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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래포구 가기 직전 자전거도로. 눈앞에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소래포구 가기 직전 자전거도로. 눈앞에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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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토)

어제는 지독히 피곤한 하루였다. 도로 위에서 날것으로 들이마신 이산화탄소의 양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과도했던 게 틀림없다. 오후 9시가 넘어 숙소로 찾아들었을 때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기사를 작성하다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를 졸았다. 정말 까무러칠 것처럼 졸렸다. 그래도 손은 계속 컴퓨터 자판에 올라가 있었다.

말인지 소인지 알 수 없는 글을 대충 끄적여 놓고 바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그 사이 써놓은 기사마저 날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때가 오전 2시. 오전 5시 30분경에 잠깐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기사를 완성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시계를 보고는 30분만 더 자고 일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뜬 게 오전 8시였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은데 그새 2시간 30분이 흘렀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켰다. 늦어도 9시 전에는 송고를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 시간을 내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일로 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진 편집까지 끝마치는데 1시간이 더 걸렸다. 사진을 기사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자꾸 프로그램이 다운이 돼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기사를 송고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때가 오전 10시. 늦어도 너무 늦었다.

비로소 씻고 닦고, 있는 짐 몽땅 챙겨서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핸드폰이 내 발목을 잡았다. 지난 밤 분명히 머리 옆에 두고 잤는데, 그 놈이 간다만다 소리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짐을 죄 뒤져보다 없어서 침대 밑까지 살펴봤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할 수 없이 카운터에 내려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부탁했다. 그제서야 그 놈의 핸드폰이 침대 밑에서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로 시커먼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군가 아는 체를 해줘야 그때 가서 겨우 입을 여는 그 맹한 놈이 어떻게 해서 저 혼자 그 어두운 침대 밑까지 기어들어갈 수 있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숙소를 나올 수 있었던 시간이 오전 11시였다. 한순간 맥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열일 다 제쳐두고 먼저 식당을 찾았다.

딱 '50%'만 딴나라 느낌이 나는 송도국제도시

 송도국제도시 가기 직전 아암도해안공원 앞 갯벌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송도국제도시 가기 직전 아암도해안공원 앞 갯벌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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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한없이 느리게 달렸다. 기왕 늦은 거 빨리 가봐야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냥 이렇게 가는 데까지 가봐서 해가 떨어질 무렵에 그냥 아무 데서나 편히 쉬어갈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주말이 아닌가? 아무리 여행 중이라도 주말은 주말답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제2경인고속국도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해안산책로가 놓여 있어, 서둘러 페달을 밟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 먼저 가자 쫓아오는 차도 없고, 왜 그렇게 느려 터졌냐 좀 더 빨리 가자 재촉하는 동료 여행자도 없었다. 그늘이 보이면 서고, 풍경이 그럴 듯하다 싶으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실은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하면서 한없이 느리게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한낮이라서 그런지 송도국제도시 가기 전 아암도해안공원 앞 갯벌에 망둥어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참 한가한 풍경이었다. 한편으로는, 발목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곳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송도국제도시 건설중인 한 건물 단지. 요즘 S라인이 대세라...
 송도국제도시 건설중인 한 건물 단지. 요즘 S라인이 대세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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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공원이 끝나는 데서부터 송도국제도시가 시작된다. 인천에서는 지금 송도, 영종도, 청라지구 등 3군데에서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그중 어제 내가 먼지를 잔뜩 들이마시면서 지나온 공사장 구간이 바로 청라지구다. 이들 신도시는 2020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려면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송도국제도시는 국제업무, 지식기반산업을 중심으로 IT, BT 등 첨단산업이 들어설 예정이란다. '첨단'자가 들어간 걸 보면, 도시도 왠지 그 자체 최첨단을 가고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일단 외양은 '그래 나는 너희들하곤 좀 달라'하는 티가 역력하다.

네모반듯하게 서 있는 게 시대에 뒤떨어진 건축 공법임을 강조하고 싶었던지, 대부분의 건물이 약간씩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조금 삐딱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보기에는 꽤 그럴 듯하다. '멋지다'는 느낌보다는 '거 참 신기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도시 한가운데 파란 물줄기가 흐른다. 간척지로 만든 땅에 인공호수라도 꾸민 것일까? 어디서 오는 물인가 했더니, 서해에서 끌어와 3번인가 정수 과정을 거친 바닷물이란다. 최신식 건물 사이로 흐르는 파란 물이 이색적이다. 그 위로 유람선인지 수상 택신지 알 수 없는 배 한 척이 지나간다. 배 위에서는 주변에 건축 중인 건물들을 설명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100%는 아니고 딱 50% 딴나라(유식하게 말해서 이국적인) 느낌이 나게 만드는 묘한 풍경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지는 최신식 최첨단 건물들이라고 하니까, 한 번쯤 다녀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나야 이제 다 늙어서 50%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때 묻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겐 미래를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망둥어... 내 목도 바짝 마르고

 송도국제도시. 오른쪽 높은 건물이 동북아 무역센터.
 송도국제도시. 오른쪽 높은 건물이 동북아 무역센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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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국제도시에서 소래포구까지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 길 오른쪽이 상당 구간 철망으로 가려져 있다. 길이 단조로워서 조금 지루할 수 있다. 소래포구에서 월곶포구까지 가는 길 역시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소래포구에서 내륙 쪽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해안 산책로가 나온다.

그곳에 주말이라 망둥어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난간에 바짝 달라붙어 있다. 더러는 산책로 한쪽에 텐트를 치고 장기전에 돌입한 사람들도 보인다. 낚시도 하고 즉석에서 매운탕도 끓여 먹고, '나 한잔 했어'하는 행복한 모습들이다.

망둥어란 놈들 참 불쌍하다. 강화도에서도 그랬고, 아암도해안공원에서도 그랬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마다 죄 망둥어만 낚아 올린다. 낚싯줄에 꿰여 짱짱한 햇볕에 꾸들꾸들 말라가는 망둥어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 목이 다 바짝 마른다.

 송도국제도시를 나와 소래포구가지 가는 자전거도로. 그리고 자전거바퀴 모양을 한 다리.
 송도국제도시를 나와 소래포구가지 가는 자전거도로. 그리고 자전거바퀴 모양을 한 다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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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가 월드컵경기장이라면, 월곶포구는 동네 축구장이다. 소래포구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샴쌍둥이처럼 걸어 다닌다. 내 배에 앞선 사람의 등이 붙어 있다. 게들이 발가락 꼼지락거릴 시간도 없이 팔려나간다. 새우들이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이 팔려나간다.

그러고 보니,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게들도 다닥다닥, 새우들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전어를 회쳐 먹을 자리가 없어 시멘트 바닥에 비닐 돗자리 하나 깔아놓고 먹는다. 전어 먹다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 하느라 너무 너무 바쁘다. 이 모든 게 월곶포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 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두 포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심한 격차를 보이게 된 것일까? 월드컵이니 올림픽이니 하는 대회를 치른 국민들이라서 그런지 님 향한 일편단심 하나는 모두 국가대표급이다.

 소래포구 선착장. 꽃게를 부두 위로 올리는 작업을 하는 어부.
 소래포구 선착장. 꽃게를 부두 위로 올리는 작업을 하는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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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바라본 월곶포구. 그 앞으로 배 한 척이 지나가고, 배경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멀리서 바라본 월곶포구. 그 앞으로 배 한 척이 지나가고, 배경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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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어울려 사는 맛은 예전만 못한 소래포구

지금의 소래포구는 예전의 소래포구가 아니다. 회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맛은 예전만 못하다. 그렇다고 월곶포구가 그 맛을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슴이 아프다. 물론 소래포구가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주말에 꽃게철, 전어철을 만난 데다 다음 주에 추석이라는 대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가한 맛은 월곶포구가 한결 더 낫다.

아픈 가슴을 안고 오이도로 향했다. 오이도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조개구이다. 그리고 얼마 전 오이도에 또 하나 유명한 물건이 생겼다. 빨간등대다. 그냥 말이 등대고, 등대 모양을 한 전망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개구이와 빨간등대, 누가 만들자고 했는지 젊은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적당한 구성이다.

 오이도 선착장. 일부 관광객들이 갯벌로 들어가고 있다.
 오이도 선착장. 일부 관광객들이 갯벌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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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도 선착장 위 노천 횟집거리. 멀리 빨간등대가 보인다.
 오이도 선착장 위 노천 횟집거리. 멀리 빨간등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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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후 6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태양의 붉은 기운이 서쪽 하늘 한 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숙소를 찾아 짐도 풀고 몸도 풀어야 할 때다. 그런데 오이도에 잠자리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여관 하나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가정적인 줄은 몰랐다.

할 수 없이 12km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로 진입한다. 오늘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참 많이도 알게 된다. 시화방조제에 밤낚시를 즐기러 나오는 사람들이 갯벌을 서성이는 칠게만큼이나 많다. 그래서 해가 다 져서 나 혼자 어두컴컴한 방조제 위를 달리는데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대부도에서 만난 고3 자전거 라이더 4명

 시화방조제 위에서 바라다본 저녁 노을. 점점이 떠 있는 배들.
 시화방조제 위에서 바라다본 저녁 노을. 점점이 떠 있는 배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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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에 들어서서 한 무리의 자전거여행자들을 만났다. 4명이 한 팀이 돼서 십리포까지 간단다. 오늘 아침에 서울 집을 떠나 여기까지 왔다는데, 그 목소리가 십리포가 아니라 만리포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이 자신감이 넘친다.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실업계 고3이란다. 고3이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여행을 다닌다니, 참 맑고 깨끗한 정신을 가진 친구들이다.

짐받이에 텐트와 코펠이 매달려 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내 나이 17살 때 친구들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왜 자전거를 타고 가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친구들 참 씩씩하다.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다. 젊은 게 좋긴 좋군. 십리포까지 가서 그 이후에 더 내려 갈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지 생각해보겠다고, 나는 이제 또 어디에 가서 몸을 뉘여야 하나 고민인데, 이 친구들 그런 걱정은 아예 하나도 없어 보인다.

오늘 주행거리는 약 70km. 속도계를 바깥에 두고 와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내일 저녁 다시 정확한 수치로 바로잡겠다. 내일은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복잡한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코스가 지렁이들이 지나다닌 흔적 마냥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연도교로 연결된 섬만 4개, 아예 육지로 변한 섬까지 치면 그 수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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