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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이 지난 7일 '다시 길을 떠납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긴 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 전까지 수경 스님은 생명의 강인 4대강을 살리기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수경 스님의 빈 자리를 함께 채워나가자는 취지에서 '4대강에 띄우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이 연재는 모든 시민기자에게 열려있습니다. 기사로 쓰시거나, UCC를 올려주시거나, 포토에세이도 좋습니다. 좋은 댓글도 이 연재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수경 스님이 14일 측근에게 남긴 '다시 길을 떠납니다'를 읽다가 마지막 구절이 손끝의 가시로 박혔습니다. 아름다운 금강을 노래했던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문경시 영풍교 아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쓰이던 낙동강변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군부대를 동원해 파헤치고 있다.

진달래 피어있던 그 자리에 '오만의 바벨탑' 세워지고

 

신동엽 시인과 스님께서 사랑했던 금강은 지금 전쟁터입니다. 시인의 절망처럼 한국전쟁 때에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온종일/탄환을 퍼부었"겠지만 지금 한반도 남쪽에선 '돈 총알'을 장전한 굴착기들이 강 허리를 허물면서 낮밤 가리지 않고 자맥질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강바닥의 뭇생명들이 무참히 죽은 그 자리에서 황금빛 탐욕을 퍼올리고, 진달래 몇 뿌리 피어있던 곳에도 모래를 퍼부으며 오만의 바벨탑을 세우고 있습니다.

 

휴가를 핑계로 4대강 자전거 투어를 시작했던 지난 7일, 땡볕의 아스팔트 길 120km를 달려 경기도 여주 여강선원에 도착했습니다. 천년고찰 신륵사 뒤편에서는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야간 전투'가 한창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천막 숙소의 알전구 아래 둘러앉은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차를 따라주셨지만, 뒤쪽에서 들려오는 강의 비명소리가 내내 거슬리는 눈치였습니다.

 

이날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저는 스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 이번 지방 선거 결과를 '4대강 사업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속도전을 벌이는 것 같네요?

"아니, 김 국장도 기자지? 난 기자 앞에서 말 안 해.(웃음)"

 

- 스님, 휴가 첫날 여기까지 자전거타고 왔는데...

"그래도 내가 뭐 한 일이 있다고 인터뷰를 하나."

 

'대접받는 중노릇해서는 안 된다'. 전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날 밤의 대화를 부끄럽게 떠올렸습니다. 사실 인터뷰를 거절한 것은 이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영하 20도의 혹한에 강화도 애기봉 전망대에서 생명의 강 순례길에 올랐을 때에도 그랬고, 지리산 하악단에서 시작해 천리길을 자벌레처럼 기어 다니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지난 3월 여강선원으로 떠나기 며칠 전날 밤에도 인터뷰하러 올 거면 오지 말라고 극구 사양하셨지요.

 

 수경 스님이 머물던 여강선원 앞 아침 풍경. 활동가들이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거리에 선방을 차린 거리의 수행자, 수경 스님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던 그날 밤, 스님의 말을 기억합니다.

 

"옛날 어르신들께서 이런 말을 했어. '대접받는 중노릇하면 인생 끝장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내가 진짜 중인지 착각하기도 해. 생명의 강 순례하고 오체투지하면서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은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야. 내 얼굴이 여기저기 나가게 되면 내가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구나 하는 착각이 든다니까. (중략) 난 사실 길바닥에서 자는 게 편해. 양심적이어서 편한 거지. 여강선원으로 나가는 것도 내가 불편해서 그런 것이야."

 

제가 비겁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을 가혹하리만치 엄혹하게 검증해야 하는 게 언론인의 본분인데, 저는 스님을 대중 앞에 세우는 것으로 '대접받는 기자질'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성부터 해야 한다는 말씀의 진정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이 전부인양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입으로는 뭇생명의 주검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죽어가는 영혼들과 진정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대지와 인간의 호흡을 일치시켜 생명의 강으로 향하게 하는 오체투지의 소통을, 그 묵언수행의 큰 울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지난 10여 년간 스님이 절방에 앉아 대접을 받고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새만금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하 생명의 강 순례, 그리고 4대강 사업 오체투지 등 생명을 파괴하는 대형 국책사업에 맞서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남을 탓하기보다는 모두 다 함께 살 수 있는 상생과 참회의 길을 떠났습니다. 혹한과 혹서가 교차했던 그 길은 편한 절방이 아니라 풍찬노숙하는 거리의 선방이었고, 스님은 불교의 계율인 '불살생'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거리의 수행자였습니다.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가 2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 세상은 인간과 뭇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임을 상징하는 조형물. 흙으로 빚은 동물 인형들이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신륵사 여강선원 앞 마당).

붓두껍의 인주도 마르기 전에... 일부 단체장 '민심 도적질' 

 

사실 '강 죽이기' 사업에 대한 이성적인 논쟁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강물을 가두면 썩는다는 지적에 '백두산 천지 못은 갇힌 물인데, 썩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황당한 비유는 코흘리개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운하를 만들면 배의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강물을 정화시킨다는 한 학자의 곡학아세는 로봇 물고기의 편대 유영이라는 이 대통령의 블랙 코미디로 환생했습니다. 홍수가 거의 나지 않는 4대강 본류를 파헤치면서 홍수를 예방할 것이라는 후안무치한 거짓말도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 기구를 총동원, 심지어 군대까지 '생명의 강 죽이기'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수시로 낯빛을 바꿔가면서 운하 전단계로 의심받고 있는 막대한 사업을 자신들의 주머니 돈이 아닌 국민의 혈세를 마구 퍼부으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떡고물을 토목마피아와 지역 토호들이 받아먹고 흥청망청 탕진하겠지만, 이로 인해 파괴된 환경과 오염된 식수는 고스란히 국민들과 후대가 짊어져야 합니다.

 

또 지난 지방선거는 4대강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붓두껍의 인주도 마르기 전에 일부 야당 자치단체장들이 4대강 사업에 찬성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여론에 힘입어 당선된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국고보조금을 이유로 찬성으로 돌아선다면 민심을 도적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스님의 빈 자리가 휑합니다. 사실 스님이 떠나시고 난 뒤 일주일여 동안 행적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스님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바위 그늘 밑에 잠시 쉬었다가 돌아와서 사람들을 이끌고 강가에 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남긴 화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

 

하지만 저는 이제서야 그런 기대가 부질없음을 알았습니다. 지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뜻을 어떻게 알겠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도법 스님) "스님을 찾기보다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살피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지율 스님) "어디서 길을 찾고 계신 것같은데, 굳이 찾으려고 하지 말자."(문규현 신부)

 

맞는 말씀입니다. 스님이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고 떠나시면서 남긴 화두는 '초심'과 '자기자신에 대한 정직성'이었습니다.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스님의 말씀을 일부 보수언론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만, 사실 그 핵심은 풍찬노숙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조차도 '대접받는 중노릇'이라면서 이제는 자신의 이익과 타협하지 않는 정직한 길을 선택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우리 강 우리가 지키자'... 여강선원 앞 마당에 걸려 있던 걸개 그림.

스님께선 여강선원으로 가기 직전 저와 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스님을 화장했어. 난 혼자 남아서 밤늦게까지 화장터를 지켰어. 그런데 배가 펑하고 터지면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이 산산이 흩어지더라고. 몸뚱이가 타는 냄새가 진동했어. 순간 저 불구덩이 속으로 내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까? 소름이 오싹 돋더라고. 8년 더 지나면 내 나이 칠십이야. 죽음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데 난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살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부처님의 제자답지 못한 삶이야."

 

처절한 독백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접했습니다. 스님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을 스스로 불사르는 그 공력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입니다. 

 

모기 주둥이로 무쇠 소의 몸통을 뚫어라

 

스님께선 종종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가 불가의 요어(要語)를 간추려 엮은 불교개론서)을 인용하면서 부처님을 팔아서 살아가는 '가사 입은 도적들'이 우글거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대강 사업 반대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던 조계종 총무원을 향한 죽비소리였습니다. 선가귀감에 보면 또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무릇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 위에 앉아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어찌할 것인가를 따지지 말고, 모기가 주둥이로 댈 수 없는 곳을 목숨을 다해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이 구절 역시 그 어떤 이해타산에 휘둘리지 않고 가혹한 자기 성찰을 통한 참선으로 부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른 말입니다. 스님은 이제 그 길을 떠났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스님이 길을 떠났듯이 모든 사람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당신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탐욕을 버리고 신음하는 강변에 나가 뭇생명을 위해 통곡하는 것이 당신이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막대한 세금과 모든 국가권력, 심지어 언론까지도 장악한 채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이라는 이 거대한 벽. 하지만 눈 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생명의 강을 염원하는 진실한 영혼들이 함께 모인다면 이명박 정권이 쳐놓은 무쇠 벽을 뚫고 그 속에 몸뚱이째 들어갈 날이 있겠지요. 전 그 때까지 스님이 떠난 빈 자리, 그 언저리에 머물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생명의 강가에서 스님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 때가 되면 강변 어느 바위 근처에 진달래 꽃 흐드러지게 피어 오르겠지요.

 

자전거를 타고 여강선원에 들른 뒤에 남한강과 낙동강 강변 길을 누볐던 5일간의 짧은 휴가. 일년 내내 산문을 닫아걸고 기도 정진하는 곳인 천년고찰 봉암사에서 하루 밤을 묶고 아침 일찍 제 고물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데 한 선승이 종무소 문을 활짝 열고 투박하게 외쳤습니다. 

 

"웃으면서 가세요. 즐겨야만 이깁니다."

 

 남한강으로 흘러들기 직전의 섬강. 한강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래톱과 나무 숲이 살아 있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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