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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구룡포 모습. 태풍 '말로'가 강풍을 동반한 비를 뿌리는 가운데 어선들이 포구에 정박해 있다.

태풍 말로가 동해안 일대에 비를 뿌려 구룡포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됐습니다. 밤새 천둥 번개 소리에 몇 번이나 깨 잠을 설쳤는데 7일 내내 강풍을 동반한 비가 계속입니다. 포구엔 전날 오후부터 단단히 묶어둔 어선들이 가득하고 매일 이웃 할머니들로 북적이던 여관 1층 마루도 오늘(7일)만은 조용합니다.

 

세수를 하고 방 안에 들어서는데 주인이신 박 할머니가 '밥을 먹자'고 불렀습니다. 벌써 두 번이나 공짜 식사를 한 탓에 죄송한 맘이 들었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말라며 얼른 오라 했습니다. 묵은지에 돼지고기 한가득 썰어넣은 김치찌개, 고구마 줄기 볶음, 오징어 젓갈, 콩나물 무침까지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여간 좋은 게 아니라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씩을 놓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밥 먹는 중에 시작된 할머니의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부 연을 맺고 산 할아버지는 지난 5월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사는 내내 사이가 각별했던지라 이웃에서는 할머니가 할어버지를 따라 모진 결정을 할까 얼마간 노심초사했답니다. 말씀하시는 내내 여전히 그리움이 사무치는 듯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니 때문에 보는 제 눈가마저 젖고 말았습니다.  

 

"고맙다, 고맙다"하고선 떠난 남편 그리워하는 주인 할머니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초입에 있는 '신도여관'

할아버지는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성실한 분이었답니다. 평생 뱃사람으로 살면서 술 한 번 입에 대지 않고 언제나 할머니 기분을 맞추려 노력했답니다. 할아버지와 달리 화통하고 직설적이었던 할머니가 어쩌다 맘이 언짢을 때면 할아버지는 아들 셋을 데리고 나가 자장면을 사먹이고는 "오늘은 엄마가 힘든 날이니 조용히 놀거라"고 타일렀답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큰 병을 얻은 건 5년 전입니다. 병원에서는 간경화 말기로 길어도 2년을 못 버틸 거라 했다는데 할아버지는 이후 의사도 놀랄 만큼 간이 회복되어 3년을 더 살았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간은 다 나았는데 그 사이 오토바이를 타다 허리와 팔을 다치면서 독한 약을 먹은 것이 화가 된 듯하다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병상에서 지낸 몇 년간은 할머니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매일같이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며 행여나 욕창이 생길까 8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몸을 할머니 혼자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쉴새없이 닦아줘야 했습니다. 당신 몸과 같이 귀한 남편이 너무 아파할 때면 '이리 아플 거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더랍니다.  

 

그러던 지난 5월 어느 아침, 그날도 할아버지는 옷 안 가득 대변을 봤습니다.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싫은 내색 없이 "똥도 어찌 이리 예쁘게 쌌노"하며 할아버지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답니다. 그리고 말끔히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와 앉으니 할아버지가 대뜸 할머니 손을 잡고 볼에 비비시며 "고맙다, 고맙다"하더랍니다.

 

할머니가 별 소릴 다 한다며 손을 뿌리치니 다시금 손을 잡아당겨선 "이리 고마운 거 나아서 갚고 가야 하는데, 대신에 내 갈 때 당신 몸 아픈 거 다 갖고 갈게"하더랍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 할아버지가 대뜸 "우리 텔레비전 볼까?"하고 묻는데, 그때 얼굴이 어찌나 아이처럼 해맑던지 할머니는 속으로 '이 양반이 나으려나 보다' 하고 냉큼 TV를 켰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두 발이 그리도 안쓰럽더랍니다. 그래서 남편 곁에 반대로 누워 그 발을 안고 살풋 잠이 들었는데, 잠시 후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 자신을 깨우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나가다 문병 온 이웃이었습니다.

 

놀라서 일어나 보니 조금 전까지 멀쩡해 보였던 할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만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서서히 들고 있던 팔을 떨어뜨리려 할 때, 할머니는 냅다 그 팔을 받쳐들며 "여보, 왜 이래요?"하고 소리쳤답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119가 와서 시신을 병원으로 옮겼는데, 며칠 후 염을 하려 영안실에서 꺼낸 할아버지를 보고 할머니가 깜짝 놀랬더랍니다. 아직 살아있다 싶을 만큼 그 얼굴이 평온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와락 할아버지를 안았는데 파르라니 차가운 기운에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고요.

 

"죽어서도 보러 가겠다" 대답 못한 게 후회스럽다는 할머니

 

 할머니 사랑 듬뿍 담긴 고봉밥

어느새 울음바다가 돼버린 방 안에서 할머니는 "내가 그 사람한테 미안한 게 딱 하나 있어"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살아실 제 몇 번이고 "당신 죽어서 내 찾아 올 거지?" 물었을 때 단 한 번도 "그러마"하지 않고 "지겨워 죽겠는데 죽어서 왜 또 만나!"하며 핀잔을 준 것이 그리도 후회스럽다 했습니다. 

 

그 긴 세월 여적지 이리도 애틋한 마음을 제가 어찌 헤아릴까만은 눈두덩이 발개진 할머니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모를 리가 있겠어요. 할아버지 좋은 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자식들하고 원없이 재미있게 사시다 나중나중에 만나시면 되잖아요"하고 위안해 드렸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께선 강아지 같은 눈으로 "정말 그럴까..."하고 되물었습니다.

 

가슴이 저렸지만 한편으론 남편과 사는 내내 지극한 사랑을 나눈 할머니 인생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인스턴트 커피 타는 것 만큼 쉽고, 시간과 비례해 값어치가 높아지는 그런 것들은 사라져만 갑니다. 저 역시 지난날 가슴 찢어질 듯 그리웠던 사랑을 언젠가부턴 '사랑이 그저 시시한 거구나'하고 합리화하고 살었는데, 할머니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앞에선 '다만 내가, 그 사람이 부족했었구나' 인정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끝내고도 쉬이 진정이 안 되는지 울먹울먹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마주 보기가 애가 타서 대신 여기저기 물집 잡히고 부르튼 거친 발을 쓰다듬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빌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남은 세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나중에 꼭 할아버지 만나게 해주십시오.'

 

 올해 5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더없이 그립다는 여관 주인 할머니.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8일 동해상에서 납북됐던 포항선적 대승호가 이날 귀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룡포 인근에 해당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플래카드를 보고 걱정스러웠는데 별탈없이 돌아오게 됐다니 다행스럽습니다.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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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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