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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날이 포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하는 날이 늘고, 골목마실을 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겨울에도 눈과 바람을 맞으며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하곤 했습니다. 겨울에는 아이가 몹시 추울 테니 여러 시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에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걷는 한편, 바람을 맞으며 추위가 이처럼 온몸을 떨게 하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 집 아이는 날 듯이 뛰어다닙니다. 골목안 3층 벽돌집 가운데 2층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 섬돌을 하나하나 혼잣힘으로 디디며 오르내립니다.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안고 섬돌을 오르내리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빽빽 소리를 지르며 내려 달라고 합니다.

 

오늘 낮에 이불을 빨아 널고 있는데, 아이는 제 키 높이만큼 되는 문턱을 혼자 내려와서 앞마당으로 따라오더니 아빠가 이불을 너는 자리 옆에서 함께 놀려고 합니다. 이불이 좀더 잘 마르라며 귀퉁이를 쥐어짜는 동안 섬돌을 오르내리다가는 벽에 기대어 아래집이나 골목길을 내려다봅니다. 아이는 제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골목집을 시나브로 제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겠지요. 앞으로 나이가 들어 제금나서 살아갈 무렵이 되면 이 골목집을 어떻게 되새길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는 아직 어른들 말을 모두 따라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낱말을 귀엽게 따라합니다. '도토리'는 '돗또리'라는 소리로 따라하고, '줄줄이'는 '쥬쥬리'라는 소리로 따라합니다. '단추'는 '단찌'로 따라하며, '꽃잎'은 '꼰님'으로 따라합니다.

 

추운 겨울은 말끔히 가시고 따사로운 봄햇살과 여름햇살이 어지러이 뒤섞이는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예쁘장하게 갖추어 놓은 골목꽃이 가득합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먼저 '꼰님 꼰님' 하며 외치곤 하며, 아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꽃잎' 하고 외치곤 합니다. '꽃잎'을 따라한 지 보름쯤 지난 이즈음은 '나무'를 가르쳐 줍니다. 자동차 많이 오가는 큰길에는 나무가 없으나, 자동차 오가지 않거나 못하는 골목 안쪽에는 어김없이 골목나무가 제법 굵게 자라고 있거든요. 아빠가 아이를 안고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며 '나무' 하고 외면 아이는 '나누'라 하는 말마디로 따라합니다. 도시에서 마주할 나무란 시골 숲과 들길 나무와 견주면 아무것 아닐 뿐더러 보잘것없다 할 텐데, 골목동네 사람들은 제법 큰 고무다라이에 흙을 담아 온갖 나무를 기르고 있습니다. 수목원만큼 못 되고, 여느 산속처럼 될 턱은 없으나 오동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으며 '여기 나무가 잘 자라는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을 때면 마음이 맑아진다고 느낍니다. 나무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든 사람들 누구한테나 느긋함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는구나 싶어요.

 

 

6. 인천 중구 답동. 2010.5.6.13:06 + F5.6, 1/60초

 둥글레꽃이 벽돌담에 뿌리를 내리며 피었습니다. 벽돌담에는 십자로 구멍을 내어 무늬를 내었습니다. 그럴싸한 멋은 아니라 하지만, 골목사람 살아가는 이 터전에 걸맞는 수수한 모양새입니다. 골목집 사람들이 따로 벽돌담에 둥글레 씨앗을 뿌릴 일이 없을 텐데, 둥글레는 씨앗을 바람결에 실어 보내며 이곳저곳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곱게 줄기를 올린 다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7. 인천 중구 내동. 2010.5.10.11:27 + F14, 1/80초

저는 꽃이름과 나무이름을 잘 모릅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이웃한테 말씀을 여쭈면서 하나씩 새롭게 배웁니다. 또는 꽃이 피거나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이 꽃과 나무가 익히 알던 그 꽃이요 나무였음을 새삼 깨우칩니다. 언젠가 몹시 발갛고 고운 꽃송이를 보고는 골목집 아주머니한테 꽃이름을 여쭈는데, "나도 잘 몰라요. 꽃이름은 모르지만 꽃이 참 예쁘기에 씨앗 얻어다가 이렇게 키워요." 하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8. 인천 동구 송림1동. 2010.5.1.10:41 + F16, 1/100초

이제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는 나무전봇대가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나무전봇대가 버티고 설 만한 호젓하고 가난한 골목동네가 아파트숲으로 바뀌는 탓입니다. 아니, 아파트가 아닐지라도 나즈막한 달동네 집이 아닌 3층 4층 우썩우썩 오르며 이웃집 햇살을 가로막는 빌라가 들어서더라도 나무전봇대는 목아지가 잘립니다. 인천 중구와 동구와 남구 오래된 달동네에는 곳곳에 나무전봇대가 튼튼하게 남아 있습니다. 눈비바람 맞으며 쉰 해 남짓을 살아내는 나무전봇대를 쓰다듬습니다.

 

 

9. 인천 동구 송현3동. 2010.5.1.11:15 + F13, 1/125초

시골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를 놓고는 들고양이라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를 일컬으며 도둑고양이라고들 합니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 고양이는 고양이입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목숨을 잇는 고양이는 왜 도둑고양이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길에서 살아가니 길고양이요, 인천 같은 오래된 도심지 골목길 한켠에서 밥을 얻으며 살아가는 고양이라면 골목고양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10. 인천 중구 인현동. 2010.5.7.13:53 + F11, 1/80초

수수꽃다리 한 그루 심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를 길러내며 나이를 먹는 동네이웃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 동네를 보아도 수수꽃다리이고, 저 동네를 보아도 수수꽃다리입니다. 그렇지만 동네사람 스스로 여러 동네를 다녀 보지 않으니 수수꽃다리가 얼마나 골목길에 드리워 있는지 잘 모릅니다. 골목동네로 마실 나와 사진찍기 즐기는 사람 또한 수수꽃다리를 모릅니다. 미국사람이 파내어 특허권을 얻으며 딴 이름을 붙인 '라일락'만 알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사진,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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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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