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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오르는 단풍,
하늘빛이 눈부시다
▲ 불타오르는 불타오르는 단풍, 하늘빛이 눈부시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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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더니 날씨가 좋기만 하다. 좋은 기분을 안고 미천골로 진입하자마자 "세상에!" 나도 모르게 불쑥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마침 절정인 미천골 단풍든 숲이 와락 안겨온다. 하늘빛은 그날따라 건드리면 푸른 물을 뚝뚝, 흘리듯 청명했다. 파란 하늘빛 아래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울린 풍경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 외에 다른 어떤 표현을 쓸 수가 없으니 참 난감할 정도다.

미천골을 처음 와 본다는 큰 형부의 말마따나 '그림 같다'는 말이 이외는.

그건 2001년 처음 미천골을 찾았을 때 당시 6살이던 우리 아이가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앞만 보고 내달리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었다. 그리고 한동안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숲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더니 한마디를 뱉었다.

"엄마, 산이 그림 같아요!"

저 아름다운 단풍 숲 좀 보라면서, 애써 손가락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며, 샛노란 생강나무를 가리킬 때도 뭐가 좋은지 산길을 내달리는 데만 정신을 팔던 아이였다.

산이 그림 같다던, 9년 전의 느낌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듯한 미천골의 단풍은 '대한민국 최고의 가을 풍광'을 보여 주겠다며, 언니네 부부를 초대한 우리 부부의 결정이 나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처음 가족끼리 여행을 계획한 건 지난 추석 때였다. 세 자매의 남편, 즉 세 동서가 추석날 작은아버님댁에 모여 작당(?)을 했던 모양이었다.

작은어머님이 손수 가꾸신 고추밭에서 우리 세 자매는 고춧잎을 따고 있었고, 세 동서는 밭가 밤나무 아래서 밤을 줍고 있었던 차였다. <삼국지>의 '도원결의'에 버금가는 '밤나무결의'가 즉석에서 이루어졌고, 그 첫 번째 장소로 낙점된 곳이 미천골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3일 속초에서 세 자매의 식구들이 한데 모였다.

라면 끓여 먹는 동안 즉석에서 결성된 '약수원정대'

올해의 단풍도 곱다
▲ 멍에정앞 단풍 올해의 단풍도 곱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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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의 트레킹의 정점인, 불바라기 약수터가 목적지로 정해졌다. 그러나 미천골 골짜기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길기도 하거니와 차량 진입이 통제되는 멍에정에서 시작을 한다고 해도 4.8km 거리로 왕복 5시간이 소요된다.

세 부부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열 명의 인원이 저마다 각각의 체력과 의지(걷고자 하는 의지와 단풍의 아름다움을 오래 감상하고자 하는 의지까지)가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트레킹에 앞서 야영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가족과 함께 산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이 꿀맛!
▲ 야영장에서 트레킹에 앞서 야영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가족과 함께 산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이 꿀맛!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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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야영장에서 잠시 쉼을 갖고 라면을 끓여 먹는 동안 즉석에서 '약수원정대'를 결성했다.

세 명의 건장한 남성들은 당연히 포함이고, 약수터까지 이미 가본 경험을 내세워 자발적으로 동참한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약수원정대가 앞장을 서기로 했다.

그리고 대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중학생으로 이루어진 아이들이 2중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력적으로 약간의 문제점(?)이 있는 두 언니가 뒤따르기로 순서를 정했다.

처음엔 나란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 없이 뒤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러나 또 당연하게도 애초에 정한 순서로 정확히 나누어지던 지점은 트레킹의 3분의 1 지점에서였다. 물론 순번에 결코 연연해 할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재밌는 현상이긴 했다.

단풍든 미천골의 숲은 내내 아름다웠다. '저게 바로 파란 하늘의 원형'이다 싶을 만큼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이 미천골의 단풍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배경이 되어 주었다.

강원도 양양의 미천골, 언뜻 '미천골' 하면 아름다운 내가 흐르는 골짜기로 들리나, 여기서 미(米)는 쌀을 뜻하니 '쌀뜨물이 흘러드는 내가 미천골'의 본뜻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옛 절(선림원지)이 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던지 그곳에서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흘려보낸 물이 계곡 가득 쌀뜨물로 변했단다. 미천골의 유래가 그렇다.

미천골 단풍을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큰 언니부부가 나란히 걸어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저처럼 다정하게 살아가시길..........
▲ 부부 큰 언니부부가 나란히 걸어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저처럼 다정하게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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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트레킹은 시간이 좀 걸린다는 조건 외에는 걷기에 수월한 길이다. 가파를 것도 없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나지막이 펼쳐지는 숲길을 걷는 일이 어려울 것도 없다. 단풍이 절정인 이런 가을날엔 말 그대로 만산홍엽인 채로 그 길을 걷는 당신의 눈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황홀경을 보여주는 그런 길이라 단언한다.

2001년 가을 미천골을 처음 만난 그해, 단풍이 유난히 고왔었다. 그 단풍 숲을 잊지 못해 그 후 가을이면  미천골을 찾아갔지만 그때의 그 단풍빛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점점 늘어가는 사람들, 미천골 주변으로 우후죽순 늘어나는 건물들 때문인가 싶어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었다. 올 가을 미천골행을 앞두고 걱정이 없지 않았다.

기후 변화가 변화무쌍하기로 올해 같았던 적이 있었던가. 비도 더위도 유난하게 여름을 앓았으니 미천골의 단풍도 지쳐버리지나 않았는지.

기우였던가, 올해의 단풍도 첫해 보았던 단풍 못지않게 곱기만 하다.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새로운 단풍 빛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언니 부부도 감탄을 한다.

단풍나무 붉나무의 붉은 색감은 노란 생강나무와 어울려 더욱 또렷한 색감을 자랑한다. 고개가 아프도록 들여다봐도 그냥 두고 가기 아까울 정도다. 저걸 카메라에 담는 걸로는 모자라 어딘가에 그대로 담아가고 싶다. 열려진 눈으로 담고 마음에 가두는 방법, 그게 가장 좋을 거 같은 미천골 단풍숲!!

언니는 뒤쳐져 보이지 않고 가장 마른 형부가
가장 앞서간다.
▲ 둘째형부 언니는 뒤쳐져 보이지 않고 가장 마른 형부가 가장 앞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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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은 바른쪽으로 조봉이 반대쪽으로 응봉산이 솟은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말한다. 그러나 계곡은 보이지 않은 게 미천골 계곡의 특징이다. 물소리가 줄곧 따라오는 것으로 계곡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산길을 걷다 계곡물 소리의 위치를 보고 싶어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아래쪽에서 계곡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그리고 계곡과 내가 걷는 길 사이 , 그 아득한 벼랑에는 몇십 년은 족히 되었을 전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 풍경을 만난다.

전나무에 관한 한 특이한 후각이 발달한 큰 형부는 벼랑 쪽 전나무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 향방을 정확히 짚어내서 우리를 놀래줬다. 전나무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나도 닮고 싶은 괜찮은 후각이다.

바싹 마른 가을 나무 같은 둘째 형부는 보기와는 다르게 가장 씩씩하게 앞서 가시고 건조한 인상을 한 큰 형부는 전나무 향기까지 맡은 범상한 후각을 지닌 특이한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이 새롭다.

함께 여행하는 일은 곧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이구나, 싶어졌다.

약수원정대 미션 완수! '불바라기' 보물을 찾다
이런 길이면 하루종일 걸어도 좋으리
▲ 길 이런 길이면 하루종일 걸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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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약수원정대와 2중대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지점은 약수를 2킬로여 남겨두고서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며 2킬로 지점에서 아이들과 언니들은 유턴을 한다. 아무렴은 어떤가,  그곳까지 걸어오면서 미천골에서 취할 아름다움의 대강은 감상했을 것이다. 남은 사람은 두 형부와 우리 부부 네 사람이다.

약수터에 가까울수록 길은 조금씩 좁아들고...........
이제 저 아름다운 단풍도 거의 다 졌겠다.
▲ 늦가을 약수터에 가까울수록 길은 조금씩 좁아들고........... 이제 저 아름다운 단풍도 거의 다 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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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약수터까지는 늦가을의 정경이 완연하다. 앞에 펼쳐진 산자락은 벌써 잎 떨어뜨린 나무들로 앙상하다. 숲길 주변부의 나무들도 마지막 한 잎까지 물들어 나뭇잎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단풍잎에 햇살이 번져 든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약수터에 가까워지면서 길의 곡선은 더욱 나긋해지면서 좁혀든다. 길섶의 풀잎까지 누렇게 가을빛이 든 사이로 키 작은 구절초들이 피어서 한들거린다. 고지대에서 피는 구절초는 유난히 키가 작고 꽃빛은 새하얗다. 싸리나무며 키 작은 자작나무가 마지막 햇살에 노란단풍잎을 흔드는 모퉁이를 지나며 응봉산으로 가는 임도를 벗어나 계곡길로 들어선다.

보여줄 듯 말 듯...........
불바라기 약수터가 숨어있는 폭포
▲ 어디어디 숨었나 보여줄 듯 말 듯........... 불바라기 약수터가 숨어있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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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물소리로만 존재를 알리던 계곡이 드디어 그 모습을 보인다. 상류쪽이라 계곡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가을이어서 물이 많이 줄어있는 계곡을 지그재그로 건넌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마침내 계곡의 끄트머리에서 폭포 두 줄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황룡, 청룡 폭포다. 그 폭포 가운데 약수, 불바라기가 숨어 있다. 이쯤이면 보물찾기라는 말이 맞다.

이 신비로운 자연현상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두 분의 형부도 감탄의 말들이 길어진다.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투다. 철분을 많이 함유한 이곳 약수는 붉고 톡, 쏘는 맛이 있다.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예전에 이곳에 철이 많이 나와서 대장간이 흔했다고 한다. 그 흔적을 지금 불바라기 약수가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약수원정대를 자청했으나 나는 불바라기 약수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알 수가 없다. 그 특유의 맛을 음미해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부지런히 길을 되짚어 내려와 야영장에서 약수로 차를 끓여 마셨다. 특이한 맛이 느껴진다.

햇살도,
하늘빛도,
단풍빛도 아름다운 날이었지.
▲ 빛 햇살도, 하늘빛도, 단풍빛도 아름다운 날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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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보자고 아껴두었던 선림원터를 돌아본다. 늦은 가을 햇살로 봐야 이 황량한 옛 절터에 조금은 온기가 느껴지는 까닭이다. 보물로 지정된 탑이며, 석등과 부조가 넓은 절터를 지키고 있다. 그 많던 들국화들은 어디고 갔는지 국화 한 송이 없이 누런 풀잎만 가득한 선림원지에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다.

건너다본 앞산에도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밤나무 아래서 결의한 그 첫 번째 여행의 대미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한때 웅장한 가람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황량하게 터만 남은 선림원지, 그 여백을 메우는 가을이야기는 각자의 몫으로 안고 집으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24일 일요일에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절정이던 단풍도 많이 졌겠습니다.



태그:#미천골, #단풍, #불바라기, #선림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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