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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맞이한 두 번째 아침이다. 눈을 뜨니 오로지 달빛만이 밝혀주던 세상은 지나가고 어느새 촉촉한 새벽 이슬과 쌀쌀함을 간직한 아침이 반겨준다. 텐트를 나온다.

 

첫 경험은 어렵지만 두 번째 경험은 쉽다는 말이 맞아 떨어지는 아침이다. 일행 모두 밥을 먹고 정리하기까지의 어수룩했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각자가 맡은 몫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시간 단축을 물론 모두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만이 가득하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오른 후 석포전망대까지 도착해 버스를 타고 되돌아오는 것이 오늘의 코스이다. 3박 4일 울릉도 캠핑여행 중 가장 많이 걷고 힘들 것이라는 사전예고가 있어서 그런지 속으론 내심 걱정을 한다.'이 가방을 들고 해발 986m의 성인봉을 탈 수 있을까? 성인봉은산길이 험하기로 유명한데, 어쩌지?'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며 표정이 굳어 갈 때쯤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과 인연이 있는 작가님이 큰 배낭을 맡기고, 카메라와 물, 그리고 비상식량만을 챙겨가자고 말한다. 마음이란 참 이상하다. 몸이 가벼우니 백두산도 단걸음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들떠버렸다.

 

이렇게 성인봉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시작된다.

 

 

울릉도의 가을이 만연한 성인봉을 걸으니 '눈을 어디 두어야 하지?'란 생각이 머릿속을 빽빽이 차지한다. 오른쪽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고, 왼쪽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기분을 간직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울릉도 풍경을 마음속에 가득 담는다.

 

반짝이는 은빛물결로 가득 찬 알봉분지로 들어서자 갈대들과 어우러진 투막집이 보인다. 울릉도 개척당시의 전통가옥이라는 이 투막집은 1940년도에 건립된 고영환씨의 집이다. 문화재 지정 후 1987년 울릉군에서 매입하여 투막집의 전통구조와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아파트와 현대식 주택들이 즐비한 현실에 어느새 적응해 버린 걸까? 부실해 보이는 집에 그저 '옛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걱정만이 가득하다.

 

신령수에서 빈 물통을 채운다. 울릉도에서 오랜 세월을 산 택시기사가 말했다. 울릉도를 방문하는 많은 여행객들이 울릉도에는 물이 적고 바닷물의 영향을 받아 짜다고 생각해, 무거운 가방 속에 물을 가득 가지고 오지만, 울릉도를 나설 때까지 결국 그 물은 먹지 않고, 숙박하는 곳에 생수는 그대로 두고 온다고….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울릉도 여행을 하다가 저절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물이 많은 고장도 없었던 것이다. 깨끗한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로 중간 중간에는 물이 떨어질 만하면 약수터가 있었고 그 약수가 울릉도 여행에 더 즐겁게 한다.

 

신령수를 지나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나온다. 어느새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쌀쌀할 날씨는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더구나 끝이 안 보이는 계단길까지 보이자 막막함은 절정에 다다른다. 하지만 긍정의 힘일까? '가방이 없어서 짐은 줄였잖아' 하는 생각과 함께 길고 긴 계단을 오른다.

 

"안녕하세요?"

 

내려오는 등반객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올라오시는 거예요? 계단 엄청 많은데, 힘드실 거에요. 내려오는데도 힘들었거든요."

 

인사 후 들려오는 말에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쩌겠냐? 가야 할 길은 하나뿐인데…. 발걸음은 느려지고 쉬는 시간이 많아질 때쯤 알봉분지와 나리분지, 그리고 성인봉 원시림 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 이게 가을이구나. 바라던 가을 풍경은 이것이었어."

 

울긋불긋 오색찬란한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울릉도의 가을은 이처럼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중복기재됩니다.


태그:#알봉분지, #나리분지, #투막집, #울릉도, #성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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