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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 표지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 팬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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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과거제도가 도입된 이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과거 준비에 갖은 정성 다 쏟았다. 과거는 권세가의 관직 독점을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 제도였다. 더불어 학문적 소양을 갖춘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한다는 명분이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과거 준비에 몰입하게 해서 왕 중심 지배 체제에 순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 무과 과거제도가 확립된 조선 시대, 과거 제도를 거치지 않고서는 벼슬자리 얻어 사회적 지위 누리며 살기 어려웠다.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자리 얻고 부귀영화의 삶을 꿈꾸던 많은 양반들에게 과거 합격은 인생 최고의 목표였다.

모든 경쟁에는 승패가 엇갈리는 법, 삼대에 걸쳐 장원급제 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재수, 삼수를 해도 합격을 못해 30~40년 공부해서 겨우 뜻을 이루는 이도 있었다. 율곡 이이처럼 아홉 번이나 연달아 장원급제한 수재가 있는가 하면, 김효흥처럼 76세가 되어서야 겨우 문과에 급제한 인물도 있었다. 평생 단 한 번도 합격의 영광을 맛보지 못해 좌절을 곱씹으며 살다가 세상을 뜬 이들도 있었다.

조선판 공교육 붕괴?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는 조선시대 과거 제도 운영 실태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7, 8세가 되어 서당에 들어가 맑고 고운 목소리로 '하늘 천, 따 지'를 외기 시작해서 15~16세에 사학, 향교를 거쳐 20대에 이르러 성균관에 들어가 문과 시험 준비를 하기까지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했던 성균관 유생들, 매일 치르는 경서 시험, 열흘마다 치르는 제술 시험, 매달 치르는 월강 시험, 매년 3월 9월마다 치르는 시험인 연고(年考), 이들은 시험의 홍수 속에 살았다. 정해진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뿐.

출세와 입신양명이 꿀처럼 달다 한들 공부가 늘 즐겁지는 않았을 터. 지루하고 힘든 성균관 생활을 견디지 못해 낙향하는 경우도 있었고, 공부보다 사치스런 몸치장에만 매달리는 유생들도 있었다. 엄한 스승의 회초리에 격분해서 다른 유생들을 선동해 성균관을 나가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니 '조선판 공교육 붕괴'라고나 할까.

가문의 영광 장원급제 

성균관 유생들이 꿈꾸던 최고의 영광은 과거 급제였다. 급제자들은 문무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왕으로부터 홍패, 어사화, 일산(해 가리는 양산) 등을 하사받고 문무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풍악을 울리고 기생들이 술을 권하고, 광대들이 재주를 부리는 은영연에 참가했다.

공식적 의식이 끝난 뒤에는 급제 축하 시가행진을 했다. 이때 급제자는 말을 타고 어사화를 꽂은 채 사내아이들을 앞세워 행진을 했다. 악대의 풍악과 광대의 춤이 함께하는 시가행진 앞에서 얼쩡대는 개념 없는 백성은 사나운 호통 소리에 놀라 쫓겨나기 일쑤였다.

공식 비공식 행사가 끝난 뒤 급제자들은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한 급제자는 고향 수령과 아전들의 환영을 받으며 유가를 타고 향교에 참배하고 수령이 동헌에서 베푸는 연회에 참가했다.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장원급제는 모든 면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합격 직후 관직에 임용되는 특권을 누린 것이다. 장원을 곧바로 관직에 임용하지 않을 때는 해당 관헌이 문책을 당할 정도였다. 문과 시험 장원급제는 출세와 입신양명의 탄탄대로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가문의 영광이자 고을의 영광으로 두고두고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출세와 입신양명의 탄탄대로, 그러나

장원급제자가 걷는 길은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다른 급제자들이 합격 후에도 임용 시기를 기다렸던 것과는 달리 합격하자마자 관직에 임용되어 출셋길에 접어들었으니 전도양양한 기대주였음이 틀림없었고, 실제로 승승장구 살아간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장원급제자들의 모두 거침없는 입신양명의 길을 걸어간 것은 아니었다. 장원급제의 영광 뒤에 예상치 못한 삶의 굴곡을 겪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모함 때문에, 때로는 출신 배경 때문에, 때로는 당쟁이나 사화 때문에 순탄치 못한 관직 생활을 이어가거나, 아예 패가망신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우수한 성적을 얻어 높은 관직과 막강한 권세를 한 손에 장악했어도 백성 편에 서서 덕을 베풀어 선정을 펴기보다는 관직과 권세의 위세만 믿고 탐욕과 횡포를 부렸던 탐관오리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했을지 모르지만 백성들 눈에는 권세라는 칼을 휘두르는 도적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덕을 앞세워 가난한 백성들의 궁벽한 삶을 어루만져 선정을 베풀었던 이들은 장원급제로 손쉽게 얻을 수 있던 부와 권력을 멀리한 대신 민심을 얻었다. 비록 그들의 삶이 가난한 백성들처럼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처지였어도.  

어라, 저건 우리 현실과 비슷하네!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에서는 과거 준비에 매달려 사는 선비들의 고단한 삶, 커닝과 대리 시험이 존재했던 과거 시험장 풍경, 장원급제자들의 출신 성분과 집안 내력의 상관관계, 장원급제자들이 걸어간 성공과 좌절의 삶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과거에 매달려 살아간 조선 시대 선비들의 모습, 과거 제도를 둘러싼 잡음과 갈등, 출셋길의 탄탄대로에 들어선 장원급제자들이 걸어간 극과 극의 인생역전을 살피다 보면 문득 현실이 떠올라 한 마디 하게 된다.

"어라, 저건 우리 현실과 비슷하네!"

덧붙이는 글 | 정구선/펜덤북스/2010.5/13,000원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공부 귀재들의 과거 시험과 출세 이야기

정구선 지음, 팬덤북스(2010)


태그:#과거제도, #장원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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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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