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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한 중년 사내가 체격이 왜소한 다른 남자를 평상에 눕혀놓고 사정없이 주먹질을 하고 있다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한 중년 사내가 체격이 왜소한 다른 남자를 평상에 눕혀놓고 사정없이 주먹질을 하고 있다
ⓒ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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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하순 '길 위의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역, 영등포역 등의 뒷골목을 헤집기 시작했을 때 일이다. 영등포역 부근 쪽방촌 어귀에서 한 중년 사내가 체격이 왜소한 다른 남자를 평상에 눕혀놓고 마구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다. 싸우는 게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패는' 것이었다.

"넌 죽어야 돼.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 안 돼."

사내의 폭행은 무자비했다. 맞는 쪽은 아무 저항할 의지나 기력이 없어 보였고, 그대로 놔뒀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그들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한 남자가 앞을 막아서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한쪽 눈알이 빠져있고,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섬뜩했다.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좀 전에 별 생각 없이 카메라에 담았던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길바닥 표지가 실감나게 눈에 들어왔다.
   
영등포역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면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길바닥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영등포역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면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길바닥 표지판을 볼 수 있다.
ⓒ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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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빈곤층을 밀착 취재하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렸다.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도 "위험해서 우리도 노숙인들 취재는 피한다"며 몸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해병대에서 키운 '악'과 '깡'으로 들이대면 못할 일이 뭐냐고 다짐했지만, 들은 얘기가 많다보니 막상 그들을 만날 때 두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라 막 살 것이라 생각했고, 기분 나쁘면 나를 해코지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심 겁을 먹었다. 눈동자가 이상한 사내를 봤을 때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은  그런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증폭됐기 때문이었으리라.

'편견' 깨니 노력조차 힘든 사람들이 보여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그런 편견에 사로잡혔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쪽방과 만화텔, 다방 등에서 많은 이들과 밤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위험했던 순간은 거의 없었다. 간간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 외모가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놀랐던 경우는 있었지만 그들이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외려 자기네들을 괴롭히는 행인들이 두렵다고 했다.

"술에 취해서 괜히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와요. 왜 너희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이렇게 사냐고 막 욕을 하죠."

그래서 싸움으로 번지면 경찰은 그 행인 편을 들어준다고 했다. 때때로 카메라를 들이미는 언론도 자신들을 동정할 뿐 자신들 편에서 뭔가 해주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낡고 어두운 쪽방, 발을 뻗기도 어려운 만화방,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다방, 행인들의 눈총이 쏟아지는 지하도를 전전하는 그들이지만 한때는 무역회사 상무, 안경점 음식점 노래방의 사장을 하던 사람들도 있다. 갑작스런 사고와 부도, 난치병 등 불운이 겹치면 누구든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인생이 보여주었다. 의료와 주거 금융 등 여러 면에서 '안전망(safety net)'이 약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에서 나 역시 어느 순간 시커먼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신세가 되지 말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어린애라면 모르지만 어른이 가난한 건 자업자득이지',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게으른 사람들이겠지'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늙고 병들거나 장애가 있어 '노력'조차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가 보듬지 않는다면 이들은 갈 데가 없다.

취재를 다녔던 초여름, 그리고 늦가을의 총 한 달여 동안 최대한 그들과 비슷하게 생활하려고 애썼다.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작가 에릭 아서 블레어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썼던 것처럼 '서울의 밑바닥 생활'을 체험적으로 기록해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담배연기와 발 냄새, 지린내, 벌레가 들끓는 잠자리는 참을 만했다. 만화방에서 세수를 하는 중년 남자에게 "혹시 노숙을 하시느냐"고 말을 걸었다가 "이 사람이 미쳤나"하고 격노하는 바람에 난감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한밤중에 간판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다방을 찾으러 영등포역 부근을 헤매다 '언니'들에게 잡혀갈 뻔했던 일도 있다. "아이고, 저 오빠 힘 좋아 보인다"며 서너 명이 달려들어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뿌리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반 노숙인'이 되어 거리를 헤매다 보니, 돌아갈 내 집, 따듯한 내 방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새삼 절감했다. "세상에서 내 방보다 좁을 곳은 없을 걸"하고 투덜댄 적도 있는데 다방의 나무 널빤지위에서 잠을 청할 때 내 방이 너무 그리웠다. 열 두 가구가 세면대 하나, 변기 하나를 나눠 써야 하는 쪽방에 비하니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는 내 집은 궁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의지하며 찬바람 피하도록 도와줘야

지난 11월 5일 서울역 부근의 쪽방촌, 동자동을 다시 찾았다.

"아이고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동자동 주민모임인 한울타리회의 이태헌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자들은 뭐 하나 벗겨 먹을 거 없으면 안 찾아오는데, 또 뭔 일로 왔어?"

김정호(53) 아저씨의 빈정거리는 말투는 최고의 친근감을 표현하는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동네어귀 구멍가게 앞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왠지 밝아보여 좋은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사랑방공제조합' 얘기를 꺼낸다.

쪽방 주민들이 5천원에서 5만원까지 십시일반 모아서 일종의 마이크로 크레딧, 즉 소액서민금융인 '사랑방공제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는데 예상보다 참여 열기가 높다고 한다. 은행 문턱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던 이들이 스스로 '마을은행'을 만들어 급전이 필요할 때 빌려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연이자는 2%정도라 사채, 일수를 쓰는 것에 비하면 공짜나 마찬가지다. 이태헌 대표는 내년 3월에 융자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돈이 필요해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앞으론 그렇지 않을 거야."

이들은 현재 540만원 정도를 모았는데, 출자금을 2000만원까지 늘리기 위해 오는 18일 일일주점을 연다고 나를 초대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도와가며 살 길을 찾고 있었다. 그들에게 재개발의 불도저를 들이밀며 셋방을 비우라고 하는 대신, 그들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라도 마련해주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는 없는 것일까?

찬바람이 거세진다. 화재 위험에 속수무책인 쪽방촌, 더 많은 이들이 모여 들게 될  만화방과 지하다방, 누더기 이불을 쓴 채 웅크려야 할 지하도의 노숙인들에게 이 겨울은 또 얼마나 잔인할까? 따뜻한 방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나는 계속 심장 한쪽이 아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영등포 쪽방촌, #김화영 취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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