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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위험하고 심각한 상태를 벗어났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내 몸의 독특한 운용 방식을 구성했으며, 그 자체로 나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위험 상태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신과 신체를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몸 그 자체이고, 몸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기질, 재능, 성격, 감정의 일부가 결정된다 - 139p

몸을 겪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깨닫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도출되는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성장한 소년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억눌린 욕망을 깨고 '상처'가 아닌 에로스의 다리를 내밀어 보인 것처럼 세상을 향해 사유의 몸을 드러낸다.

'몸'이란 것은 어떤 대상과 마주하고 결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저자 김원영은 사회적 시선으로 묶인 '몸'이길 거부하고 제 '몸'의 주체로서 사유하고자 한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그 '몸'이 자라 온 성장서이며, 사회적인 억압에 갇힌 '몸'을 일깨우는 지침서이다.

저자 자신을 사유하게 하는 장애의 '몸'은 긍정의 대상일까? 동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가 말한다.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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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긍정이다 부정이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고민,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민을 던지게 하는 중요한 동기는 장애가 맞죠. 저는 대부분을 거기서 출발하며 그런 질문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저의 생각 체계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그게 없다면 다 달라질 것이지만, 장애가 좋다 나쁘다 문제로 가면 그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어떠한 몸도 '긍정'의 상태로 고정될 수 없을 것이다. 긍정임과 동시에 부정이기도 한, 긍정과 부정의 공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로서 장애, 비장애의 '몸'들은 쇠락의 운명을 따라갈 뿐이다. '몸'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반영이며, '나'의 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억압하는 몸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다.

"스스로 사회가 만들어낸 봉사 등 담론의 대상이었다가 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주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 한편 아쉬움도 있었어요. 투쟁하는 장애인은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한다는 압박…. 페미니즘,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올바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내 입장이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정치적인 주체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분명히 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닌, 그것이 표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고민했었죠. 그중의 하나가 성적인, 섹슈얼한 문제였기도 했고요."

걷고자 하는 '욕망'은 그의 '몸'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몸의 고통과 욕망을 은폐하는 것"을 넘어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겹겹이 가려져 있는 자신의 몸을 하나씩 벗어 보인다. 오랫동안 제 몸에 귀를 기울인 저자는 모든 고통과 욕망이 제거된 자리로서의 '몸'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사랑받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욕망하는 그 모든 것들의 집합소로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준다.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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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 고복수와 전경의 '사랑'을 들여다보자.

죽음을 앞둔 고복수의 몸이 '야할'리 없다. 고복수의 몸이 야하지 않은 것은 손상된 공작새의 꼬리가 암컷을 유혹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감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욕망에 따르는 그의 행위는 오히려 자연적 질서 너머를 지향한다. 그는 자연적 인과성의 초월을 꿈꾼다. 그를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전경이라는 인물은 그 초월적인 사랑을 완성시킨다. -213p

'몸' 안에 정지되어 있던 욕망은 어떤 대상을 항해 표출됨으로써 자연적 질서 '저 너머'를 향해가는 동적인 '욕망'으로 변모한다. 그가 '몸' 속으로부터 이 사회에 발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일까?

"사회적 억압과 생물학적 억압이 정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에요.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사회적 차별로만 말할 수 없는 생물학적 결핍이 분명히 있고, 그 속에서 나의 욕망이 억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치적으로 투쟁해야 되고, 내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장애를 쿨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동시에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몸에 대한 태도들이 결합해서 어떤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것인가 고민하며 쓴 이야기인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죠. 책에서 말하는 '욕망'은 열정적으로 살겠다거나, 자기개발 하는 주체의 의미가 아닌 담론 안에 갇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예요. 하나에 고정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욕망'이란 말을 쓴 거죠."

자신의 '몸'을 향해 치열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열망은 스스로 '몸'의 가치를 부여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욕망을 가진 뜨거운 존재", '욕망'이 이끄는 지점으로 움직이는 이 운동성은 '삶'의 빛을 불어넣는다.

수많은 이들이 열망한 자유가 모여 만들어낸 구체적인 증거로서의 '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장애인의 50퍼센트가 간신히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이 나라에서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비교적 중증의 질병을 가진 내가 말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유'다.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존 질서를 마음껏 거스르는 존재이자, 수많은 이들이 열망한 자유가 모여 만들어낸 구체적인 증거다. -243p

한때 슈퍼장애인을 꿈꾸기도 했던 저자는 이제 현실의 벽 그 '너머'를 지향하던 이들이 함께 '완성'을 위해 움직였던 '열망'의 '증거'가 되었다.

"저 같은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초등학교를 못 다녔어요. 또 특수학교에 다녔고, 그런 과정에서 자립생활 운동하는 장애인들이나,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을 만났고, 대학 와서도 그때 장애인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환경이 바뀌면서 학교생활에 좀 더 적응하게 되었죠. 개인의 극복이나 승리에 주목할 게 아니라 그런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장애인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쓰면서 고민했던 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장애대중 일반을 놓고 봤을 때는 학벌체제 안에 있는 제 목소리가 가진 한계가 있다는 거였죠. 하지만, 재활원을 거쳤다는 것과 사람들의 지속적인 연대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이야기들이 공통체적인 노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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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학교의 경험,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준비할 때 그를 받아들이기 거부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자 한 '나'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하여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음을 말한다. 대학 입학 후, 장애 운동과 그 궤를 같이하며, 자신을 움직였다. 저자는 그것은 한 개인의 성공신화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기존질서가 받아들이지 않고자 하는 것들 그 너머를 열망하던 '증거'로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삶은 이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변화했으며 내 자유가, 내 몸이 내 사랑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하기 위해 썼다"라고.

느림… 자유정신의 예술가들

건강한 사람들에겐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거나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질병이나 장애는 극적으로 인생을 뒤바꿔놓을 수 있는 두려운 대상이 된다. 신장 투석이나 손가락 하나를 잃는 것, 간 기능이 나빠지거나 천식에 걸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면 그 정도의 몸 상태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으며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138p

세계의 속도는 느리게 움직여가는 존재를 도태시키며 질병을 앓는 몸, 장애를 지닌 몸, 노쇠한 몸을 '밖'으로 추방한다. 저자는 질병을 앓는 순간, 장애를 입는 순간 세계의 질서 속에서 이탈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세계의 속도를 유지할 수 없는 '몸'이 되어 그 속에서 떨어져 나온다. 쓸쓸히 퇴장한 노쇠한 '몸'들은 세계의 한구석에서 외로이 제 죽음을 기다린다. 다른(느린) '몸'들은 한 데 어울려 결합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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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그는 한 편의 연극에서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연극 수업시간에 <맥베스>의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은 <맥베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연출을 가능케 했다.

"움직일 수 없어서 분명히 연극 자체로서 한계가 있었는데 상상력을 가지고 연출하니까 더 멋진 무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자는 예상 밖의 인물에게 주연을 맡김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창출해내는 이들을 '자유정신의 예술가들'이라 명명하고 있다. 객석이 무대가 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결과가 도출되는 것. 그것은 일방적 베풂이 아닌 "통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연출"된 삶을 위해 서로의 '몸'을 엮어 만들어내는 도전이다. 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몸'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가능성과 결과가 창출될 수 있으려면 저자는 좀 더 느려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바쁘면 기존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시키게 되니까요. 장애인이나 거기에 안 울리는 사람을 뽑아서 어울리는 무대를 만드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사회를 만드는 방식도 비슷하지 않나요?"

또 하나의 억압으로 존재했던 20대… 88만원의 '몸'

몸은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각기 다른 '욕망'과 '억압'에 묶여 있는 다양한 나의 '몸'들. 20대인 그는 '88만 원 세대'로 호명되는 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제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형태 중의 하나가 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장애, 가족, 세대 사이에 껴 있으나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나아 갈 수 없는…. 그것을 꼭 세대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어떤 고민이 떨어졌을 때 답을 내지 못하고 스스로 갇혀 있었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김원영은 '몸'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의 근원을 찾고, '욕망'을 드러내며 자유의 몸을 꿈꾼다. 그렇다면 저자는 88만 원 세대 당사자로서 지금의 20대들이 어떻게 세대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을까?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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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운동에서 보면 당사자들이 상황에 분노하고 결집했을 때 해결될 수밖에 없잖아요. 장애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지만, 2000년대 노동운동이 죽고 사회적인 변화를 가장 많이 이끌어낸 것은 장애인들이었거든요. 결국은 뭔가 쿨한 세대가 되기보다는 자기들의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모욕에 민감하고 분노하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증거로서 책에 장애인운동이 만들어낸 변화들을 언급한 것이고…."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모든 '몸' 앞에 바쳐진 이야기이다. '몸'은 새로운 삶을 생성하기 위해 제도 밖의 것들에 '구애'를 보내며, 더 많은 가능성과 연대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억압을 뛰어넘고 자유롭게 다양한 '몸'을 넘나들고자 한다. 저 '너머'를 지향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의 몸"은 그것이 "생성하는 새로운 삶"을 이루어내며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내게 다시 무엇인가를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증언을 넘어 변론을 하고자 한다. 그 변론이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의 몸. 당신의 몸. 내 친구들의 몸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몸이 가진 자유가 될 것이다. 우리의 유약한 몸, 장애를 가진 몸, 추한 몸, 88만 원 짜리의 몸, 그 몸들이 처한 온전히 다른 여러 세계가 나의 존재와 나의 사랑을 통해서 자유의 가능성을 타고 새로운 삶을 생성하는 것, 그것이 내 궁극적인 꿈이며 삶이 될 것이다 -261p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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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푸른숲/276쪽/2010년 4월 5일 출간

저자 김원영

1982년에 태어났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며,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에서 펴낸 <<인문의학>>의 공동 필자로 참여했고,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장애인신문 비마이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푸른숲(2010)


태그:#김원영, #서울대, #장애인, #푸른숲,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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