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선이 굵은 얼굴의 여자와 남자친구로 보이는 순한 얼굴의 남자는 4호선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들의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 건, 아니 선이 굵은 얼굴의 그녀가 화나기 시작한 건 임플란트 때문이다.

 

먼 훗날 임플란트를 해 달라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곧바로 흔쾌히 대답하지 못한 것이 이유다. 지하철 안에 서 있다 보면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그들이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머뭇거리는 남자의 태도에 여자는 급기야 지하철에서 내리려하고 남자는 여자의 팔을 잡는다. 내리지 못한 여자는 이번엔 남자에게 내릴 것을 강요한다. 극도의 긴장감이 맴도는 4호선 지하철 안. 사람들은 노골적인 시선을 두지 못하지만 은근 남자가 내리게 될 것인가에 주위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문 앞까지 섰던 남자는 결국 내리지 못한다. 

 

난 생각한다. 저녁쯤에 그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자기야 내가 꼭 임플란트 해줄게'라는 말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그 사랑스러운 감정 안에 있다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 그런 것이니까.

 

시국이 이러한데 무슨 사랑타령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퇴보도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이러한 현상도 결국 사랑이 없는 자들이 빚어낸 산물이 아닐까. 하늘이 높고 바람이 좋은 날이다. 아침에 눈 뜨는 것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여기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3편을 소개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①] <첨밀밀>(1997)

 

 <첨밀밀>포스터

<첨밀밀>포스터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홍콩 드림'을 꿈꾸며 기차에 오른 여명과 장만옥은 오로지 성공만을 목표로 각자 낯선 땅에 정착한다. 맥도날드나 영어 학원에서 마주치게 되는 우연은 그들 사이에 새로운 감정을 싹트게 하지만 여명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이 있으며 장만옥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대륙인이기를 거부하고 홍콩인처럼 살아가고 싶은 장만옥과는 다른 여명.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 간의 연결고리는 바로 등려문이라는 가수다. 돈을 벌어 시작한 장사가 실패로 돌아가고 암흑가 보스을 만나게 되는 장만옥.

 

여명 또한 고향의 여자와 결혼을 하며 둘은 헤어지지만 몇 년 후 우연한 재회로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장만옥은 쫓기는 암흑가 보스인 남자를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영영 이별을 하게 될 것 같았던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은 뉴욕의 차이나타운 거리. 길거리에서 등려문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TV 앞에 선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두 사람의 뒤로 등려문의 노래가 흐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명과 장만옥이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던 장면이나 자동차 창문 사이로 기나긴 입맞춤을 나누던 장면, 전자제품 상가의 TV 앞에 멈춰 선 채 뉴스를 바라보다 재회를 하게 되는 모습까지 <첨밀밀>이 남긴 서정적인 여러 장면들은 아직 그 시대의 추억과 같이 남아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②]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포스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포스터 ⓒ 캐슬락 엔터테인먼트

'맥라이언은 귀엽다'는 공식이 처음 성립됐던 영화다. 사람 가득한 식당에서 가짜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장면이나 실연의 슬픔으로 티슈 한 통을 다 써가며 눈물을 쏟는 장면 역시 상큼하며, 젊은 시절의 빌리 크리스탈 모습 역시 새롭게 느껴진다. 

 

그저 친구여야 하는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마는 샐리(맥라이언)은 아침에 부리나케 사라지는 그에게 상처받는다.

 

뉴욕 행 자동차를 함께 타게 되는 인연으로 만난 이들은 각자의 생활을 하며 12년 동안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샐리에겐 변호사 애인이 생기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해리. 둘은 멀어지지만 또다시 혼자가 되 만나게 되는 인연은 그들에게 친구라는 이름을 붙인다.

 

첫 번째 만났을 땐 서로 미워하고 두 번째 만났을 땐 서로 못 알아보며 세 번째 만났을 때 그들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해리는 그녀를 만난 지 12년 3개월 만에 사랑을 고백한다. 시종일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냐는 논쟁을 벌이던 그들이 나이든 부부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마지막 장면은 참 사랑스럽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③]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당신이 잠든 사이에>포스터

<당신이 잠든 사이에>포스터 ⓒ 브에나 비스타 픽쳐스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는 맥라이언의 계보는 산드라 블록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지닌 것이라곤 초라한 아파트와 고양이 한 마리뿐인 산드라블록은 정작 소중한 부모나 가족은 없이 홀로 지하철 토큰 부스를 지키며 크리스마스를 지낸다.

 

그런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니 그는 매일 아침 반듯한 용모로 인사를 하며 지하철을 타는 남자다.

 

그가 우연히 사고를 당해 그녀가 구해내고 응급실에 같이 간 그녀는 코마 상태에 빠진 남자의 약혼녀로 오해를 받아 그 남자의 가족들로부터 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가족을 소중함을 알게 된다.

 

산드라 블록은 줄줄이 이어지는 끊이지 않는 에피소드 속에서 조마조마한 행복을 누리지만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니 동생 빌 풀만이다. 

 

그 사이 산드라 블록을  알지 못하는 짝사랑이 깨어나고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 믿는 가족들 덕분에 그녀는 잘생기고 완벽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수수하고 정직한 매력을 지닌 짝사랑의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산드라 블록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 빌 풀만. 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의 동생이었지만 영화 속 빌 풀만을 보고 여자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하철 마지막 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키스하는 엔딩 장면은 어딘가에서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는 재밌는 영화와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재밌는 영화로 기억에도 남는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누구나 꿈꾸고 싶어 하는 사랑영화가 아닐까. 4호선의 연인역시 사랑 안에서 웃고 있을 거라 믿는다. 바로 이 순간에도.

2010.06.04 16:15 ⓒ 2010 OhmyNews
첨밀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당신이 잠든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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