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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현대본관 입구. 신성희의 누아주전 광경. 파리 근교 작업실에서 작가사진(아래)
 갤러리현대본관 입구. 신성희의 누아주전 광경. 파리 근교 작업실에서 작가사진(아래)
ⓒ 심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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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7일에 타계한 재불작가 신성희(1948~2009)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 본관에서 열린다. 그는 이미 갤러리현대에서 네 차례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화려한 맥시멀리즘의 컬러화 위주의 제1부는 10월 7일까지, 간소한 미니멀리즘의 단색화 위주의 제2부는 10월 31일까지 총 51일간 전시된다.

그는 1948년 안산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본 아름다운 자연에서 심취하여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서울예고를 다녔고 홍익대 회화과를 마쳤다. 1980년 유럽미술계를 보려고 프랑스에 갔다가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서 자리 잡는다. 그는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알려져 있다. 

원근법에 맞먹는 '누아주(페인팅)' 창안

 '평면의 진동(Tremblement de la surface)' 아크릴물감 291×192cm 2008
 '평면의 진동(Tremblement de la surface)' 아크릴물감 291×192cm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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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화백은 1977년 음양조형주의를 기치로 추상과 구상의 통합하는 '하모니즘'을 선언하였는데 신성희 작가는 1997년에 그의 화력 40년을 정리한 평면과 공간을 통합하는 그리기가 아닌 엮기의 '누아주(nouage)' 페인팅을 선언한다.

누아주(nouage)란 무엇인가
프랑스어로 '맺기', '잇기'의 뜻을 가진 '누아주'는 신성희 작품에서 1차적으로 '엮기' 또는 '묶기'의 제작방법을 지칭하다. 작가는 캔버스에 색점, 색선, 얼룩을 그려 우선 채색캔버스를 만들고 그것을 가로 띠로 잘라 그림틀에 엮어 그물망을 만든 후 그 위에 다시 채색하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누아주'를 완성한다. 색 띠의 선묘가 면을 만들고 그 면이 부조적 질감을 획득하면서 선, 면, 입체가 공조하는 회화이자 조각으로 존립한다. 이것이 바로 누아주의 미학적 의미이고 회화적 혁신이다. <갤러리현대 자료>
신성희의 '누아주'는 기존회화를 반격하고 해체시키는 것을 통해 독창적인 회화를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화단은 그에게 크게 주목한다. 그는 파리의 10대 화랑 중 하나인 보두앵 르봉(B. Lebon)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년 10월 그가 타계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문화행사가 겹친 시기라 그의 '오마주전'을 아트페어에서 열었다. 파리의 한 한인신문도 "덧칠을 바탕으로 이를 찢고 접고 쌓고 다시 묶는 회화는 서양미술의 원근법의 발견만큼 중요한 공간예술의 혁명이다"라는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위베르 다미슈(H. Damisch)의 말을 인용하며 그를 재평가했다.

2차원 평면을 3차원 공간으로 넓히기
 
 '공간별곡(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162×97cm 2009
 '공간별곡(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162×97cm 200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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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을 직접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으나 여기선 화면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런 회화와 조각의 통합을 시도한 것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홍희씨는 '회화를 넘어서는 회화' 혹은 '회화 같은 조각, 조각 같은 회화'라 평했다. 다른 말해 '3차원회화'라는 뜻이 아닌가.

신성희 작가는 2001년 갤러리현대 '전시도록'에서 이런 작업노트를 남겼다.

"씨줄과 날줄처럼 그림의 조각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곳마다 매듭의 세포들을 생산해 낸다. [...] 나와 너,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종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색의 점, 선, 면, 입체가 공간의 부피 안에서 종합된 사고로 증명하는 작업, 평면은 평면답고, 입체는 입체답고, 공간은 공간답게 하려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신성희의 이런 찢고 엮는 페인팅은 또한 루치오 폰타나의 칼로 찢는(cut-off) 페인팅을 연상 시킨다. 일본 모리미술관 관장 후미오 난조는 이 두 작가의 차이를 "폰타나가 격정적이고 즉흥적이라면, 신성희는 반복적이고 계획적이다"라고 말했다. 하여간 이들은 회화에 조각을 결합하여 새로운 공간을 낳았다.

화엄경의 '인드라망'과 신성희의 그물망

 '공간별곡(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162×130cm 1997
 '공간별곡(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162×130cm 199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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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공간별곡'을 보면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을 연상시킨다. 이는 인도의 신(神)인 인드라가 그의 신궁에 화려한 구슬로 수놓은 그물망을 말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인연'을 암시한다. 서양이 일반적으로 '인식'을 중시한다면 동양은 '관계'를 중시하는데 이 작가는 이런 동양적 관점을 작품에 관철 시킨 것 같다.

하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트위터, 페이스 북, 유튜브의 네트워킹이 사람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그물망, 인드라망이라 할 수 있다. 하여간 색 매듭(띠)을 씨줄날줄로 엮고 그 위에 색채로 붓질을 하고 이중 삼중 중첩해서 그물망으로 만드는 그의 방식이 참으로 기발하다.

옛 명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업

 '평면의 진동(Tremblement de la surface)' 아크릴물감 120×120cm 2008(부분화)
 '평면의 진동(Tremblement de la surface)' 아크릴물감 120×120cm 2008(부분화)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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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질감이 풍부하고 촘촘한 엮음이 노동집약적 작업임을 알 수 있다. 나전칠기나 고전악기 등을 만드는 옛 명장들의 손길이 필요한가 하면 여성처럼 섬세하고 꼼꼼한 손길도 요구된다. 그래서 기계적 도안과는 전혀 다른 손맛이 난다. 위에서 보듯 평면의 마티에르를 진동(tremblement)시켜 조형공간을 넓힌다.

미술의 본질인 물성 탐구하는 작가

 '공간회화(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204×204cm 2000. 작품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점이 재미있다
 '공간회화(Peinture spatiale)' 아크릴물감 204×204cm 2000. 작품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점이 재미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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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희은 자신의 찢는 작업에 대해서 "작업에서 찢는다는 것은 나의 미술에 대한 질문이고 또 그걸 꿰매는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창조란 원래 파괴 없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캔버스를 하나의 오브제로 다루며 회화의 본질인 평면성을 탈피하여 그 경계를 넘어선다.

신성희는 이렇게 회화의 진정성에 항상 의문을 던진다. 그래서 미술의 본성인 물성에 대한 탐구를 계속한다. 작가는 이렇게 사물인 물성에 작가의 혼과 기를 불어 넣어 평면과 공간이 살아나게 하는 데 진력한다. 이런 과정은 마치 밀고 당기고 맺고 푸는 판소리의 고저장단을 조율하는 것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와 작품은 둘이 아니고 하나
 
 '팔레트(Palette)' 아크릴물감 162×135cm 2009. '회화로부터(De la peinture)' 200×50×60cm 2008(아래). 회화는 팔레트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팔레트(Palette)' 아크릴물감 162×135cm 2009. '회화로부터(De la peinture)' 200×50×60cm 2008(아래). 회화는 팔레트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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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로부터'도 그렇지만 유작이라 해도 좋은 '팔레트(2009)'는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인연을 맺은 많은 이에게 윙크를 보내며 미소 짓는 것인가. 물론 그의 작품 중에 '자화상'이 있지만 여기만큼 구상적이지는 않다. 코 부분에 작가가 작업에 쓰던 팔레트를 재치 있게 끼어 넣어 익살맞고 유머러스하다. 작가와 작품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보여준다.

'누아주(페인팅)' 이전 80-90년대 되돌아보기

 
 '구조공간' 혼합물감 105×228cm 1985-1989. '연속성의 마무리(Solution de continuite)' 아크릴물감 291×182cm 1995(아래). 80년대와 90년대의 화풍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구조공간' 혼합물감 105×228cm 1985-1989. '연속성의 마무리(Solution de continuite)' 아크릴물감 291×182cm 1995(아래). 80년대와 90년대의 화풍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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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그의 '누아주'가 나오기까지 지난 과정을 살펴보자. 신성희는 70년대를 흑백필름과 같은 단색화 하나로 통하던 한국화단에 지쳐 있었고, 자신의 내면에 용솟음치는 격한 감정을 색채로 맘껏 표출 시키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겨우 할 수 있는 게 마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뿐, 그는 결국 이를 더 못 참고 1980년 파리로 떠났다.

프랑스 이주 이후 그는 화려한 채색주의화가로 변신한다. 80년대에는 휘황찬란한 색채로 그린 그림을 조각내어 그걸 다시 투명 아크릴판에 붙이는 콜라주 방식을 시도한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컬러 띠를 나무틀에 빨래 널 듯 놓고 '박음질'하는 회화를 실험한다. 그런 긴 과도기를 거쳐 마침내 전혀 새로운 차원의 회화인 '누아주'를 1997년에 탄생시킨다.

불연속의 연속성 속에 3차원공간 창출

 '평면의 진동' 2008(좌). '팔레트' 115×50×60cm 2002. '공간회화' 2000(우)
 '평면의 진동' 2008(좌). '팔레트' 115×50×60cm 2002. '공간회화' 2000(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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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평면의 진동'과 '공간회화' 같은 컬러풀한 색채의 눈부신 회화조각이 등장한다. 여기서도 찢고 엮고 묶은 것이 끊어져 있는 것 같으나 여전히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술평론가 강수미씨는 이를 '불연속의 연속성'이라고 지칭한다.

대학 동창이기도 한 부인 정이녹씨는 남편이 자기가 쓰던 붓을 보고 자주 "붓, 너는 나보다 오래 살아. 그게 내 기쁨이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는 작가가 마모된 붓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젠 그런 인연도 접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통합미술가는 창작을 통해 지상에서 이미 천국을 맛 봤는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본관) www.galleryhyundai.com 02)2287-3591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122번지 (110-190) T (02)734-6111~3 F (02)734-1616
강의 I '신성희를 논하다' 갤러리현대 10월8일(금)오후4시 발제 및 토론:황인, 강수미,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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