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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독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했는가'를 27회에 걸쳐 심층보도한 데 이어 '스위스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나의 한 표는 알프스보다 아름답다'를 현지에서 연재한다. [편집자말]
글 : 오연호 대표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 공동취재팀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스위스 글라루스에서 5일 아침 우연히 만난 유치원 아이들. 같은 반 친구인 이 아이들은 이날 생일 맞은 아이의 집 앞에 모두 모여 그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유치원까지 함께 등교하는 길이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스위스 글라루스에서 5일 아침 우연히 만난 유치원 아이들. 같은 반 친구인 이 아이들은 이날 생일 맞은 아이의 집 앞에 모두 모여 그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유치원까지 함께 등교하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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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린 꼬마들은 아침부터 어디를 가고 있는 거지? 지난 5일 오전 9시, 스위스 북부 소도시 글라루스(Glarus)의 시내에서 우리는 20여 명의 꼬마어린이들이 줄지어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스위스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취재하기 위해 글라루스를 방문한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에게는 이 소도시의 모든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지만, 한 무리 꼬마들의 아침행진은 더욱 눈에 띄였다. 현장학습지로 이동하는 중? 아니면 소풍 가는 중?

글라루스 유치원생들의 특별한 아침 행진

꼬마들의 행진대열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더 궁금증이 생겼다. 단순 행진이 아니었다. 그 행진에는 주인공이 있었다. 행진의 맨 앞에서는 두 아이가 작은 수레를 이끌고 있었다. 그 수레에는 한 아이가 타고 있었다. 그가 오늘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탄 수레 뒤에서는 다른 꼬마들이 조잘대며 따라걸었다. 이들은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다섯 살 어린이들이었다. 이들을 인솔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스위스 글라루스에서 5일 아침 우연히 만난 유치원 아이들. 같은 반 친구인 이 아이들은 이날 생일 맞은 아이의 집 앞에 모두 모여 그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유치원까지 함께 등교하는 길이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스위스 글라루스에서 5일 아침 우연히 만난 유치원 아이들. 같은 반 친구인 이 아이들은 이날 생일 맞은 아이의 집 앞에 모두 모여 그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유치원까지 함께 등교하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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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한 어린이만 특별히 수레에 타고 가나요?"
"오늘이 저 어린이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왜 그 어린이가 특별대접을 받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참 근사한 생일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태어난 날, 친구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같은 반 친구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도심을 관통하는 거리행진을 한다?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선물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어디로 행진을 하고 있는 건가요? 유치원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요?"
"아닙니다. 유치원에서 모여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일 맞은 아이의 집 앞에 모두 모여서 그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유치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동네 유치원 아이들의 생일축하는 이렇게 합니다."


아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원에 모여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집 앞에까지 가서 아침 유치원 등교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누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더 친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유치원 때부터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의 눈에는 그 글라루스 유치원생들의 행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일파티'처럼 보였다.

글라루스엔 이렇게 공동체가 살아있구나! 바로 사흘 전 글라루스 광장에 4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5시간 동안 주민총회(란츠게마인데, Landsgemeinde)를 할 수 있었던 비밀은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우산을 들고, 비옷을 입고 22개의 안건을 모두 통과시킬 때까지 5시간 동안 진지한 토론을 하며 자리를 지켰던 글라루스 사람들, 그리고 그 주민총회의 광장에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동네와 학교의 다리, 직업고등학교

스위스 글라루스의 직업고등학교 피터 베를리(Peter Wehrli) 교장
 스위스 글라루스의 직업고등학교 피터 베를리(Peter Wehrli) 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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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5천 명의 글라루스에서 학교가 공동체 문화 형성에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은 고등학교에서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유치원생들의 아름다운 행진을 지켜본 후 한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직업고등학교라 불리는 이 고등학교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직업학교였다. 이 학교에는 330명의 학생들이 다니는데 학교 건물은 3층짜리 빌딩 달랑 하나였다. 그 빌딩은 지난 2일 글라루스 주민총회가 열렸던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피터 베를리(Peter Wehrli) 교장은 "우리 학교는 글라루스 공동체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빌딩이 하나로 족한 것은 학생들이 3일은 각자 자기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이틀만 여기 학교에서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에서는 이런 직업학교가 일반적입니다. 중학교 졸업한 후에 자기 동네의 기업에 취직하고 일주일에 이틀은 이런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것이지요."

그에 따르면 스위스 고등학교의 60%가 이런 직업교육학교로 운영된다고 한다.

"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대도시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직업고등학교가 커뮤니티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년 열리는 주민총회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도 적극 참여합니다."


학생들은 이 직업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수업료를 단 한푼도 내지 않는다. 학교 운영비의  97%가 정부에서 나온다. 피터 베를리 교장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여기 글라루스도 그렇지만 스위스의 다른 곳에서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기가 해당분야의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은행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직업고등학교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대학에 가지 않으려 합니다. 스위스 학생들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25%만 대학에 갑니다."

2일 주민총회 현장에선 한표를 행사하는 고등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글라루스에서 만난 직업고등학교 학생들도 주민총회에 모두 참석했다고 말했다.
 2일 주민총회 현장에선 한표를 행사하는 고등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다시 찾은 글라루스에서 만난 직업고등학교 학생들도 주민총회에 모두 참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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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장의 소개로 만난 3명의 학생들은 모두 글라루스에서 태어나 글라루스에서 취직해 있고, 이번의 글라루스 주민총회에도 참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글라루스의 직접민주주의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직업고등학교가 잘 돼 있고, 그곳을 통해 취직생활을 더욱 잘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취직을 자기가 사는 곳에서 할 수 있다면 누가 굳이 자기 동네를 떠나려 할 것인가?

유치원의 아주 특별한 생일파티에서 직업고등학교의 커뮤니티 밀착형 실속 교육까지, 글라루스에서는 그렇게 학교가 더불어 함께 사는 도시공동체를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4천 명이 비바람 속에서도 5시간동안 주민총회를 할 수 있는 비결은 거기에도 있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 특별취재팀 : 오연호 대표기자(팀장), 안성호(편집자문위원, 대전대 교수), 윤석준(기획위원), 남소연 기자(사진), 박정호 기자(동영상), 앤드류 그루엔(Andrew Gruen, 영문판)


태그:#유러피언드림, #스위스, #글라루스, #생일파티, #직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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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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