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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단어 자체가 낯선 산골마을 곡성에서 죽곡농민열린도서관(관장 김재형)과 곡성군 농민회 죽곡지회(지회장 강홍집)가 함께 마련한 '농민 인문학 강좌'가 삼복더위 못지 않은 뜨거운 관심속에 7월 30일(금) 마지막 강의를 열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죽곡 용정마을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나뭇짐 지게를 지며 자랐다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고향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콘셉트는 고향의 어릴적 정서가 바탕이 되었다. 새로운 소식을 빨래터 아줌마, 사랑방 아저씨, 이웃집 돌담 너머로 김치 한 포기 넘겨주며 전하던 이웃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공부를 많이한 직업기자, 저널리스트, 이른바 완장찬 사람이 아니어도'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오마이뉴스의 '생나무 기사' '잉걸기사' '시민의 숲' 등 메인화면 각 부분에 죽곡 용정의 정서가 담겨 있다."

한국의 진보 언론매체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신문으로 자리매김한 <오마이뉴스>의 창간과 현재까지 이끌어 온 과정을 이야기 하는 내내, 청중들의 귀와 눈은 오 대표의 입을 떠날 줄 몰랐다.

"나의 첫 직장은 '말'이라는 월간지 회사였다. 당시 '말지(말誌)'는 불법 매체였다. 편집장이 매달 바뀌고, 기사에 기자 이름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정보기관의 탄압이 심했다. 이렇다 보니 신입사원에게 누가 따로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것도 없었다. 정부 각부처 출입기자단이란 것이 있는데 비주류 매체 기자는 낄 수가 없었다. 취재를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데 못 들어갈 때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다운 말을 하는 제대로 된 언론인

"말지 12년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다. 5공, 6공시절에 '말다운 말을 하는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았다. 그 중에서도 12년 동안 개근한 것이 가장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다. 월간지 기자에게 개근은 매월 내 기사가 실리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바탕은 역시 어릴적 논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배운 것이다. 한 나절쯤 지나면 지루하고 심심해서 집에 가자고 어머니를 보채면 어머니께서는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제"라고 말씀 하셨다. 그 때는 그 말뜻을 몰랐다. 이제서야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됐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묵묵하게 지탱해 온 우리 부모님들의 생활 철학이 된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그 말뜻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연애편지를 쓸 때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듯, 내가 좋아서 쓰는 기사는 절대 피곤함을 모르고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12년 동안 개근할 수 있었던 것은 편집장이 말하기 전에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1995년 어느날 회사로 향하는 자신의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발견하고, 돌연 미국행을 준비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증명한 그의 인생역전은 이랬다. 회사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미국 특파원 비용을 자비로 꾸린다는 황당한 계약서를 작성해, 회사로부터 '말지 미국 특파원' 비자 한장만을 받아들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서서히 글쓰는 것이 압박감으로 다가올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색이 미국 관련 전문기자인데 미국을 한 번도 안 가보고 미국에 대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 길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MBC라디오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의 미국 주재 통신원 아르바이트로 체류 비용을 마련했다. 미국에 있을 때 저널리즘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매체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머릿속 구상으로만 있던 생각을 친구의 도움으로 현실로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오마이뉴스가 10살을 먹었다. "왜 인터넷 신문을 생각했는냐?"는 질문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내가 만약 삼성의 이재용이었다면 이런 저런 고민 없이 종이 신문을 했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황이 작용했다. 하나는 비용이 저렴하고 지면 공간이 무한한 매체, 다른 하나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콘셉트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기존의 종이신문 즉 아날로그 매체는 톱 기사가 한번 정해지면 다른 기사가 톱 기사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인터넷 신문 즉 디지털 매체는 새로운 톱 기사를 언제든지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한꺼번에 더 멀리, 더 많이 퍼뜨리는 실시간 매체 전파력이 강력하다."

그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스마트폰, 트위터 등 더 많은 디지털 매체와 기계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올바른 선택과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뉴 미디어의 흐름은 더 많은 참여를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과연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50년 이상 미디어 관련 행복지수를 조사해 온 유럽의 연구기관 자료에 의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더 낮게 나타나고 있다. 물질은 풍부해지고 사회적 관계는 더 복잡해 졌는데 사회적 행복지수는 하향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런 행복지수를 끌어 올리는 방법의 하나로 "오래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등산을 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것, 옛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 이 모두가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립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아직도 농촌에는 오래된 것들이 많다. 이것이 앞으로 농촌의 미래자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이 전국으로 퍼져서 시골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넉넉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쉬운 농민인문학 자리를 마무리한다. 가을걷이가 마무리 되는 12월부터 2차 '인문학 강좌'를 열 예정이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카페 및 곡성군 농민회 소식지"함께하는 농민세상"에 게재됩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인문학, #뉴스, #미디어, #오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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