들이 심심하거나 걱정스럽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 돈 잘 버는 동네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오래오래 따숩게 보내려나요. 서울 강아랫마을 아이들은 제 어버이랑 얼마나 오랜 나날 오랜 동안을 보내려나요. 이 마을 아이들은 제 또래나 손위나 손아래 동무하고 얼마나 어울리려나요.

 

어버이 되는 어른들은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하고 더 오래도록 어울리면서 아이들 가르치는 몫을 도맡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어버이 되는 어른들이 바깥에서 돈을 더 벌어들여야 아이들을 한결 잘 키울 수 있다거나, 아이들을 여러 학원이나 학교에 넣는다고 아이들이 더욱 씩씩하고 슬기롭게 자란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땅바닥에 손가락이나 돌멩이로 죽죽 금이나 동그라미를 그리며 하루를 보낸다 해서 심심하기만 하거나 딱해 보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학교를 열어 꾸리는 삶도 좋으나, 학교 없이 꾸리는 삶 또한 좋습니다. 지내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삶인가에 따라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가 갈립니다.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넋인가에 따라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가 나뉩니다. 공부방은 틀림없이 좋은 쉼터일 테고, 뒷간 없는 비좁은 집 자그마한 방 또한 훌륭한 쉼터입니다. 예배당은 어김없이 너그러운 만남터일 테며, 햇볕 반 토막 곱다시 깃드는 비좁은 골목 한켠 또한 재미난 만남터입니다.

 

가난함이든 가멸참이든 죄악도 아니요 빛줄기도 아닙니다. 가난한 삶이 구지레할 수 없고, 가멸찬 삶이 지저분할 수 없습니다. 골목집을 어둡거나 사라져 가는 모습으로 깎아내릴 까닭 없고, 아파트를 밝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추켜세울 까닭 없습니다. 골목집을 살가웁거나 더 따스한 추억으로 돌아볼 까닭 없고, 아파트를 차디차거나 무시무시한 돈벌레로 내리깎을 까닭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면서 오붓하게 손을 잡을 때에 즐겁습니다. 마을솥을 걸어도 좋으나, 전기밥솥을 써도 좋습니다. 너른터에서 줄넘기를 해도 좋고, 좁은터에서 공기놀이를 해도 좋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아도 좋지만,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입으로만 읊으며 그날그날 잊고 다시 떠들고 또 잊으며 새삼 주워섬겨도 좋습니다.

 

<어떤 동네>를 내놓은 유동훈님은 말합니다.

 

"미술가들이 가난한 동네의 벽과 집을 꾸민다며 그림 작업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생활과 예술을 결합한다는 의도에 수긍 가는 면도 없지 않지만 골목을 지나다 보게 되는 숨겨진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벤트로 진행되는 전문 예술가들의 그 작업이 동네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109쪽)."고.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미술가이든 예술가이든 제아무리 좋다는 뜻을 내세운달지라도 골목동네 살림집 벽에 그림을 죽죽 그리는 일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으며, 조금도 훌륭하지 않고, 터럭만큼도 멋스럽지 않습니다. 그림쟁이들이 할 일은 살림집 벽에 섣불리 페인트를 발라대는 일이 아닙니다. 그림쟁이들은 동네를 건성건성 구경하듯 지나친다면, '구경꾼으로 지나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눈길이 아니기 때문에, 구경꾼 눈길로 지나치는 동안 바라보며 느낀 '좋은 삶'을 당신들 붓끝으로 좋게 담아서 즐기면 됩니다. 예술쟁이들은 동네에 뿌리내릴 방 하나 얻어 지낸다면, '한동네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꼭 좋은 이웃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한 동네 사람으로 살아내는 동안 마주하며 느낀 '좋은 삶'을 당신들 몸짓으로 좋게 실어서 즐기면 됩니다.

 

이름을 남기려는 삶이 아닌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내 이름이 남을 만한 일을 한다면 미술도 예술도 사진도 창작도 교육도 사회운동도 봉사활동도 아닙니다. 손이 시려 죽을 판인데도 그물을 꿰매고 굴을 까는 삶을 꾸리며 하루하루 밥벌이를 해 온 이들을 가만히 보자면, 참 고단하거나 괴롭거나 슬퍼 보일 만합니다. 매캐한 공장 연기를 잔뜩 들이마시면서 공동뒷간에서 한참 줄을 서야 하는 삶이란 더없이 팍팍하거나 메마르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삶을 왜 '가난'이라는 굴레로 옥죄며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 어린 나날 살림살이가 제 동무보다 나았는지 모자랐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 어버이 살림살이는 이웃보다 나았다면 나았고, 모자랐다면 모자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저런 느낌을 하나도 모릅니다. 살림살이가 나았더라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하고 말을 섞은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살림살이가 나았달지라도 어머니는 하루 내내 집안일뿐 아니라 할아버지 병수발에다가 부업에 바빴습니다. 제 동무들 집에 놀러가 보면, 동무들 어머님은 우리 어머니처럼 언제나 부업을 하셨고, 집안일이든 집안 어르신 병수발이든 바쁘셨습니다. 누구네 아버지가 한 달 일삯을 몇 만 원 더 번다고 더 잘난 살림이 아니지만, 누구네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일해서 한 달 살림돈이 몇 만 원 더 적다고 더 못난 살림이 아닙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이웃한테서 얻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이웃한테 나눕니다.

 

곗돈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돌기도 하지만, 무슨 성금이다 무슨 회비(육성회비 따위)다 하며 돈을 갖다 바쳐야 할 때면 으레 집집마다 돈 빌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한 집에서 빌린 돈이 또 다른 집으로 빌려지는 일이 잦고, 반찬통이나 접시에 고작 김치나 지짐이 몇 점 담았을 뿐인데 여러 집을 쉬 돌 뿐 아니라, 아이들 옷은 푸름이 나이가 되어도 온갖 집을 거치곤 합니다. 어느 집 어린이이든 두어 집이건 서너 집을 거친 옷을 입기 마련입니다. '내 옷'이 아니라 '함께 입는 옷'입니다. 딱히 어느 단체나 시설이나 동회나 관청에서 도와주러 온 일이 없으나, 애써 도와주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쪼물딱쪼물딱 쪼그랑뱅이 사람들끼리 쪼물쪼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림쟁이라 하든 예술쟁이라 하든, 벽그림 그리기가 내키지 않는 까닭은 이런 데에서 비롯합니다. 뭣보다 삶이 없는 한편, 하나도 안 예쁘거든요. 그나마 예쁘게라도 그리면 낫지요. 예쁘게 그릴 줄 모르면서 페인트 찍찍 발라 봤자 한두 해쯤 되면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지며 더 볼썽사납습니다.

 

사진책 <어떤 동네>를 생각해 봅니다. 책겉을 아로새기는 사진부터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왜 아이들을 벽에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저냥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살아가거나 해바라기를 하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하는 모습을 조용히 사진으로 담아도 넉넉할 텐데요.

 

이 사진책 <어떤 동네>란 '기차길 옆 공부방' 아이들을 담은 사진책인지요? 사진을 찍은 유동훈님은 당신 소개글에든 책 몸글에든, 이 사진책에 실린 아이들이 '공부방 아이들'인지 아닌지를 또렷하게 밝히지 않으나, 거의 모든 아이들은 공부방 아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다든지 수수한 낯빛으로 가만히 담벼락에 기댄다든지 하는 사진들을 보면,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배우거나 놀거나 살아내는 모습을 소담스럽거나 조촐하거나 꾸밈없이 담아내지 못했습니다(유동훈 님은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분입니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지만 활짝 웃는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뒤로 하는 모습을, 아이들 뒷자리 살림집이 골목동네가 아닌 아파트라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책이 되려나요. 이 아이들 얼굴빛하고 살림집과 골목과 동네는 이 사진책에서 얼마나 살갑거나 알뜰히 어우러지려나요.

 

가난한 동네 공부방 아이들을 담은 사진을 그러모았다고 해서 일부러 '뒷모습이 될 동네 삶자리'가 꾀죄죄해 보이거나 어두워 보여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밝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아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까닭 또한 없습니다.

 

<어떤 동네>라는 사진책을 처음부터 '공부방 아이들을 담은 사진책'이라고 또렷이 밝히면서 '공부방 아이들과 보낸 나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또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뻔한데다가 틀에 박히게 찍는) 맑게 웃는 얼굴을 담는 사진에 그치지 말고, 맑게 웃는 얼굴이 살아가는 동네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공부방이든 만석동이든 골목동네이든 가난한 동네이든, 더 낫거나 덜 떨어지거나 한 삶이 아니라, 서로 사랑스러우며 살가운 이웃을 보듬을 이야기가 피어나는 삶터로구나 하고 느끼도록 나아가는 사진으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동네는 수수한 동네이고, 어떤 동네는 흔한 동네이며, 어떤 동네는 여느 동네입니다. 가난하다고 나쁜 삶이 아니요, 가난하다고 즐겁지 않은 삶이 아닙니다. 아픈 사람이기에 늘 괴롭거나 고단한 나날이 아닙니다. 안 아픈 사람들은 언제나 즐겁거나 신나는 나날이 아닙니다.

 

제가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도화1동 624번지이고, 주안1동과 주안2동을 거쳐 신흥동3가에서 살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제 동무나 다른 살붙이들이 용현1·2·3동이나 숭의1·2·3·4동이나 선화동이나 신흥동1가·2가·3가, 율목동, 도원동, 송월동3가, 만석동에 살았거나 살기에 이처럼 말하지는 않습니다.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아 이웃한 어른들이 창영동, 금곡동, 송림1·2·3동, 송현1·2동, 내동, 경동, 화평동, 화수1동에 산다고 이처럼 말할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가난하면 가난하다뿐입니다. 집이 좀 낡았으면 낡았다뿐입니다. 가난한 이웃들한테서 사랑을 느끼면 사랑을 느끼는 대로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집이 좀 낡았으면 낡은 대로 살 만하며 재미나고 구수한 보금자리입니다.

 

'콘트라스트를 강렬하게' 한다든지 '흑백으로 찍는다'든지 '밤에 작은 등불에 기댄 모습을 담는다'든지 '입자를 거칠게 한다'든지 해야 골목동네 모습이 아니요, 가난한 골목동네 삶자락이 아닙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동화책이 나왔을 적에 '가난한 동네 사람들 삶이라 해서 늘 꾀죄죄하거나 못날 까닭이 없는데, 그예 이렇게 못박아 버린다는 느낌' 때문에 적잖이 못마땅했지만, 책장을 넘길 때에는 두근두근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바라볼 때에 가난이라는 굴레가 아닌 삶이라는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건 다른 이야기책이건 사뭇 다른 틀로 거듭날 텐데, 이렇게 되기는 참 힘든 듯합니다.

 

그래도 내 동무가 살아가고 내 동무와 즐겁게 돌아다니며 노는 동네 이야기가 어린이책 무대로 나타난 대목은 반가웠습니다. 만석동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내 동무와 동무네 누나와 동무네 어머님과 동무네 아버님 삶을 어디에서 엿볼 수 있을까 하면서 조마조마했습니다. 동화책을 다 읽고 나서 갑갑하며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지만, 만석동 동무한테 책을 한 질(1·2권) 사다 주었습니다. 동무네 식구들이 돌려가며 읽었다지만, 읽었다뿐, 책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아니, 책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글감(소재)'은 그리 크게 돌아볼 대목이 아닙니다. '글감'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크게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진감' 또한 그다지 크게 돌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찍든 매한가지입니다. 인천 만석동을 찍든 서울 상계동을 찍든 똑같습니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찍든 부잣집 아이들을 찍든 다를 바 없습니다.

 

아픈 사람은 '가난하다는 동네' 만석동에서도 아프지만 '새로 지은 큰 아파트들 가득하다는 동네' 연수동에서도 아픕니다. 슬픈 아이들은 만석동하고 이웃한 북성동이나 화수동에서도 슬프지만, 연수동하고 맞닿은 선학동이나 관교동에서도 슬프겠지요. 아픔을 다루거나 슬픔을 다룬다고 해서 더 빛날 문학이 아닙니다. 가난을 담는다 해서 다큐사진이 되거나 '사진이 되지' 않아요.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이 가난한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담은 사진을 내놓았지만, 막상 당신 사진을 읽을 때에 '아, 가난한 사람이구나!'라든지 '아, 아픈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아, 사람이구나!'라고만 느낍니다.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 사람들마다 다 달리 꾸리는 삶과 이야기를 느낍니다.

 

사진책 <어떤 동네>는 나라안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이름이 높다는 인천 동구 만석동 한켠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보여준다는 대목에서는 놀랍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놀랍다고 여길 만한 대목 하나로 내보이는 사진책이라면 쓸쓸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믿음을 나누는 사진책으로 거듭난다면 더 반가울 텐데요. 사랑을 얻고 믿음을 보낼 사진책으로 태어난다면 참말 기쁠 텐데요.

 

사진을 찍은 분은 인천 만석동에서 좋은 넋과 마음으로 좋은 공부방을 아기자기하게 꾸리는 줄 압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담는 사진 또한 '좋은 넋과 마음으로 담는 좋은 사진'이기만 하면 됩니다. 굳이 '가난한 동네를 더 가난하게' 보이도록 한다든지, '가난한 동네니까 더 눈여겨보거나 사랑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사진을 찍을 일이 아닙니다.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내 집이 있건 삯집에서 얹혀 지내건 따스한 동무입니다.

 

가난하다는 동네 골목 한켠 시멘트 틈을 뚫고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흙 한 줌 없는 시멘트 골목바닥인데, 골목이웃이 꽃그릇 조촐히 마련해서 꽃밭과 텃밭을 일굽니다.

 

구멍가게 작은 평상에서든, 볕바른 골목 한켠 돗자리에서든, 할매와 할배가 모여 이야기꽃을 나누는 모습이란 굳이 사진으로 담지 않아도 어여쁩니다. 굳이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줄 모습이란 나부터 아름답게 살아가는 하루요, 나와 내 이웃이 아름다이 웃는 얼굴이요, 나 스스로 디딘(동네 살림꾼으로든 지나치는 구경꾼으로든) 이 마을 이 터전에서 아름다이 피어나는 풀과 꽃과 나무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


어떤 동네

유동훈 글.사진, 낮은산(2010)


태그:#책읽기, #삶읽기, #사진책, #기차길옆공부방, #만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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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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