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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오후 5시. 저녁 식사 삼십 분 전이다. 주방 안에는 일년차 일학년 담임선생님과 한 달 된 복지교사 선생님 두 분이서 아이들이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오늘도 공부방에 일찍 온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은 가운데 열린 교실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데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던 1학년 담임선생님이 사색이 다된 채 뛰쳐나오셨다. 여름이 지난지 한참이지만 선생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부추전 완전 대박이에요."

아뿔싸!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섬광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지나갔다.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던지다 시피하며 주방으로 달려 가보니 젊은 복지교사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가스렌지 앞에서 서 있었다. 선생님은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가스렌지 위에는 프라이팬이 두 개나 놓여 있었고 두 개의 프라이팬 안에는 전인지 범벅인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부추전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럴수가! 탄식이 절로 나왔다. 급식으로 인한 사건 사고는 참 많았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남아 있던 반죽을 보니 너무 묽었다. 밀가루 양도 너무 적었고 계란도 넣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 반죽에 계란 넣으셨어요?"
"그거 넣어야 해요?"
"급식 선생님은 금방 하시길래 이것도 쉬울 줄 알았는데..... 아! 근데 너무 힘드네요."

급식 선생님이 없이 아이들 급식을 한게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어간다. 일학년 담임 선생님은 범벅이 된 부추전을 보시며 긴 한숨을 내쉬셨다. 사실 조금 불안하긴 했다. 그렇지만 결혼 날짜를 코앞에 받아둔 선생님은 '신부수업' 이라며 열심히 저녁 식사 준비를 하셨고 나도 설거지나 계란 프라이처럼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했다. 그래서 오늘도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주방이 좁아서 두 사람 이상은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기에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라고 해놓고 아이들과 같이 독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저희 배고픈데...아직 밥 안됐어요?"
"응~~ 오늘은 한 십분만 늦게 먹자."

저녁 식사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주방을 기웃거렸다.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다행이 국과 다른 반찬은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배식부터 하고 전은 따로 주도록 하죠?"

공부방 생활 오년차다. 오년이면 꽤나 고참에 속한다. 그런 나도 지금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다. 하물며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선생님들은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유나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일단은 팔을 걷어부쳤다. 자취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전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묽은 반죽에 밀가루 더 넣고 아낌없이 기름 뿌려가며 남은 반죽으로 겨우 부추전을 완성했다.

"헤헤헤...김인철 선생님 부친 전이 더 맛있어요?"
"저 전 부치다가 완전 울 뻔 했어요."
"앞으로 전 부치는 것은 선생님이 전담하세요."

그렇게 다급한 상황을 넘기고 여유를 찾은 선생님들이 농담 삼아 몇 마디씩 건넨다. 그 부추전 사건 뒤로 각종 전 담당은 아예 내가 되어버렸다. 그날 그 사건을 목격한 아이들은 종종 선생님들을 놀려 먹기도 했다. 그리고 또 열흘이 흘렀다. 하지만 주방엔 여전히 급식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급식 선생님이 안 오셨던 것은 아니다. 일주일정도 하시면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생겼고 결국 합의하에 그만두셨다. 보통은 일주일정도 지나면 구청에서 새로운 급식 선생님을 보내주시는데 연말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오시지 않고 있다. 구청 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보지만 공공근로 기간이 며칠 남지도 않았고 예산도 없으니 힘들어도 버텨 보라는 말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반찬과 국은 다 됐는데 밥은 생쌀이네

급식으로 인해서 당황스러웠던 적은 한두 건이 아니다. 이따금씩 급식 선생님들이 오시면 자주 하시는 실수가 전기밥솥에 전원을 넣지 않는 경우다.

삼십명이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식판을 들고서 한 줄로 서있다. 반찬과 국은 다 됐는데 밥통을 열었더니 이런, 하나님 아버지 맙소사! 밥은 아직 생쌀이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 집에 가서 먹겠다는 아이...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좌아악 흘러내린다.

"나 육십평생 곱게 살았어요. 밥 같은건 한 번도 안해 봤어요. 그런데 내가 저 많은 아이들 밥을 어떻게 해요. 작년에 우리 남편 사업 망해서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돌아가신 다음....이렇게 서러운 꼴은 안 당했는데....."

그 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공부방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이들 급식은 공공근로로 오신 분들이 해주셨다. 지금이야 이런 다급한 상황이 생기면 여유롭게 대처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울고 싶은 상황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 영안실에 들어갔다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전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 지금 살고 있는 딸도 딸이라니까 사는 건지 누군지 몰라요. 그래서 음식도 잘 못해요."

그분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며 못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사정하셨다. 할 수 없이 그분에게 급식을 맡겼다. 그런데 결국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보통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야외 수업을 나간다. 그 분은 음식 준비가 서툰 탓에 밥과 국은 선생님들이 미리 해놓고 근처 시장에서 마른 반찬과 양념된 돼지 불고기를 사다가 조리만 해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도록 부탁했다.

공부방으로 돌아 갈 시간이 되었지만 아이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에게 먼저 아이들을 인솔하도록 하고 오 분 정도 늦게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시장에서 사온 '양념 돼지 불고기'가 처음 사다준 검은 봉지 그대로 식탁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이거 조리 안하고 그냥 주신 거예요? 양념만 한건데..."
"난 그냥, 이거 오징어젓인줄 알고..."
"네?"
"오징어젓인줄 알았어요... 미안... 미안해요."

나는 정신이 혼미한 채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이 아이들은 졸지에 오징어젓(?)이 되어버린 양념돼지불고기를 먹기 직전이었다. 오징어젓(?)을 다시 회수해서 익힌 다음 나눠주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지역아동센터 '취사인력'과 '환경개선 사업' 예산 전액 삭감

매 분기마다 공공근로가 바뀌는 시기가 되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저절로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찾게 된다. 제발 이번만은, 부디 이번에도 음식을 잘 하시는 분이 급식 선생님으로 오실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매번 기대는 어긋난다. 음식도 잘 하시고 아이들도 손자 손녀들처럼 잘 해주시던 선생님은 2차 혹은 3차였다는 이유로 공공근로에서 탈락 되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보내는 우리도 떠나시는 선생님도 아쉬워 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근로의 혜택을 주려는 시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공근로로 오신 분들의 사정도 절박하긴 마찬가지다. 음식은 못하지만 생계 수단이 이것밖에 없으니 공공근로는 꼭 해야 한다는 분을 매몰차게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본인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도 강제로 내 보낼 수도 없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들 급식을 맡겨야 한다. 그런 분이 급식 선생님으로 오시게 되면 선생님중 한분은 수업은 포기하고 매번 급식준비를 함께 하다시피 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지역아동센터는 대부분 친환경 급식재료를 쓴다. 하지만 아무리 급식 재료가 친환경이고 좋아도 급식 선생님의 실력에 따라서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실무자(교사)가 음식을 할 줄 알면 몸은 고단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물론 닥치면 하게 된다, 교사들만 있거나 하면 아무리 비싼 친환경 식재료를 쓰더라도 아이들은 잔반을 많이 남긴다. 그 비싼 친환경 재료가 오층에 사는 건물주의 개밥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 나로선 마냥 아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장문의 급식 관련 일화를 쓰는 까닭은 일단은 화가 나기 때문이다. 앞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와 시장과의 면담'에서 신임 시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복지 예산은 절대로 삭감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지역아동센터에 책정된 두 가지 예산 '취사인력'과 '환경개선 사업'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다.

....2011년도 성남시 복지예산 삭감 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오전 성남시의회 앞에서 사회복지 예산 삭감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성남시 사회복지 예산 삭감 관련 기자회견 ....2011년도 성남시 복지예산 삭감 공동대책위원회’가 14일 오전 성남시의회 앞에서 사회복지 예산 삭감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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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아동센터 예산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복지 단체 10개 기관의 예산도 대거 삭감당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취사인력 지원 전액 삭감' 소식을 들었을 때는 두 달이 넘도록 오지 않는 급식 선생님을 대신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비빔밥에 들어갈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현장 방문후 추경 예산 편성 하겠다는 문화 복지 위원회

'지역아동센터 환경 개선 사업' 삭감도 심히 유감이다. 문화 복지 위원회의 삭감 이유는 이렇다. 현장 방문 후 추경예산 편성.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삭감 이유란 말인가? 전기를 많이 쓰는 겨울이면 하루에 한 번씩 차단기가 내려가는, 그것도 수업시간에, 당황스러움을 견뎌야 하는 나로선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이유다. 사회복지 예산 심의를 담당하는 시의원이라면 그러한 사회복지 시설의 문제점을 응당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고 몰랐다면 최소한 예산 심의를 하기 전 지역구에 있는 공부방 한 두 곳만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성남시 문화 예술 위원회의 2011년 예산 심의에서 사회 복지 관련 예산을 삭감한 내용이다.
▲ 성남시 문화예술 위원회의 사회복지 예산 삭감 내용 성남시 문화 예술 위원회의 2011년 예산 심의에서 사회 복지 관련 예산을 삭감한 내용이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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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는 사회복지 영역의 가장 막내에 속한다. 그런 만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실상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다. 당연히 시설 환경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신임 시장은 지난번 '지역 아동센터 종사자와 시장과의 면담'에서 내년에 당장 실현 가능한 것들을 듣고 싶어 했고 그 중에서 '취사인력 지원'과 '환경 개선 사업 지원' 가장 우선적으로 약속했던 사항이다. 그리고 시장은 약속대로 예산에 올렸지만 성남시 문화 복지 위원회에서 전액 삭감이라는 철퇴를 때렸다.

지역아동센터종사자들은 올해도 전쟁 아닌 전쟁을 치뤘다. 작년과 올해 보건 복지부가 강행하는 평가, 그리고 그 결과는 또 어땠나? 성남시에 있는 모든 시설들이 1차 평가 기준에서 합격을 하긴 했지만 평가 위원들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서 점수 편차는 상당히 컸다. 당연히 점수를 낮게 받은 실무자들은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직 2차 3차 평가결과는 나오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가장 필요했던 부분에서 예산 삭감이라는 철퇴를 맞은 실무자들의 한숨은 날로 늘어갈수 밖에 없다.

예산 심의에 임하는 문화 복지 위원들이 사회복지를 대하는 의식이 이정도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사회복지 예산 삭감이 성남시 문화 복지 위원회의 무성의나 무지가 아니라 정치역학 관계에 따른 결과물이라는데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사회복지 영역에 대한 무지로 인한 삭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 할 수 있다. 이번 예산 삭감이 현시장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일부 시의원들의 파워게임에 따른 결과라면, 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면, 그 싸움의 희생양은 결코 사회복지 영역의 종사자들과 그들이 돌보고 있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11년도 성남시 종합 예산 심의에서 취사인건비 지원 삭감은 철회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부당하게 삭감된 다른 예산도 한가닥 희망을 걸어 보지만 끝내 삭감 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된다면 시장이 말한 '시민이 주인인 성남시'나 시의원들이 한 표를 얻기 위해 외치고 다녔던 '주민을 위한 정치' 또다시 공염불일 수 밖에 없다. 부당하게 삭감된 예산은 반드시 철회, 아니 철퇴를 맞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성남 투데이'에도 실렸으며 기사 내용은 일부 수정했습니다.



태그:#사회복지, #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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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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